10억위안, 20억위안, 30억위안…. 중국 항저우에 위치한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 본사에 설치된 전광판은 11월11일 자정부터 산하 온라인쇼핑몰인 타오바오몰과 티몰 2곳의 판매현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초조한 눈빛으로 전광판을 지켜보던 알리바바의 수장 마윈(馬云·50) 회장은 오전 6시에 매출액이 100억위안(한화 1조7500억원)을 넘어서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160cm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인데, 잔뜩 긴장한 탓인지 중국 최고의 갑부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윈의 옆에는 절친인 영화배우 리롄제(이연걸)가 함께 했다. 두 사람은 최근 항저우에 태극권 도장을 함께 여는 등 친밀한 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중국인 '광클' 부른 '솔로데이' 빅세일
한국에서는 11월11일이 연인들의 날, 이른바 "빼빼로데이'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는 '1'이 4개 겹쳐있다고 해 '광쿤제'(光棍節 ), 즉 '솔로들의 날'로 불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독신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각종 선과 미팅이 성황리에 이뤄졌다.
하지만 '솔로데이'는 몇년 전부터 전 국민적인 '쇼핑데이'로 바뀌었다. 알리바바가 2009년 대대적인 세일판매를 하면서부터다. 전국적으로 폭탄세일이 이뤄지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와 유사한 날이 된 것이다.
알리바바의 폭탄세일 행사가 시작된 11일 자정, 밤늦은 시간인데도 중국 전역에서 1370만명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세일이 시작되기만 기다렸다. 정확히 자정부터 최고 90%의 세일가격 판매가 시작되자 중국인들의 '광클'이 이어졌다. 알리바바가 이날 하루에 올린 매출은 351억9000만위안(한화 6조1600억원)으로 지난해 11월11일에 기록한 매출액(191억위안)보다 84% 증가했다.
15억 인구가 사는 중국의 하루 평균 소매판매액이 693억위안인데, 단일업체의 판매액이 중국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매출액도 경이적이지만 관영 CCTV가 알리바바의 판매현황을 매시간 중계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행사로 여겨질 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블룸버그통신도 "중국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가 알리바바가 주도하는 전자상거래시장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며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방식 변화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한 온라인쇼핑몰 업체의 상술로 보이는 일이 이처럼 커진 것은 중국의 낙후된 유통문화와 관련이 있다. 국토 면적 960만㎢로 한반도의 44배이고 유럽전체 면적에 맞먹는 중국은 티벳과 신장위구르 등 서부 내륙을 포함한 상당지역의 도로와 철도 등 물류사정이 아직도 열악하다.
그러다 보니 도매상과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복잡하고 낙후된 유통구조가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 관세와 세금까지 높아서 한국에서 1만원이면 살 수 있는 상품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는 거꾸로 1만3000∼1만5000원을 줘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중국은 물론 전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한 알리바바의 최고경영자(CEO) 마윈은 이런 낡은 유통구조를 깨는 선봉에 서 있다.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가 11월11일 기록한 매출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소비자 환경의 건강한 발전을 뜻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대로 가면 광쿤제 매출이 1000억위안(17조5000억원)을 돌파할 날도 머지않았다"며 "인터넷 쇼핑문화가 정착될 경우 중국의 전체 물가를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부동산가격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가 모두 인터넷 쇼핑을 선택한다면 기존 방식의 판매량은 줄어들 것이고 과도하게 높은 상업용 부동산가격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관련, 마윈이 부동산 재벌이자 중국 최대 갑부로 평가받는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과 1년 전에 한 1억위안(175억원)짜리 통 큰 내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말 한 공개석상에서 2020년까지 온라인쇼핑이 중국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을지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50%를 넘으면 왕 회장이 마 회장에게 1억위안을, 50%를 넘지 못하면 마 회장이 왕 회장에게 1억위안을 주기로 한 것.
2013년 현재 온라인 매출비중이 10%도 안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윈의 패배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올해 광쿤제에서 보여준 중국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고려하면 50% 달성이 단순한 몽상으로만은 보이지도 않는다.
마윈 회장은 "이번 내기에서 왕 회장이 이긴다면 2020년에도 부동산 투자가 만연할 것이라는 의미이고 중국 사회가 패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의 상징, 마윈에 열광하는 중국인
이처럼 거침없는 마윈의 발언에 고물가, 부동산 거품, 실업난 등 불평등한 경제상황에 불만을 품은 중국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동시에 마윈은 중국의 낡은 경제체제를 대체하는 소비혁명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윈 회장과 중국 지도부의 관계도 밀접해지고 있다. 에너지·통신·금융 등을 독점하며 중국경제의 70% 이상을 차지한 국유기업의 부정부패, 무능에 질려 민간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에게 마윈은 혁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10월31일 경제좌담회에서 "새로운 경제모델을 찾아야만 중국이 낡은 생산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서 "마윈과 알리바바는 시간으로 소비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극찬했다.
마윈의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알리바바의 사업영역인 온라인쇼핑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중국의 온라인쇼핑거래액은 1조2600만위안(약 220조원)을 기록했는데, 올해 1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36% 증가하는 등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간 온라인거래서비스(B2B)로 사업을 시작한 알리바바는 인터넷 쇼핑몰(B2C), 온라인결제시스템 등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것은 물론 최근에는 금융업(인터넷 소액대출)과 온라인게임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외형도 급성장해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대비 71% 증가한 14억달러를, 순이익은 무려 304% 증가한 6억69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순이익률이 50%에 육박해 황금알을 낳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온라인쇼핑몰처럼 입점업체에 상품판매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광고를 주수익원으로 하는 독특한 사업방식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편 마윈에게는 초대박이 기다리고 있다. 시가총액이 무려 1200억달러(12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공개(IPO)가 임박했다. IT업체로는 구글과 아마존에 이어 세번째 규모다.
알리바바 상장을 놓고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런던증권거래소(LSE)가 서로 모셔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마 회장이 보유한 지분(7.43%)으로 계산하면 약 90억달러(9조7000억원)의 잭팟이 터진다. 고향 항저우에서 사범대를 졸업한 후 영어교사를 하다 1999년 단돈 2000달러로 창업한 지 10여년 만에 마윈의 성공신화가 완성을 앞두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15억 소비혁명의 아이콘 ‘마윈’
송기용 특파원의 China Report
송기용
5,413
2013.11.20 |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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