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2013 연말인사’는 향후 그룹경영의 무게중심은 물론, 후계구도에 돌입한 삼성의 ‘경영 로드맵’을 잘 담았다. 시기상 사업구조의 재편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단행됐다는 점에서 여느 해보다 의미있는 인사이기도 했다.

‘성과주의=삼성전자’. 올해 삼성의 사장단·임원 인사에서 공통으로 드러난 키워드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역시 지난 2일 사장단 인사 발표 당시 “성과주의와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다른 계열사로 전파하는 것”이라며 인사정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전자 '곱하고' 남매는 '나누고'

‘삼성전자 DNA’ 계열사로 확대 전파

실제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 임원들은 계열사 CEO로 전면 배치됐다.

삼성전자의 일본본사 반도체·LCD사업부장과 스토리지담당을 역임한 조남성 부사장은 부품소재 기업으로 도약을 꾀하는 제일모직의 사장에 내정됐다. 삼성전자 북미총괄 인사팀장 출신인 원기찬 부사장은 삼성카드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회계·자금·세무 분야 전문가인 이선종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벤처투자의 성장을 이끌게 됐다.

보직을 변경한 사장들 중에도 ‘전자맨’이 즐비하다. 삼성SDS 사장에 내정된 전동수 사장(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의 경우 반도체·MP3플레이어 등 완제품과 부품 사업을 두루 거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을 지낸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삼성전자 DS부문의 메모리사업부장으로 ‘고향’에 돌아온 케이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을 거쳐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장인 윤주화 사장은 패션사업의 에버랜드 통합 이관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 겸 패션부문장을 맡아 패션사업의 조기 안정화를 책임지게 됐다.

사장단 인사가 있은 지 3일뒤 단행된 임원 인사에서도 삼성전자 임원들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삼성전자가 배출한 신임 임원은 역대 최대규모인 161명으로 작년 157명, 재작년 133명보다 늘었다. 특히 그룹 전체 신임 임원 중 삼성전자 출신 비중은 재작년(63.3%)과 작년(69.5%)에 이어 올해 71.2%까지 증가했다.

삼성전자가 연말 ‘성과주의’ 인사원칙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분기 매출 59조835억원, 영업이익은 10조1636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게 컸다.

‘3세 경영’ 밑그림…에버랜드-그룹 '따로 또 같이' 

삼성 연말인사가 외형적으로 삼성전자의 ‘보상’에 맞춰졌다면 그 이면에는 올 들어 사업을 재편 중인 삼성이 ‘3세 경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냈다는 점도 유추해낼 수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그 같은 해석을 낳게 하는 부분이다. 이 부사장은 패션부문의 삼성에버랜드 이관과 함께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에버랜드의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제일기획 경영전략부문장도 겸한다.

재계에선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과 함께 이 부사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에서 호흡을 맞추게 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이 회사의 최대주주(지분율 25.10%)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어 향후 삼남매에 대한 승계구도가 한층 탄탄해지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사실상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9월 기준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율은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많고 두 자매는 각각 8.37%씩 보유하고 있다.(이건희 회장 지분율은 3.72%)

따라서 두 자매가 삼성에버랜드 사업의 두 축을 맡아 경영하고 오빠인 이 부회장은 최대주주로 주요 의사 결정에 관여하면서 삼남매간의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다. 즉 장남인 이 부회장은 전자와 금융을 양대 축으로 그룹 전체를 총괄하고, 장녀 이부진 사장이 호텔·리조트·건설 부문을, 차녀 이서현 부사장은 패션과 광고 부문을 맡게 된다는 게 재계에서 거론되는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 시나리오다. 

부회장 인사 왜 없었나…이재용에 힘 싣기?

사실 이번 삼성 사장단 인사의 관전 포인트는 이부진-이서현 자매의 동반승진 여부였다. 특히 이부진 사장의 부회장 승진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결과는 승진자 명단에 ‘미포함’. 부회장 ‘후보자’로 거론된 사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해 삼성은 끝내 ‘부회장’ 승진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6년만의 일이다.

이를 놓고 재계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힘을 실어주려는 조치가 아니겠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기존 6명이던 삼성그룹의 부회장단은 이번 인사로 인해 4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삼성물산 정연주 부회장은 임기를 1년 남겨두고 고문직으로 선임돼 일선에서 물러난다. 삼성생명의 박근희 대표이사 부회장도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아름다운 퇴장'을 앞두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부회장단은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과 강호문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등 3명인 셈이다.

이와 관련, 강승민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 3세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정연주 부회장의 퇴임도 삼성물산 실적 부진보다는 명예퇴진의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활동을 보좌하는 일 외에도 삼성을 대표해 해외 유명 인사를 직접 만나는 등 공식활동을 많이 가졌다. 따라서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를 통해 부회장단을 축소하고 사장단 평균 연령도 낮춰 이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짙다.

하지만 삼성 측은 ""통상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는데 7~8년 정도 걸린다"며 "이번에 부회장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사장들은 연수가 모자랐다"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