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문화센터 등에 강의를 가면 청중에게 꼭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던 커피는 무엇입니까?’ 이다.

대답 가운데는 어느 유명한 까페에서 경험한 드립 커피도 있고, 어느 해 추운 겨울날 산 정상에서 마신 인스턴트커피도 있으며, 지금은 헤어진 옛 애인과 대학로 어느 까페에서 함께 한 커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즉 맛있는 커피의 조건은 추출된 커피의 품질에 있지만, 가장 맛있는 커피의 추억은 못 마실 정도의 커피만 아니라면 분위기·상대방·기분·상황 등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맛있는 커피의 네 가지 조건
▲ 맛있는 커피 네가지의 조건 (사진제공=구대희 커피테이너)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신선하고 결점 없는 생두, 생두의 특징을 살린 적절한 로스팅, 실력 있는 바리스타의 추출,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태도다.

네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두에 있다. 혹자는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생두가 100%라고 과장해서 말하는데, 그 만큼 생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보면 된다.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을 세 개 받은 세계적인 요리사라도 나쁜 재료를 가지고 훌륭한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커피 역시 좋은 생두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맛있는 커피 맛을 기대할 수 없다.


로스팅이란 생두를 볶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몇 만 원짜리 수망으로 하든 수 천만 원을 호가하는 전문가용 로스터기로 하든 모두 커피를 볶는 것은 매 한가지다.

스페셜티급 생두가 아닌 이상 우리가 흔히 상업용으로 사용하는 커머더티급 생두 가운데는 소량이기는 하지만 결점두가 섞여 있다. 결점두에는 벌레 먹은 것, 미성숙한 것, 깨진 것, 심지어 작은 돌이나 나뭇가지 등도 포함된다.

결점두가 포함되면 커피의 향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번거롭더라도 로스팅을 하기 전에 손으로 결점두를 제거해야만 양질의 원두를 얻을 수 있다.

로스팅 정도에 따라 라이트부터 시나몬, 미디엄, 하이, 시티, 풀시티, 프렌치, 이탈리안까지 8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로스팅은 화력과의 고된 싸움이며, 순식간에 로스팅 포인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을 잡아야 하는 뛰어난 집중력과 감각이 요구된다. 로스팅이 끝나면 원두 가운데 탄 것은 골라내야 불쾌한 쓴 맛을 줄일 수 있다.

커피는 추출방법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뉜다.
고온·고압으로 짧은 시간에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커피주전자라는 의미의 가정용 수동식 에스프레소 추출기구인 모카포트. 프랑스 사람들이 까페오레를 즐길 때 사용하는 프렌치프레스. 일명 사이폰이라 불리며 증기압과 진공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진공식 커피포트. 우리말로는 손 흘림이라 하며 사람의 정성까지 느껴지는 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보다 강렬하며 자칫하면 입안 가득 쓰디 쓴 커피 가루를 경험하는 체즈베 등이 있다.

원두, 에스프레소 머신, 물 등의 조건을 동일하게 해도 누가 추출하느냐에 따라 추출시간과 추출양이 다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의 맛에 차이가 난다. 더욱이 핸드드립의 경우에는 추출하는 사람에 따라 실력 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불쾌하게 쓰기만한 커피부터 쓴맛, 신맛, 바디감 등이 적절한 발란스가 좋은 커피까지. 심지어 인스턴트커피라 하더라도 물의 온도, 커피를 타는 방법 등에 따라 커피 맛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커피의 조건은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태도에 있다. 신선하고 질 좋은 원두로 제 아무리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정성껏 추출을 했다 하더라도 마시는 사람이 그 커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맛은 반감된다.

또한 위염이나 소화불량으로 속이 불편하거나 방금 전 친구와 다투어 마음이 상했다면 커피는 오히려 속만 쓰리게 할 뿐 위로가 되지 않는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저서 “새로운 무의식” 에 따르면, 피험자들은 가격표만 붙은 와인들을 한 모금씩 마신 후 10달러보다 90달러가 붙은 와인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 그러나 피험자들이 마신 와인은 모두 90달러짜리였다.

와인을 맛보는 동안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로 뇌를 촬영했는데, 와인이 비쌀수록 눈 뒤쪽에 있는 안와전두엽피질(쾌락적 경험 관장)의 활동이 증가했다고 한다. 즉 같은 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험자들은 비싼 와인이 맛있다는 기대 때문에 실제로 느낀 맛은 달랐던 것이다.

인간의 뇌는 가격까지 맛을 본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맛에 대한 기대감이 같은 맛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느낀 맛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 결과라 하겠다.

물론 양질의 원두로 실력을 갖춰 정성껏 커피를 추출해야 하는 것은 바리스타의 가장 큰 소임이다. 커피 역시 마시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같은 커피라 하더라도 반응은 제 각각이 될 수 있다.

맛있는 커피의 네 가지 조건
신선하고 흠 없는 원두를 재료로 실력을 갖춘 바리스타가 정성껏 추출한 한 잔의 커피와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충만한 고객이 만날 때 비로소 맛있는 커피는 완성된다.
커피테이너(coffee tainer)는 커피(coffee)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로서 현직 바리스타이면서 커피 관련 방송, 문화공연, 강좌 등 커피를 소재로 한 컨텐츠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필자인 구대회는 스스로를 ‘커피테이너’라고 하며, 지금도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커피관련 컨텐츠로 기쁨을 주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