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주식시장은 바보 같았다.
 
세계증시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코스피(KOSPI)의 연간상승률은 0.72%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기구(OECD) 34개 국가 중 증시가 하락한 칠레, 터키, 체코, 멕시코 등을 제외하면 최하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로 풀린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면서 닛케이225지수가 56.72%나 상승,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지속되는 양적완화가 경기를 회복세로 이끌면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양호하게 나타났고 다우존스(26.50%), 나스닥(38.32%), S&P500(29.60%) 지수가 골고루 올랐다. 출구전략이 미래 증시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지난달 미국 중앙은행(Fed)이 자산매입 축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증시 480% 오른 국가는 어디?

유럽 재정위기의 한 가운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았던 그리스(28.06%)와 스페인(21.42%)의 증시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프랭클린템플턴 신흥시장그룹 회장은 10년 만에 그리스에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흥시장은 2012년 세계 주식시장에서 가장 흐름이 좋았던 것과는 달리 2013년에는 선진시장에 비해 상당히 부진했다. 베트남(21.97%), 대만(11.85%)처럼 양호하게 상승한 국가도 있었지만 태국(-6.70%), 인도네시아(-0.98%)처럼 하락세를 보인 국가가 더 많았다.

브릭스 국가 중에서는 인도(8.98%)만 유일하게 상승했고 브라질(-15.5%), 러시아(-5.52%), 중국 상하이종합지수(-6.80%)는 모두 하락했다.

글로벌 유동성은 이머징마켓으로부터 프런티어마켓 쪽으로 이동하면서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케냐, 베트남 등의 증시가 초강세를 나타냈다. 베트남의 경우 외국인 주식보유한도를 현행 49%에서 60%로 올리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금융시장 규제완화의 영향을 받아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 전세계 증시에서 최고의 상승률을 나타낸 곳은 베네수엘라로 무려 480.47%나 올랐다. 베네수엘라는 2011년(79.12%), 2012년(302.80%)에 이어 3년 연속 환상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베네수엘라에는 풍부한 원유 자원이라는 호재가 있지만 카라카스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종목이 15개에 불과해 약간의 자금 유입으로도 크게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자금이 유출될 때는 충격도 클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작년, 한국증시 부진했던 이유

2013년 국내증시를 살펴보자. 지난해 연초와 연말의 코스피지수가 거의 비슷해 한해 동안 제자리걸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중 최저점 하락률이 연중 최고점 상승률보다 더 컸다. 즉 투자자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더욱 좋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증시가 하락한 국가들은 대부분 펀더멘탈 여건이 좋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20개월 넘게 경상수지 흑자행진을 이어갔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전년 동기의 1.4배에 달하는 643억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음에도 주식시장이 부진했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현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로 물가가 안정돼 있고 각종 펀더멘탈도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원인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세계적 상장지수펀드(ETF)인 뱅가드펀드의 대량매도 ▲수출경기는 좋았지만 자영업을 중심으로 한 내수경기의 부진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가계 유동성 축소 ▲주택시장의 침체와 거래 절벽 ▲일본의 엔저 정책으로 인한 환율 문제 ▲중국의 경제상황 등이 지난해 한국증시의 발목을 잡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지난 흐름에 대해서는 원인 분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에는 증시가 오를 이유와 내릴 이유가 늘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때로는 결과에 원인을 꿰맞추는 게 아닌가 싶다. 주식시장 전체에 대해서든, 개별종목에 대해서든 오를 이유와 내릴 이유를 찾으면서 투자하다보면 이미 오른 뒤에 오를 이유를 찾는 격이 되고, 이미 내린 뒤에 내릴 이유를 찾는 격이 되기도 한다. 소위 뒷북치는 투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자산시장에 순환 상승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대상과 시장, 종목이 동시에 크게 오르기보다는 돌아가면서 오르는 경우가 많다. 풍선효과처럼 한쪽이 강세면 다른 쪽이 약세를 나타내고, 약세였던 곳이 강세가 되면 강세였던 쪽이 약세를 보인다. 돈이 골고루 분산되지 않고 몰리는 쪽으로 쏠리면서 나타나는 결과다.

돈이 몰리다보면 펀더멘탈 개선속도에 비해 상승속도가 너무 빨라져 밸류에이션 얘기가 나오게 되고 가치 측면에서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이 경우 추가로 들어와 계속 사려는 돈보다 이익실현을 위해 팔고 빠지는 돈이 더 많아진다.

빠져나온 돈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쪽으로 눈을 돌린다. 설사 펀더멘탈이 좋지 않더라도 투자대상이 망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하락이 과도한 뒤에는 가격 메리트가 생기기 마련이다.

글로벌 주식시장의 경우 지난 1년 동안엔 국가별로 차별화가 심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1월부터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5년 동안의 흐름을 살펴보면 우리가 지난 1년간 부럽게 여겼던 미국·독일·일본 등의 주식시장과 한국 주식시장 간 차이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참조>
바보 증시? 美·日 부러워 마!

한국시장이 더 먼저 빠르게 올랐던 것뿐이고, 다른 국가는 한국보다 천천히 올라서 키맞추기를 한 셈이다. 먼저 오르느냐 나중에 오르느냐의 차이다. 이러한 키맞추기 장세는 글로벌 주식시장만이 아니라 한 국가의 증시 안에서 서로 다른 종목들 간에도 종종 나타난다. 단기 투자자들은 키맞추기 장세에 어울리는 투자를 하기 힘들지만 길게 내다보는 투자자들에게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기회를 제공해준다.

유럽 재정위기가 불어 닥친 그리스 증시는 2010·2011년에는 크게 하락했지만 2012·2013년에는 상승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가 됐다. 그리스가 아무리 부채가 많고 경제가 어렵더라도 현재의 좋지 않은 상황과 미래의 불안감이 시장에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되면 낙폭과다에 따른 반등을 겨냥하는 매수세가 충분히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5~2007년의 한국증시는 글로벌시장에서 상대적인 강세와 약세를 반복했다. 상대적으로 소외가 지속되다보면 다른 국가 대비 밸류에이션이 낮아지면서 투자매력도가 높아지고 낮은 밸류에이션은 향후 상대적 강세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315·3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