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국적의 저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가 본격적인 한국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국내 항공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이나 개인이 국내 항공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항공법 위반 소지가 높고 운수권 배분 등의 문제가 발생해 국가 전략산업인 국내 항공산업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에어아시아는 충청북도 청주공항을 한국법인의 거점으로 삼아 올해 10월에 청주~제주 노선부터 취항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하고 관계부처 등과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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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 |
◆ 에어아시아 한국법인 설립 항공법 위반 논란
에어아시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청주공항을 모기지로 한 국내법인 설립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인 한국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후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이 국토교통부를 직접 방문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행정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충북도 경제부지사와의 면담을 진행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에어아시아는 한국 진출을 위해 자본금 300억원 규모의 한국법인 에어아시아 코리아(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재무적 투자자 이외에 전략적 투자자(SI) 또한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에어아시아는 30% 수준, 전략적 투자와 재무적 투자자가 나머지 70% 수준으로 지분을 구성한다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 지분을 49%까지만 허용하고 있는 국내 항공법을 교묘하게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현행 항공법에는 ‘항공사의 외국인 지분을 49%까지만 허용하고 한국인이 기업을 지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지분이 2분의 1 이상이거나 외국인이 사업을 지배하는 기업인 경우 등에는 항공사 면허를 주지 못하도록’ 명시돼 있다.
만약 에어아시아 코리아가 설립되면 항공사 운영 경험이 전무한 국내 재무적 투자자와 전략적 투자자들보다는 에어아시아가 실질적인 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관련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무적 투자자의 목적이 투자 수익의 극대화이고, 전략적 투자자 또한 항공사 운영 경험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항공사를 운영하게 되는 주체는 에어아시아다”고 강조했다.
◆ 항공산업 외국자본 침투 해외사례 ‘실패’
더욱이 국내 항공업계는 에어아시아의 국내 진출이 외국자본 침투를 막지 못해 주요 전략·기간산업 자체가 흔들린 해외 유사 사례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9년 오스트리아항공이다. 오스트리아 최대 항공사였던 오스트리아항공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유가 상승 및 잇따른 경영 실패로 9억 유로가 넘는 빚을 지게 됐다. 결국 2009년 독일의 루프트한자에게 인수되고 만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루프트한자에 오스트리아항공을 넘기기 위해 오스트리아항공 부채의 절반에 해당하는 5억 유로에 대한 부담을 떠안았다. 또 추후 경영성과에 따라 1억6200만 유로를 추가 지급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국가 전략·기간산업인 항공부문에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면서 대폭적인 재정지원까지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항공은 루프트한자에 인수된 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오스트리아 내수 고용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중동계 항공사들은 이탈리아의 최대 국적항공사인 알이탈리아항공의 지분 인수에 참여할 뜻을 비치며 유럽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3억1300만유로(약 4531억여원)의 적자를 기록한 알이탈리아항공은 여러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 조달을 진행하고 있다. 에티하드항공은 약 3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이 투자가 승인되면 에티하드항공은 알이탈리아항공 지분의 약 40%를 소유하게 된다.
이에 유럽의 주요 항공사들은 이미 유럽 비즈니스 승객들을 빼앗고 있는 이들 중동항공사의 알이탈리아항공 인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에서는 항공뿐만이 아니라 항만, 철도, 전력, 금융 등의 국가 기간산업을 국가 생존권의 기반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외국 자본의 유입을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도 국가의 전략·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엄격한 규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두바이의 '두바이 포트 월드'(Dubai Ports World)사가 뉴욕 등의 6개 항만시설을 인수하려고 했을 때, 미국 정치권은 항만시설이 국가의 기간산업인 점을 들어 정치적으로 압박해 인수를 저지했다.
2006년 영국의 버진 애틀랜틱항공(Virgin Atlantic Airways)이 미국 국내선 운항을 위해 최대 허용지분인 25%를 출자해 버진 아메리카를 설립하자 미국 정부는 영국의 모기업이 경영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17개월 동안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모회사와 금융상의 모든 관계를 끊고, 버진 애틀랜틱이 고용한 최고경영자를 해고하고, 버진 아메리카의 이사회 멤버를 제한하는 등의 강력한 규제조치 이후에 승인을 해준 바 있다.
최근 중국 기업인 럴스사(Ralls Corp.)가 미국 오리건주의 풍력발전시설 자산을 인수하자, 주위원회는 럴스사에 투자 내역 자진보고와 운영 중단을 요청하고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해당 시설의 풍력발전기가 미 해군 무기 훈련시설의 공역에 위치한다는 점을 들어 오바마 대통령에게 투자 무효 및 철거 권고를 했고,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행정명령을 통한 자산매각을 권고했다. 럴스사는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했으나, 올해 2월 미 지방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정부당국이 에어아시아 진출을 승인할 경우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외국계 자본이 국내 항공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