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다닐 학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외국인 학교가 들어선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서울 서초구 내곡동 보금자리주택지구에 입주할 예정이자 내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를 가진 한 부모의 한탄 섞인 토로다.

사실 내곡지구에 예정됐던 중학교(가칭 ‘내곡중학교’) 건립이 취소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게 되면서 논란이 됐던 것은 이미 몇해 전의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학교가 사라진 것뿐만이 아니라 외국인 학교가 새롭게 이전해 들어온다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자녀를 마을버스 40분 거리 밖으로 통학시켜야 할 상황에 놓인 부모들의 입장에선 파란 눈의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마을 안을 지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더욱 미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단독]내곡지구, 중학교 신설 대신 프랑스학교 유치…흑막 있었나

◆지도 속 학교가 사라지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국토교통부(당시 국토해양부)는 지난 2010년 4월 내곡지구 사업계획을 승인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사업계획 내에는 중학교 1개소 설립이 포함돼 있었다. 당연히 입주예정자들은 중학교 설립 계획이 확정된 상태에서 시행사인 SH공사의 사전입주 청약에 응했고, 특히 미성년 자녀 3인 이상의 무주택 가구주를 상대로 한 ‘세 자녀 특별공급’의 호응이 높았다. 또한 그동안 근거리에 중학교가 없어 멀리 언남중학교 등으로 자녀를 원거리 통학시켰던 2000가구가량 되는 내곡동 원주민들에게도 내곡중학교의 신설 소식은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곡중학교는 사업 승인 직후 한달 만에 계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강남교육지원청이 교육부의 학교신설 기준 학생수(840명) 미달을 근거로 SH공사와 국토부 측에 ‘부지 용도 변경’ 및 ‘기존 학교(언남중학교) 증축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입주예정자 및 인근마을 주민들의 반발은 바로 이어졌다. 내곡지구와 인근 마을을 합한 가구수는 총 5553가구 규모로 이곳의 신설중학교 입학생 예비수요는 약 700명으로 집계된다. 교육부의 학교신설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향후 매헌역 개통과 유통업무시설 입주 등으로 큰 폭의 인구 증가가 예상되고 3~4년 뒤 중학교 진학인구까지 계산하면 1000여명 수준으로 예비수요가 증가될 것으로 보이므로 중학교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반면 교육청은 전체 가구수의 45%가 국민임대, 장기전세, 영구임대이므로 장기적으로는 학생수 감소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고, 언남중학교 중축 계획을 그대로 진행했다. 이윽고 지난 2012년 12월 국토부가 중학교 설립 예정 부지를 주택용지로 변경하는 지구계획 변경안을 승인하면서 내곡중학교는 그 자리를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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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신설 안 된다더니 외국인학교 유치?

하지만 내곡지구 내 중학교 건립을 위한 주민들의 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 내곡중학교가 들어설 계획이었던 부지 바로 옆으로 2만8195㎡ 규모의 체육부지가 있었던 것. 당초 해당 체육부지는 서초구청의 요청에 의해 내곡지구 내에 확보된 것이었으나, 서초구청에서 매입계획이 없다는 통보를 함에 따라 타 기관(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교육청, 대한체육회 등)의 매입 여부를 알아보는 과정에 있었다. 교육청이 나설 경우 내곡중학교를 건립할 수 있는 땅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입주예정자들은 이 부지의 일부를 활용해 학교를 세워줄 것을 다시 한번 교육청 및 SH공사 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SH공사는 책임의 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각각 입주예정자들을 또다시 외면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해당 체육부지의 주인이 이미 정해져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입주예정자 관계자를 통해 단독으로 입수한 SH공사 임대주택본부의 문서자료에 따르면 서초구청은 체육부지 중 일부(9900㎡)를 현 서래마을에 위치한 서울프랑스학교의 이전부지(학교용지)로 변경해줄 것을 SH공사에 요청했다. 입주예정자들이 마지막 보루의 땅으로 생각했던 곳에 외국인 학교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프랑스학교는 프랑스 외무부 산하의 학교로, 서울에 위치한 유일한 프랑스 국립학교다. 유치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교육 과정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전교생 450명가량으로 구성돼 있다. 프랑스학교의 이전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서래마을 주변 상권도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예정자대표회의 관계자는 “국내 학교 신설에는 무관심하던 구청이 외국인 학교 유치에는 적극적이라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내곡지구의 부지 및 사업 계획을 책임 관할하는 SH공사와 국토부에도 학교 신설에 대한 책임 소지는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SH공사, 교육청 핑계 대며 ‘쉬쉬’

물론 체육부지의 매각 및 용도변경 신청이 현재 이뤄진 상태는 아니다. 내곡지구 내 중학교 건립 문제는 오는 3월 중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될 예정이다. 현실적으로 10만명 이상의 대단지 지구 안에 학교가 없다는 것은 주민들이나 구청 및 부처 관계자들 모두 공감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역시 학생수 분석이다. 내곡중학교 신설이 3개 근린주거구역(6000~9000가구)마다 중학교를 신설한다는 규칙에는 들어맞으나 ‘학생유발지수’로는 부족하다는 게 기존의 교육청 입장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의 원리원칙만 내세워 탁상행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실제 증축 얘기가 나오고 있는 언남중학교의 현재 학생수도 613명에 불과하며, 인근 다른 중학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840명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내곡중학교의 건립 취소를 운운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의회 서초3지역 최호정 새누리당 의원은 “내곡지구의 폐쇄적인 지리적 환경과 보금자리 입주자의 자격요건인 자녀수 등의 요건을 고려했을 때 지구 내 중학교 건립은 반드시 필요한 문제”라며 “3월 교육청의 최종 통보를 기다린 이후 어떻게 대처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내곡지구는 중학교 문제뿐 아니라 최근 아우디 공장건립 여부로도 홍역을 앓고 있어 입주예정자들의 입주를 앞두고 당분간 여러 현안에 대한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SH공사 및 국토부, 교육청 등의 적극적인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