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은퇴한 두 친구가 있다. 은퇴 전 월급수준도 같았는데, 한 친구는 은퇴 후 연금으로 40%를, 다른 친구는 76%를 받게 된다. 전자는 국민연금에 가입한 일반 회사원, 후자는 공무원연금에 가입한 공무원이어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가입기간 중 평균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 대비 연금지급액)을 근거로 단순 비교한 가정이다. 국민연금을 40년간 부은 사람의 소득대체율은 40%에 불과하다. 반면 33년간 공직 혹은 교원생활을 한 연금수혜자의 소득대체율은 60%가 넘는다. 이를 국민연금과 같이 40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76%에 달한다.

은퇴 후 두둑한 연금을 받는 공무원이나 교사는 한국사회의 로망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의 '안정된 노후자금'이 최근 우리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공무원의 든든한 노후자금을 위해 노후빈곤에 허덕이는 대다수 국민들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4월8일 발표한 '2013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앙정부 (재무제표상)부채는 1117조3000억원으로 나랏빚이 1년 새 215조원이 넘게 껑충 뛰었다. 문제는 이러한 부채의 절반 이상(53.4%)이 공무원·군인연금으로 인한 빚이라는 것. '낸 돈에 비해 많이 받는' 구조 탓에 지난해에만 정부가 약 2조원을 국민세금에서 메웠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직역연금이 '세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이유다.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공무원연금 vs 국민연금

공무원연금은 '신의 연금', 국민연금은 '서민연금'.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형평성 차이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연금의 성격이나 보험료율이 각기 달라서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월 평균 수령액을 보면 대략 그 격차를 어림잡을 수 있다. 2013년 기준 공무원연금의 1인당 월평균 수령액은 219만원인 반면, 국민연금의 월평균 수령액은 84만원에 불과했다. 공무원이 일반국민보다 평균 2.6배 많이 받는 셈이다.

연금수급 연령도 다르다. 1969년 이후 출생한 일반국민은 만 65세부터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지만, 공무원(1996년 이후 임용)들은 만 60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일반국민들보다 5년이나 일찍 받게 된다. 다만 지난 2009년 연금개혁으로 2010년 이후 공무원이 된 사람은 65세가 돼야 연금을 받도록 조정됐다.

유족연금도 국민연금 가입자가 불리하다. 이를테면 공무원연금을 받는 남편이 사망하게 되면 부인은 남편이 받던 연금의 70%(2010년 이후 입직은 60%)를 유족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부부 가입자의 경우 사망한 배우자의 연금을 선택하면 본인 연금은 받을 수 없다. 1가구 1연금 정책 탓이다.

만일 본인의 연금을 받기로 한다면 사망한 배우자의 연금은 20%만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새로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 유족연금 중복 지급률을 30%로 10%포인트 높일 방침이지만 국민연금 수급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나랏빚 뇌관' 공무원연금 뜯어보니 '악'소리
2007년 '공무원 셀프 개혁' 실패, 2014년은?

지난 2007년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추진한 개혁은 오히려 격차만 더욱 크게 벌렸다. 문형표 KDI 선임연구위원은 "연금지급률을 기준으로 개혁 이전에는 급여 격차가 1.4배에 그쳤으나, 2009년 개혁 이후에는 1.9배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은 30년 가입 시 연금지급률이 63%에서 57%로 6%포인트 깎인 데 그친 반면, 국민연금은 같은 기간 가입 시 45%에서 30%로 15%포인트나 깎였다. 가뜩이나 적은 국민연금 지급률을 대폭 낮추고, 공무원연금은 생색내기용 조정에만 그친 것이다.
 
개혁이 아닌 개악(改惡)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이런 황당한 개혁은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이 개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외국의 개혁사례에서는 정부가 개혁안을 마련한 후 공무원단체들과의 설득 및 협상절차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연금개혁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노조대표가 다수 참여해 기득권 보호가 지나치게 강조됐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3개 공적연금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강력한 개혁의지를 보였다.
 
이에 안전행정부는 내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공무원연금 개혁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새누리당도 당내 경제혁신특별위원회 산하에 공적연금개혁분과를 설치해 정부의 개혁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개혁이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공무원 표를 의식해 본격적인 개혁논의는 지방선거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명 연금연구센터장은 "연금제도를 개혁한다고 해도 이미 발생한 부채의 증가폭을 완화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공무원연금은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적정부담, 적정급여가 가능하도록 지속가능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년 개혁' 내년에 공무원연금 없애는 일본의 교훈 
 
내년부터 일본의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이 일원화된다. 일본은 내년부터 우리나라의 공무원연금에 해당하는 '공제연금'을 폐지키로 했다. 모든 공무원들은 일반 회사원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국민연금'(우리나라의 기초연금) 제도를 적용받는다. 공무원과 일반 회사원의 연금 수급조건이 같아지면서 연금차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연금개혁이 추진된 배경도 현재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공무원들이 가입하는 공제연금은 보험료율이나 연금액에서 일반 회사원들의 후생연금보다 훨씬 유리한 구조였다. 개별 공무원과 정부가 부담하는 공제연금의 보험료율은 후생연금보다 2%포인트 정도 낮았고, 공무원에게는 직역가산급부라는 명목으로 추가 가산금을 지급해 특혜 비판이 일었다.

여기에 재정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본은 세계에서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이자 고령화 사회다. 공무원들의 후한 연금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정부의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본정부는 거품경제가 붕괴된 이후 저성장 국면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했다. 일본정부가 공적연금의 일원화 작업에 들어간 것은 지난 1984년. 보험료 등을 조정하는 개혁안 추진에서 통합작업 마무리까지 무려 30년이 걸렸다. 연금개혁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돼야 함을 시사한다. 지난 2012년 제정된 피용자연금 일원화 법률은 오는 2015년 10월부터 실시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