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은 뜨거운 쌀밥에 토실토실하게 살 오른 어리굴젓 한 점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어리굴젓은 혓바닥에 끈끈하게 감기는 특유의 질감과 풍미가 매력적인 식품이다.


▲ 제공=월간 외식경영
▲ 제공=월간 외식경영


밥반찬에 그쳤던 기존의 젓갈 음식과 다르게 직화구이나 족발, 보쌈 등 육류와도 잘 어울리고 비 오는 날 빈대떡이나 모둠전과 곁들여 먹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밥도둑이면서 고기 찬으로도 손색없는 데다 안주로도 탁월하다.

어리굴젓은 소금 간을 적게 해 덜 짜게 담갔다고 해서 덜 된, 모자람의 뜻의 ‘얼저린 굴젓’에서 따온 말이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혓바닥이 얼얼하다’는 뜻에서 어리굴젓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충청도 지역의 향토음식인 어리굴젓은 생굴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저장해놓고 먹는 젓갈이다. 특히 서산이나 당진, 예산, 간월도 쪽이 유명하다. 간월도에서 생산된 어리굴젓은 왕에게 올리는 진상품으로 썼을 정도로 품질이 좋고 귀했다.

 

조선 태조의 스승이었던 무학 대사無學大師·1327∼1405는 간월도에서 수행하던 중 태조에게 어리굴젓을 올렸다. 조선의 대표적인 미식가였던 허균1569∼1618 역시 어리굴젓 맛을 보고 극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소 60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온 셈이다.


서해 쪽은 굴 생산 시기인 겨울철 북서계절풍의 영향과 조수간만의 차, 햇볕 노출이 많은 환경 덕에 다른 지역에서 나는 굴보다 품질이 뛰어나다. 알이 작고(4cm가량의 일반 굴에 비해 서해 지역에서 나는 굴은 2~3cm 정도다) 단맛이 돌며 비리지 않은 것이 특징. 유통기한도 3~4일 정도 길어 저장성도 탁월하다.


가정에서는 제철 생굴을 사다 직접 굴젓을 담가 먹지만 업소에서는 신선한 완제품을 선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굴은 신선도가 생명이고 자칫하면 비리고 냄새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담그는 과정은 물론 보관하는 동안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어리굴젓 유통가격은 4월 기준으로 1kg에 2만원대. 제철인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는 1.5배가량 비싸다고 보면 된다. 어리굴젓의 강점은 호환성이다. 미끈미끈한 질감과 특유의 굴 내음은 밥반찬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소고기, 돼지고기와도 잘 어울린다.


서울 신사동 <삼겹살과 빈대떡>은 국내산 암퇘지 삼겹살과 함께 메인 찬으로 어리굴젓을 낸다. 삼겹살에 어리굴젓을 올려 쌈 싸먹는 매뉴얼이 화제다. 파전과 빈대떡도 잘 나가는 안주메뉴. 어리굴젓과 기름진 전과의 어울림도 탁월하다. 한정식집이든 일반 백반집이든 고깃집이든 어리굴젓은 포인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