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세간의 질타가 떨어지기 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앞으로의 긴밀한 관계를 제안하고 더 이상의 카피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면 과연 이로 인해 부각될 문제의 소지도 깔끔하게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중소기업으로서는 대기업과의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는 이점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중소기업의 이 같은 아킬레스건을 역이용하기도 한다.
롯데마트는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6월12일 전점에서 '오징어통마리튀김'을 선보였다. 오징어 한마리를 통째로 튀긴 제품으로 월드컵 축구팀을 응원하며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신메뉴라고 홍보했다.
롯데마트의 오징어통마리튀김은 소비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인터넷 블로그, SNS 등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징어 한 조각이 아닌 통째 튀긴 콘셉트와 독특한 맛에 소비자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 특히 대한민국과 러시아 경기가 벌어진 지난 6월18일 오전 7시 오징어통마리튀김을 먹으며 국가대표축구팀을 응원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전날 저녁 롯데마트 매장에는 긴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때 눈물을 삼켜야만 했던 기업이 있다. 바로 원조 오징어통마리튀김인 '오짱'을 6개월에 걸쳐 개발하고 백화점 등의 경로를 통해 판매 중이던 중소외식업체 A사다. 오짱은 롯데마트의 오징어통마리튀김과 놀랍도록 닮았다. 두개의 꼬치를 끼운 오징어 한마리를 통째로 튀기는 방식이 똑같다. 또 종이에 담는 포장방식, 튀김의 모양, 튀김옷, 심지어 포장용기의 무늬와 크기, 무늬 위치까지 거의 모든 점에서 똑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판박이다. 더군다나 오징어통마리튀김 출시는 롯데마트 상품기획담당자(MD)가 백화점 내 오짱 매장을 방문해 상품의 외형을 살펴보고 간지 얼마 되지 않은 뒤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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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오징어통마리튀김 /사진=박성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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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성필 기자 |
◆"어쩌다 닮았을 뿐 카피 아니다"
외식업계는 그동안 잘 나가는 상품을 카피해 판매하는 '미투상품'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중소외식업체가 거액의 개발비를 들여 신메뉴를 발표하고 인기를 얻으면 해당상품을 그대로 베껴 파는 유사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개발업체는 돈만 날리고 매출에 큰 타격을 입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대기업은 막대한 자금력과 강력한 유통망을 통해 중소기업이 만들어 놓은 시장을 손쉽게 점령하고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기업들은 속만 태워야 했다.
오짱을 개발한 A사도 같은 경우다. 이 중소외식업체는 오짱 개발단계부터 소스의 배합, 오징어를 말리지 않고 튀기는 방법, 포장법 등 오짱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에서 미리 특허를 출원하고 미투상품 판매에 대비해왔다.
그러나 롯데마트 측은 오징어통마리튀김의 출시 초기 오짱과 유사한 부분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개발과정에서 어쩌다보니 비슷해진 것일 뿐 베낀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때 롯데마트는 현행법상 상품에 미세한 차이를 주기만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으니 두개의 꼬치 중 하나를 빼고 포장봉투만 바꾸면 될 게 아니냐며 판매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는 6000원이 조금 넘는 오짱의 단가보다 절반가량 깎은 3800원의 가격에 오징어통마리튀김을 판매했다. 중소기업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시장질서까지 무너뜨린 것. 판매수수료, 인테리어비, 인건비 등에서 가격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과 전국 규모의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중소기업이 만들어 놓은 식품시장의 트렌드에 아무 노력 없이 무임승차하고 중소기업 죽이기에 나섰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해당상품은 상품기획담당자가 대만 출장 때 본 현지 길거리 음식을 개량한 것이지 A사의 상품을 베낀 게 아니다"라며 "공교롭게도 그 상품기획담당자가 A사의 상품을 목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는 A사와 원만한 합의가 이뤄진 상태"라며 "오징어통마리튀김을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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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의 오징어튀김상품 '오짱' /사진=박성필 기자 |
◆유사품 판매하다 문제 되면 합의
결국 롯데마트는 오징어통마리튀김을 지난 6월18일까지만 판매했다. A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더 이상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한 것. 롯데마트는 앞으로 A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제안했고 A사도 이를 받아들여 그동안 특허와 관련된 사항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하면서 상품 카피사건은 일주일 만에 일단락됐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기업과 관계를 맺으며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피엔딩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롯데마트는 '오리온 포카칩'과 '롯데 통큰 감자칩',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 통큰 초코파이', 'CJ제일제당 햇반'과 '롯데 햇쌀한공기 즉석밥' 등 미투상품 출시를 통해 업계에서 카피의 황제로 불리며 지탄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에는 상대의 덩치가 작았다. 과거의 제품 카피가 대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시장점유 싸움이었다면 이번 상대는 오랜 연구개발을 통해 겨우 시장에 나선 중소기업이었다. 해당 중소기업은 이로 인해 존폐의 기로에 설 만큼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마트의 오짱 카피사건의 경우 A사와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며 "합의를 떠나 힘든 연구개발과 시장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손쉬운 베끼기로 자신의 잇속만 채우며 상도를 저버린 점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11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중소기업과 상생을 약속하고 올해 연간 1100억원의 지원, 연 10억원 규모의 특별상생기금을 출연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룹 대표가 직접 나서 "중소기업과 상생하겠다"며 '중소기업 판로확대 및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그러나 롯데그룹은 상생을 약속한 지 반년가량 지난 시점에서 상품 카피사건을 일으켰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상생이 중소기업을 겨냥한 살생의 가림막에 불과하고 대기업 차원에서의 횡포를 이어간다면 동반성장은 과연 누굴 위한 약속인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