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으로부터 안전할까. 정부는 신규발전소가 추가된 데다 지난해보다 덜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따라 정전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에도 정부는 '문제 없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리고 그해 9월15일 정부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예고 없이 찾아온 전력대란으로 전국이 어둠에 휩싸였고 국민과 기업들은 재산 및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올여름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전력난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고 보장하기엔 이르다. 이에 <머니위크>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전력대란 공포에 대해 짚어봤다. 원전의 안전성과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신재생에너지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전력낭비의 현장을 고발하고 우리나라 전력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양수발전소를 찾아봤다. 아울러 전기료를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본격적인 여름철 불볕더위가 시작되며 에어컨 사용 등으로 인한 전력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달 9일 경북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한울원전 1호기가 갑작스런 고장으로 가동을 중단해 올 여름 원활한 전력공급체제 구축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여름 대한민국은 무더기 원전정지 사태로 인해 최악의 전력난을 경험해야 했다. 전력수급경보 발령기준이 예비전력 500만㎾ 미만 임에도 불구하고 예비력이 300만~400만㎾까지 떨어지며 전력수급 경보 2단계인 '관심' 단계가 4번이나 발령됐다. 이에 비하면 올해는 아직까지 전력수급에 큰 차질을 빚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또 다른 원전이 추가로 고장날 경우 작년과 같은 참사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전력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절실한 시점에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임직원들이 끝없는 납품비리 사건에 연루되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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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 DB |
◆ 끝이 보이지 않는 '원전정지'
지난달 9일 낮 12시50분께 경북 울진군 북면에 있는 한울원전 1호기(설비용량 95만㎾급)가 제어봉 운전 가능성 시험 중 제어봉 1개가 낙하하면서 발전이 정지됐다. 제어봉은 원자로 내 핵분열을 제어하는 설비로, 원자로 1기에는 48개가 설치돼 있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 관계자는 "정상운전 도중 원자로 제어봉 1개가 낙하해 정밀점검 차원에서 원자로를 수동 정지했다"며 "발전정지로 인한 방사능 누출은 없다"고 강조했다.
올 들어 원전이 계획예방정비 목적 이외에 고장 등으로 가동을 멈춘 것은 1월29일 경북 울진군 한울 5호기, 2월28일 전남 영광군 한빛 2호기, 3월15일 경북 경주시 월성 3호기에 이어 네번째다. 가동중단과 함께 계획예방정비를 한 지 불과 7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한울원전 1호기가 또 다시 중단되자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된 상태.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밝힌 원전 가동중단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8일, 2009년 11일, 2010년 7일에 불과했던 원전 고장으로 인한 정지지속일수는 2011년 44일에서 2012년 766일로 무려 1640.90%나 급증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잇단 원전정지로 인해 전력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사상 최악의 전력부족난을 겪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절전규제를 호소하며 가까스로 전력위기를 넘겼다.
◆ 잊을만하면 터지는 '원전비리'
원전은 지난해 납품비리와 잇따른 고장으로 인해 국민을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지난달 2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 국가공인시험기관 6곳을 감사한 결과 원전수리부품 등의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한 사례를 39건 적발하고 관련 24개 납품업체를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원전 수리·보수와 관련한 시험성적서 위·변조도 4개 업체, 7건이었다.
이 중 7개 납품업체는 원전정비기관인 한전KPS에 11건의 위·변조 시험성적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보수와 관련한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한 4개 업체는 고리원전 3·4호기의 사용 후 연료 저장조 냉각펌프, 터빈증기 배수밸브 등을 구성하는 부품의 시료명이나 시험결과를 변조 또는 삭제했다.
다만 정부는 위·변조가 적발된 부분이 핵심부품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원전을 정지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문제가 된 5개 품목은 핵심부품이 아니라서 원전정지 없이 교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원전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원전비리 수사과정에서 건설 중인 원전에 가짜 부품을 납품해온 업체가 무더기로 적발되며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로 인해 김균섭 전 한수원 사장은 원전비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원전비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공공기관 직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도록 조치했다. 지난 1일부터 원전 공공기관의 2직급(부장) 이상 직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산업부 장관 고시 '원자력발전 관련 공직유관단체 재산등록 고시'를 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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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 DB |
◆ 올여름 전력상황, 원전 불시정지가 '변수'
올여름은 원전이 불시에 멈추지 않는 한 작년과 같은 전력난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혹시 모를 전력난에 대비해 공급력을 지난해 대비 약 650만㎾ 늘릴 계획이다.
새로 건설된 화력발전소 9기를 통해 437㎾를 확보하고 정지된 원전도 지난해 5기에서 2기로 줄어 271㎾를 추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반면 폐지된 발전소는 7기로 전체 용량은 147㎾다.
이에 전력당국은 원전 불시정지와 같은 비상사태에 직면하지 않는 한 사상 최악의 전력대란이 우려됐던 지난해에 비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3기 중 절반이 넘는 12기의 설계수명이 2030년 만료될 정도로 국내 원전의 노후화가 심각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태호 에너지나눔 사무처장은 "국내 원전의 노후화로 인해 앞으로도 원전 불시정지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른 전력망 확충을 통해 충분한 예비전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