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밀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를 취급하는 식당도 늘고, 그 품질도 차츰 높아져간다. 수면 아래에서는 다가올 메밀 음식 전성기에 대비하느라 관련 업소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성장 가능성이 큰 메밀 음식 시장의 미래 패권은 누가 쥐게 될까? 부산 <김정영 분식 면옥향천>의 김정영 대표는 그 유력한 후보자다. 메밀 면 분야에서 어느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과 기술의 소유자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그가 지금까지 이뤄낸 부분보다 잠재력이 더 큰 미완의 기대주이기도 하다. 국내 메밀 면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기까지 그는 과연 어떤 노력을 했을까?

◇ 기본을 탄탄히 다지는 스타일
음식은 식재료가 좋아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원하는 수준의 식재료를 구할 수 없다면? 대부분의 업주는 포기하거나 가능범위 내에서 구하고 만다. 

▲ 제공=월간 외식경영
▲ 제공=월간 외식경영
소바는 어느 음식보다 주재료인 메밀의 품질이 음식의 질과 직결되는 메뉴임을 김 대표는 잘 안다. 그래서 개점 초기부터 좋은 메밀을 구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의 성에 차는 메밀은 없었다. 대안은 직접 좋은 메밀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노력 끝에 ‘대산’과 ‘대관 3-3’이라는 품종을 구했다. 이 품종을 충남 논산의 농가와 계약재배를 해 파종하고 가꿔 거둬들여서 메밀 면을 만든다. 대부분의 메밀 전문점이 공장제품 메밀 면을 받아서 사용하는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메밀을 직접 키워냈으니 제분도 직접 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자가제분'(自家製粉)이다.


천신만고 끝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가제분한 양질의 메밀은 확보했다. 다음 단계인 제면도 그는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만든 수제면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이 방법은 효율성이 너무 낮아 현업에는 적용할 수 없다.

하지만 손으로 만든 물성과 품질 그대로 기계의 힘을 빌린다. 최악의 경우 기계가 고장 나도 제면을 못하는 일은 없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일단 자신의 손에 익숙할 때까지 제면 수준을 높이는 것, 그는 이것을 자기 자신과 후진들에게 요구한다.

◇ 낮은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부지런히 배워
김 대표는 학습능력이 뛰어나다. 청소년 시절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다는 말과는 딴판이다. 그는 스스로 지능이나 기본 지식이 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부족한 학습 능력을 남들보다 서너 배의 노력으로 상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 제공=월간 외식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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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입사했던 식당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정통 일본식 수타 우동을 만들었다. 그전에 한 번 그는 이 집에서 수타 우동과 튀김 맛을 경험하고 황홀경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나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그 뒤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더구나 그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인격과 실력을 갖춘 능력자였다. 김 대표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일본인 스승의 조리 기술을 빨아들였다. 머리로 안 되면 남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몇 번이고 외우고 실습을 했다.
수타 우동을 비롯해 초밥과 튀김, 덴뿌라 등 근간이 되는 일본 음식을 초년에 두루 섭렵했다. 최고 수준의 조리 전문가를 만나 짧은 시간에 음식의 기본을 마스터해둔 것은 두고두고 그의 음식 인생에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김 대표는 손꼽히는 국내 메밀 면 전문가다. 메밀 면에 관한 한 누구도 그의 해박한 지식과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동과 달리 메밀 면은 어떤 특정 인물에게 배우거나 전수받지 않았다. 

오로지 독학으로 배우고 익혔다. 그의 유일한 스승은 일본에서 출간된 소바나 메밀 관련 서적들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신간이 나오기 무섭게 구입해서 독파한다.

고교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한 그였기에 학교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따라서 일본어를 따로 배운 적도 없었다. 하지만 최고의 메밀 면 전문가가 되겠다는 집념이 김 대표를 일본 전문서로 독학獨學 또는 毒學하는사람으로 만들었다.

◇ 자신감과 독창성으로 차별화 시도
김 대표가 우동과 소바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여러 곳에서 갈래 길이 나왔다. 

즉 만드는 방법, 소재의 종류,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취향, 지역과 점포의 특성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그야말로 사랑을 따르자니 돈이 울고, 돈을 따르자니 사랑이 우는 격이었다. 처음에는 일본정통 소바를 목표로 했다. 고생 끝에 만족스러울 만큼 시현해냈다.

하지만 정작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부산 사람들이었다. 일본에서 소바를 경험했거나 일본인이 손님으로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니 소바에 대한 평가가 좋을 리 없었다. 분명히 객관적으로는 좋은 음식이지만 현실적으로 대다수 고객이 원하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방향을 바꿔 김 대표만의 방식으로 만든 소바가 이른바 우동식 제면법 소바다. 이미 최고의 기량을 갖춘 우동 제면법을 소바에 적용시킨 그만의 방식이다. 밀가루 60%와 메밀 40%를 섞어 만든 이 제면법은 우동의 장점과 소바의 장점을 모두 살리고자 했다. 

한국 사람은 누구나 쫄깃한 식감을 좋아한다. 이는 사누키우동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런 쫄깃한 식감과 메밀면 특유의 향과 식감을 조화시킨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개발한 우동식 제면법 소바는 부산 사람 입맛에 적중했다.

부산에 소재한 면 전문점이라면 당연히 밀면을 취급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누구나 만들어 파는 밀면 대신 부산에서는 생소한, 그러나 메밀로 만든 국수인 막국수를 메뉴로 삼았다. 막국수는 밀면보다 김 대표가 훨씬 잘 만들 수 있고 메밀 전문점 이미지와도 부합하는 메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막국수는 소바와 함께 이 집의 간판 메뉴가 된다.

◇ 집중력과 효율성 중시 태도
<김정영 분식 면옥향천>의 메뉴는 많아 보이지만 크게 대별하면 소바와 막국수, 그리고 돈가스다. 여기에 초밥이 살짝 가세한 정도다. 김 대표는 처음 개점했을 당시부터 우동, 소바, 돈가스 세 가지 메뉴만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 제공=월간 외식경영
▲ 제공=월간 외식경영
그 뒤 건강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점포 상권이 열악한 곳이어서 우동은 메뉴에 적합하지 않았다. 메밀 면에 집중하면서 다시 우동은 잠시 보류하기로 하고 지금의 메뉴 체제로 개편했다.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고 그래서 손님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수 있는 것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김정영 분식 면옥향천’의 브랜드 가치는 높아졌고, 그의 메밀 면은 현재 고객과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 수준의 메밀 면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대로 만든 메밀 면에 열광하는 고객이 늘면서 개점 2년도 채 안 되어 점포를 하나 더 냈다. 그런데 일반적인 통념을 깨고 본점 부근 가까운 곳에 열었다. 물론 판매와 유통 본위의 시각으로 보면 잘못된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생산과 관리 본위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효율성과 원가절감을 위한 포석이다. 이런 결정은 일정 수준의 브랜드 파워를 형성하고 난 뒤에 생긴 어느 정도의 자신감도 한몫 했다. 만일 음식 수준이나 지명도가 떨어지는 식당이라면 절대 해선 안 될 의사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