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좀 많이 힘드네요.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천정부지로 오른 임대료는 이제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예전 허름한 피맛골에 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입주한 A점포 관계자)

"회사에서 가까워도 르메이에르에는 잘 안 가게 돼요. 상가 안에 맛집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근에 다른 맛집도 많고, 건물내부가 워낙 복잡해 갈 때마다 '미로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요. 다른 직원들도 차라리 조금 멀더라도 얼마 전에 지어진 '그랑서울'로 가자고 하는 추세입니다. '식객촌'을 표방한 그랑서울이 요즘 인기거든요." (광화문역 인근 회사에 다니는 박모씨(31))

 
[커버스토리] 피맛골 '맛집 백화점' 명성은 어디로…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에 위치한 빌딩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하 르메이에르)에서는 짙은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600년 역사를 간직한 피맛골의 맛집들이 대거 옮겨온 빌딩으로 유명했던 만큼 다소 의외의 반응이다.

르메이에르는 지하 2층, 지상 20층 총 870여호실 규모의 대형 오피스빌딩이다. 이 중 오피스텔이 529가구(전용면적 57~252㎡), 상가 350여개로 구성돼 있다.

지난달 31일 점심시간에 찾은 르메이에르. 맛집으로 소문난 B음식점 밖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시선을 끈다. 하지만 이는 몇몇 점포에 한정된 모습이다. '피크타임'임에도 불구하고 빈 테이블이 다수인 식당을 비롯해 심지어 문을 닫은 점포도 목격됐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르메이에르의 공실률은 10~20%. 르메이에르가 광화문 한가운데 대로변 노른자위 땅에 위치했음을 감안할 때 초라한 성적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조심스레 입을 뗀 C점포 관계자는 "이곳에는 피맛골 맛집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여전히 손님이 북적거리는 가게도 있지만 힘든 곳이 더 많다"며 "주거환경은 쾌적하게 개선됐을지 모르지만 영세한 상인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예전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르메이에르는 피맛골을 재개발한 자리에 세워진 빌딩으로 분양 당시만 해도 피맛골 상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4년 당시 견본주택을 오픈하자 하루 평균 2000∼3000명의 방문객이 몰렸다. 특히 상가는 평당 분양가가 최고 7500만원까지 치솟았지만 견본주택은 연일 분양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분양가가 높은 만큼 임대료도 높을 수밖에 없고 영세한 임차 상인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는 고객이 많이 찾는 점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밖으로 고객이 줄서 있던 B음식점 대표는 "당장은 손님이 많아 유지되고 있지만 2년마다 10% 정도씩 임대료를 올리다 보니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면서 "2008년 8월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는 월 1600만원대였던 임대료가 10%가량씩 두번 오르고 나니 현재 2100만원이나 된다"고 토로했다. B음식점은 이번달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만큼 임대료가 10% 더 오를 전망이다.

물론 임대료 10% 인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상폭이다. 하지만 르메이에르는 광화문역 역세권이면서 대로변 사거리 코너에 위치해 가시성이 좋고, 양쪽으로 횡단보도가 있어 접근성도 우수하다. 특히 피맛골 유명 맛집들이 다수 입점한 만큼 임대료 문제만으로 현재의 위기에 처했을리는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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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사기' 운영주체 휘청… 자구노력 절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르메이에르는 지난해 '분양사기'로 건설사 대표가 구속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정경태 르메이에르건설 회장(63)은 지난 2007년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준공한 뒤 미분양된 40여개의 사무실을 부동산신탁회사에 담보신탁했음에도 이 사실을 숨기고 분양계약을 체결해 약 187억원의 이득을 챙겼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서 사실상 회사가 문을 닫은 가운데 최근에는 대출금을 갚지 못한 회사 보유 부동산들이 경매로 나오는 실정. 이로 인해 해당 오피스텔과 상가에 입주해 있는 일부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운영주체인 르메이에르건설이 휘청거리다 보니 상권 활성화에 힘을 쏟지 못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르메이에르 인근에 들어선 GS건설의 그랑서울이 건설사 직영체제로 상권 활성화를 모색한 끝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것도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상가내부에도 상권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점이 적지 않다. 먼저 고객 동선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내부가 복잡해 어떻게 목적 점포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 양재역, 을지로 등의 주상복합 상가 중 점포 수를 늘리기 위해 통로를 좁히거나 이용고객을 위한 휴게공간을 없애는 등 상권 활성화에 실패한 경우와 흡사하다. 2000년대 초반 반짝 유행했던 동대문의 박스형 점포 역시 높아진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합정역의 메세나폴리스 몰은 주상복합 상가임에도 선진국의 쇼핑 트렌드를 맞추고자 스트리트형 동선을 확보하고 업종중복을 방지하는 등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또한 르메이에르는 배후세대에 비해 지나치게 점포수가 많고 대다수가 음식점이나 커피전문점으로 업종 간 경쟁이 치열하다. 신촌 밀리오레와 창동 민자역사 등 쇼핑몰식 상가들이 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유입된 고객을 배려한 점포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는 "르메이에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핵심점포의 확보와 함께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등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업종 간의 특색을 갖추고 분양주 모임에서 운영전문업체를 선정해 상권 활성화에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층별로 테마를 정해 업종을 유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