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제공하는 적금금리는 평균 연 2% 초중반이다. 여기에 이자소득세(15.4%)를 제하면 실질적으로 받는 금액은 더 줄어든다. 때문에 새로운 투자처를 찾거나 아예 적금 대신 담보대출 등 금융 빚을 갚는 금융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 기업은행 등 6대 시중은행의 9월 말 현재 총 적금잔액은 39조4804억원이다. 지난해 12월 말(39조7923억원)보다 3119억원 줄었다. 일부 은행에선 수조원의 적금이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은 1조4000억원가량 적금잔액이 줄었고 우리은행 역시 4000억원 가까이 축소됐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은 각각 3000억원, 4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기예금 규모는 기업의 영향으로 그나마 늘어나는 추세다. 6대 시중은행의 총 예금을 분석한 결과 9월 말 현재 정기예금 규모는 424조3000억원이다. 하나은행과 기업은행을 제외한 4개 은행의 예금이 지난해 12월 말 대비 1조~2조원가량 늘었다. 우리은행의 경우 최근 9개월 새 4조원 이상 급증했고 KB국민은행은 2조3000억원, 신한은행은 2조6000억원 상승했다. 외환은행 역시 1조2700억원 늘었다. 반면 하나은행과 기업은행은 같은 기간 각각 5900억원, 1900억원 하락했다.
이처럼 예금잔액이 늘어난 것은 법인과 고령층의 자산가들이 예금에 많이 가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20~50대 개인고객의 예금 가입은 점점 줄고 있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김용태 외환은행 영업부 WMC센터 PB팀장은 "70∼80대 자산가들은 예금금리가 내렸다고 해서 금방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중고위험 투자상품 가입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다만 과거에 비해 예금기간을 짧게 가져간다"며 "1년 이상 예금을 거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보면 예금규모가 늘었지만 이는 기업 등 법인에서 거액을 예치했기 때문"이라며 "개인예금은 오히려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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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예·적금 버리고 중·고위험 상품 권유
개인고객이 예·적금 가입을 꺼리는 이유는 은행이 너무 낮은 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대출금리의 경우 고객 모르게 가산금리(기준금리에 덧붙이는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인상하면서 예·적금금리는 꾸준히 내리고 있는 것.
은행들이 종종 펼치던 특판 마케팅조차 실종된 지 오래다. 특히 지난 10월28일 저축의 날에도 특판 이벤트를 펼친 은행은 단 한곳도 없었다. 따라서 저축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가운데 은행지점 직원과 PB(프라이빗뱅커)들이 중·고위험 투자상품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입만 하면 은행에서 이자를 제공해야 하는 예·적금 대신 주식과 시장금리 흐름에 따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험성이 높은 투자상품을 적극 권장하는 것.
국민은행의 한 PB는 "시장금리가 너무 낮아 최근에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비교적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중·고위험 상품을 추천한다"며 "안전한 상품만 가입하면 실질적으로 손해보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고객들도 예·적금 대신 ELS나 펀드실적에 대해 문의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은행에서 주로 추천하는 상품은 주가연계신탁(ELT)과 주가연계펀드(ELF) 등이다. KB국민·신한·농협·외환·하나·기업·우리은행 등 7대 시중은행의 9월 말 ELT와 ELF 판매잔액은 14조8346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말(9조5146억원)보다 56.1% 증가한 액수다. 올 1~9월 총판매액도 5조32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상품은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ELS를 기초로 해 만든 것이다. 대부분 한국, 유럽, 중국 등 3개국 주가지수와 연계된 상품이며 이들 지수가 일정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
각 상품별로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위험도는 천차만별이다. 다만 자칫 금융정보 및 지식이 낮은 사람이 '묻지마 투자'를 할 경우 원금마저 잃을 수 있는 만큼 가입 시 유의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에서 추천한다고 무조건 가입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자신의 급여상태와 금융정보의 이해도를 꼼꼼히 따져본 후 안전상품으로 가입할지, 중·고위험 상품으로 가입할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비자 분통 터뜨리는 적금 '꼼수 마케팅'
소비자를 울리는 은행권의 '꼼수 마케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기적금의 경우 연 3%대의 비교적 높은 금리를 줄 것처럼 소개하면서 과도하게 카드를 이용해야 하거나 비현실적인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에 따르면 KB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농협, IBK기업, SC 등 8개 시중은행에서 시판 중인 16개 정기적금 금리를 조사한 결과 우대금리를 제외한 기본금리가 3% 이상인 적금은 단 1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15개 적금은 급여이체, 공과금 납부, 주식거래 등의 조건에 부합해야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6개 상품은 신용카드 또는 체크카드 이용실적을 채워야 은행 측이 제시한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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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상 고금리를 내세운 'KB굿플랜적금', '부자되는적금세트', '우리함께행복나눔적금' 등 3개 상품은 연간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카드실적을 요구한다. 월 불입액도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제한해 카드이용액을 수백만원 늘려도 이용자가 추가적으로 손에 쥐는 이자는 연간 몇만원에 불과하다.
이 중 SC은행 '부자되는적금세트'의 경우 신용카드는 매달 30만원 이상, 체크카드는 매달 50만원 이상 사용해야 연 6.5% 금리가 적용된다. 그런데 이 금리를 적용받는 월 적립금액은 10만원을 넘을 수 없다. 결국 신용카드를 연 360만원(체크카드 600만원)이상 결제해도 세후로 1년 뒤에 받는 이자는 고작 3만5743원에 불과한 셈이다.
최현숙 대표는 "1%라도 높은 금융상품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점을 이용해 은행들이 소액 단기저축상품을 이용한 카드수수료 수입 올리기에 급급한 상황"이라며 "고금리에만 현혹되지 말고 실제 수익률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