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의 LIG손해보험 인수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동안 꿋꿋하게 버티던 이경재 KB금융 이사회 의장이 백기를 들고 자진사퇴했기 때문.

금융당국도 KB금융지주의 LIG손보 인수를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 간 내분에 이어 2차전으로 확대된 금융당국과 KB금융 사외이사 간 기 싸움도 일단락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KB금융이 LIG손보를 인수하면 총자산 및 당기순이익 기준 20% 수준에 머문 그룹 내 비은행부문 비중이 단숨에 30%에 육박하게 된다. 또한 경기방어적 성격을 지닌 손해보험업에 진출함으로써 금리변화에 민감한 그룹 내 수익구조를 상당부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대형 4사에 의해 과점체제가 형성된 국내 손보업에 진출할 경우 업계 내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사진제공=LIG손해보험
/사진제공=LIG손해보험

◆KB금융 사외이사 의장 자진사퇴 '백기'

"비은행부문 강화를 위해 LIG손해보험 인수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신임 회장이 11월21일 취임식에서 강조한 말이다.

KB금융에 새 수장이 선임된 만큼 앞으로 LIG손해보험 인수 구도가 어떻게 흘러갈지 금융권의 눈과 귀가 그에게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흐름을 보면 KB금융을 둘러싼 대내외적 불확실성 리스크는 일부 해소된 상태다. 그동안 사외이사 퇴출여부를 두고 금융당국과 KB금융 사외이사 간 소리 없는 격돌이 벌어졌는데 이경재 KB금융 이사회 의장이 물러나면서 일단락된 것이다.

이경재 의장은 지난 11월20일 공식 사의를 표명했다. 이 의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윤종규 회장의 취임과 동시에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직과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새롭게 취임하는 윤종규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KB금융이 리딩그룹으로 반드시 재도약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기에 떠나는 마음이 가볍다"고 퇴임소감을 전했다.

금융당국과 KB금융 사외이사들은 두달 가까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치렀다. 이로 인해 LIG손보 인수 승인이 계속 지연됐다.
 
당초 KB금융은 지난 11월12일 열린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LIG손보 인수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내정자가 새 회장으로 결정났고 LIG손보를 인수하는 데 별다른 장애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KB금융은 조직개편과 내년 사업계획까지 사전에 모두 준비해 대외적으로 알릴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KB금융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은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이 KB국민은행 주 전산기 교체를 두고 내분을 일으킬 때 중재는커녕 편 가르기로 갈등의 골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따라서 금융권에서는 새 회장이 내정된 만큼 KB금융 사외이사도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들은 관치금융이라며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KB금융 이사회는 총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내이사는 회장뿐이고 나머지 9명이 모두 사외이사다. 이 중 이경재, 김영진, 황건호, 이종천, 고승의, 김영과 등 6명의 임기가 내년 3월까지다. 금융권에선 이 사외이사들이 임기까지 버티기 전략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괘씸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KB금융 내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는데 정작 KB금융 사외이사들이 실력행사에 나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최 금감원장은 지난 11월18일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 1년 4개월을 남겨두고 낸 사표다. 그의 사의는 일신상의 이유로 알려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세차례의 대형금융사고와 최근 발생한 KB금융 사태가 사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외이사들의 거취까지 결정하는 것은 엄연한 관치금융"이라면서도 "이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여론이 금융당국보단 KB금융 사외이사에 쏠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류승희 기자
/사진=류승희 기자

◆KB금융, 급한불은 껐지만…

금융권에선 금융위원회가 11월26일 열리는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KB금융의 LIG손보 인수 승인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한다. 늦어도 12월 이전에는 마무리 지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LIG손보 측에 내야 하는 지연이자 때문이다. KB금융은 지난 10월28일부터 계약이 체결되는 날까지 매일 약 1억1000만원가량의 지연이자를 LIG손보에 물고 있다. 현재까지 지급해야 할 금액은 20억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도 KB금융의 내부사정을 감안해 최대한 서두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변수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이경재 의장 외에 다른 사외이사들이 11월20일 현재까지 거취를 표명하지 않아 금융당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또한 그간 많은 논란이 불거진 만큼 LIG손보 혹은 금융당국의 급작스러운 변심으로 매각이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경재 의장의 사퇴로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지만 KB금융 주변에 남은 잔재가 언제든 화마로 돌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인식한듯 윤종규 KB금융지주 신임 회장은 "(LIG 손해보험 인수를 위한) 감독기관 승인을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당부했다.

 임기 줄고 겸직 안되고… 깐깐해진 사외이사

금융당국이 KB사태를 계기로 규제를 강화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내놨다. 교수나 공무원은 주요 금융사 사외이사로 들어가기 어렵고 임기도 1년 줄어드는 방안이 주요 골자다. 또한 2개사 이상 사외이사 겸직도 금지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신제윤 위원장 주재로 금융발전심의회 정책·글로벌분과 확대 연석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논의한 뒤 입법예고했다.

모범규준에는 금융권 사외이사가 금융, 경영, 회계 등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보유해야 하고 직무수행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것을 자격요건으로 했다. 금융사는 이에 맞춰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 운용·공개토록 했다. 기관투자자, 주주 등 외부기관도 사외이사 후보군을 추천할 수 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 역시 금융경험과 전문성을 갖추도록 했다. 위험관리위원회와 보상위원회에는 금융, 회계, 재무분야 경험자 1명 이상을 중복되지 않게 선임해야 한다.

임기는 은행, 은행지주사의 경우 2년에서 1년으로 축소하되 5년 이상 할 수 없도록 했다. 제2금융권의 사외이사 임기는 현행(3년)을 유지한다. 사외이사에 대한 감시와 평가도 강화된다.

금융위원회는 또 사외이사에 대해 매년 자체평가를 실시하고 2년마다 외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도록 금융사에 권고했다. 사외이사 재선임 시에는 사추위가 추천서에 평가결과 검토보고서를 작성토록 하고 추천사유를 서술형으로 구체적으로 기재토록 했다.

이 모범규준은 전체 465개 금융사 가운데 11개 금융지주, 18개 은행, 33개 금융투자사 및 자산운용사, 32개 보험사 등 118곳에 적용된다. 오는 2016년에는 적용대상이 제2금융권으로 확대된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하반기 이 규준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한 경우 직접 시정권고할 예정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