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주 기업은행장이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첫 여성행장으로서 최근 1년간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그의 행보에 따라 앞으로 제2, 제3의 여성행장이 탄생할 수 있어서다.

금융권에선 전반적으로 그의 경영능력에 '무난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가 행장에 오를 당시 기업은행 내부에선 '환영'보다는 '불안감'에 더 무게가 실렸다. 보수적인 은행권의 특성상 여성행장 탄생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임 후 1년이 다 돼가는 현 시점에는 이 같은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초저금리시대에도 불구하고 3분기에 무난한 실적을 기록했고 임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기존의 우려를 불식시켰다는 분석이다. 특히 그는 현장경영을 중시하고 중소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하는 등 대외적인 행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불안감이 컸는데 이제는 믿고 따라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가 남은 임기동안 기업은행 조직을 잘 이끌 수 있도록 임직원들이 힘을 합쳐 도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가 선임된 이래 극심했던 인사 청탁, 줄서기 문화가 다소 줄었다"며 "기업문화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귀띔했다.

다만 일각에선 기업을 이끌 만한 카리스마 부족과 권선주 행장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나왔다. 기업은행 내 조직과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개인의 경영능력이 아직 수면위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권 행장만의 색을 담은 경영능력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나온다.


 

/사진=머니투데이DB
/사진=머니투데이DB

◆은퇴시장 출사표 성적은?

권선주 행장은 임기 내 이룰 목표로 세계 100대 은행 진입을 꼽았다. 그는 취임식에서 2016년까지 총자산 260조원, 중소기업대출 125조원, 중소기업 고객 수 130만개를 달성해 글로벌은행으로 도약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올해 3분기(9월말 현재) 기준 기업은행의 총자산은 236조원 규모다. 앞으로 2년 간 총자산 20조원 이상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셈이다.

초저금리와 저성장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이 같은 공약을 지켜낼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기업은행의 올해 3분기 IBK캐피탈, IBK투자증권 등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2338억원에 달한다.

전년 같은 기간(2173억원)보단 7.5% 증가했지만 전분기와 비교하면 20%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여기에 내년 초 또 한번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예대마진 등 시중은행의 수익성 하락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점쳐진다.

따라서 앞으로 권 행장이 미래 성장을 위해 어떤 시장을 개척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내놓은 세부전략이 건전성 관리와 평생고객화, 정도경영이다.

특히 이 중 권 행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권 행장은 "올해 발생한 금융권의 사건사고를 통해 '실적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시대는 끝났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은행업의 기본이자 생명인 신뢰를 지키기 위해 정도경영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평생고객화를 위해 그가 꺼내든 카드는 은퇴금융서비스다.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의미다. 권 행장은 지난 8월1일 기업은행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은퇴금융 브랜드 'IBK평생설계'를 내놨다.

아울러 210명의 은퇴설계전문가 'IBK평생설계플래너'를 전국 영업점에 배치했다. 이들은 전용 금융상품 안내를 비롯해 20대부터 은퇴 이후까지 다양한 생애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프로그램에는 해외전세기 투어, 노래교실, 상조·장례, 건강검진, 재취업·창업교육 등이 포함된다.

기업은행은 앞으로 더 많은 직원에게 은퇴 관련 교육을 실시해 모든 직원을 IBK평생설계 플래너로 만들 목표를 세웠다. 기업은행 측은 "전문화된 직원들이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상품을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여성행장 수식어 'NO' 이제 은행장으로

권선주 행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앞세워 직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는다. 평소엔 부드럽고 섬세한 성향이지만 위기가 닥칠 땐 180도 달라진다. 위기가 닥치면 이를 피하기보다는 정면돌파로 맞선다.

그가 행장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내부직원들이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는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를 피하지 않고 더 들으려 애썼다. 권 행장은 "행장에 오른 후 직원들과 소통하려 노력했고 그들과 접촉해 대내외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결국 그의 정면돌파 경영은 그를 반대했던 임직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각에선 '위기를 즐기는' 행장으로 평가한다. 신중하고 꼼꼼한 성향이지만 때로는 대범한 경영능력으로 주위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는 후문. 이는 그가 평소 생각하는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왕이 되려거든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무거운 직책을 맡았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이제는 어떤 난관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권선주 행장의 꼬리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여성'과 '유리천장을 깬 행장'이다. 첫 여성행장에 오른 만큼 여성이라는 명사가 어느 순간 수식어로 돌변해 그를 따라다닌다. 권 행장은 이러한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여성행장이 아닌 순수한 은행장으로 불려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그에게 어떤 수식어가 붙을지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