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로 하락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내년 1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중질유)선물 가격이 배럴당 67.38달러를 기록했다. 연초만 해도 WTI선물 가격이 99.29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 세계 기름값이 32.14%나 떨어진 것이다.

금융위기 전 배럴당 140달러에 달했던 국제유가는 올 들어 추락일로를 걸었다. 미국과 OPEC(석유수출국기구) 간에 '유가전쟁'이 발발, 치킨게임이 벌어지면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마저 나올 정도다. 통상 국제유가의 급락은 양면성을 지닌다. 에너지 가격의 약세는 글로벌경기 둔화를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을 증가시킬 수 있어 경기에 호재다.

국제유가의 가격은 경기에 민감한 요소이기 때문에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 수혜주와 피해주의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날 정도다. 국제유가 하락의 직접적 수혜주인 대한항공은 지난 4일 종가 기준으로 올 들어 43.43% 올랐다. 반면 국제유가 하락의 대표적 피해주인 S-Oil은 연초 대비 41.69% 내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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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하락, 경기엔 호재

국제유가의 하락은 국내경제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10% 하락할 경우 소비 0.68%, 투자 0.02%, 수출 1.19% 등의 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소비자물가도 0.46% 낮추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천정훈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유가가 내려가면 순상품교역조건(수출 1단위로 수입할 수 있는 수입량)이 개선되면서 생산원가가 절감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유가하락에 따른 시간당 실질임금 상승과 에너지 지출 비중 감소는 미국의 실질 개인소비지출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며 미국의 실질 개인소비지출의 증가는 시차를 두고 국내 수출증가율의 상승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금 더 시야를 좁히면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유틸리티, 항공, 해운, 운송과 같은 업종이 수혜를 본다. 이외에 여행주도 수혜주 목록에 발을 걸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항공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올 들어 각각 43%, 12% 상승했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항공사의 유류비는 운항원가 중 36%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제트유가 급락에 따라 항공운송업계의 유류비 부담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유가하락은 항공사의 올해 4분기와 내년 이후 영업이익 개선의 핵심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틸리티(수도·전기·가스)에도 국제유가의 하락은 호재다. 원료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유가에 3개월 후행하는 LNG 가격이 연말연시 유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할 경우 연료비용이 20~30%가량 감소하며 실적호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익찬 아이엠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유틸리티업종의 대표종목인 한국전력에 대해 "유가가 10% 하락하며 연간 연료비가 1조6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임에 따라 한전의 영업이익도 1조6000억원 늘어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해운업종의 경우도 전통적인 유가하락의 수혜주다. 다만 시장에서는 메가얼라이언스(해상운송회사들의 국제적 협력 모임) 주도의 운임 인하경쟁이 재개되며 비용절감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강성진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컨테이너 해운사들은 물류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화주들의 운임 하락요구를 치열한 경쟁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메가 얼라이언스 주도의 운임 인하경쟁이 재개되면서 연중 운임은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유가하락에 따른 비용절감을 일정부분 상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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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 높은 종목 골라야

반면 국제유가의 상승을 애타게 바라보는 회사도 있다. 전통적인 국제유가 상승 수혜주인 에너지, 소재, 산업재 등에 속한 업체들이다. 한승재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정제마진이 반등했지만 정유사들의 주가는 유가급락 리스크를 반영하고 있다"며 "당장 반등한다 하더라도 동절기의 계절적 효과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종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유가약세는 조선주에는 반박할 수 없는 악재"라며 "유가하락이 조선주에 치명적인 이유는 장기적으로 해양유전 개발의 필요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도 해양에너지 개발주체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예상수익성을 재산정해야 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에 절차상의 지연이 발생해 부정적이라는 게 한 애널리스트의 설명이다.

그는 "일부에서는 상선전문의 건조업체들이 유가하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상선부문에도 유가하락은 부정적"이라며 "최근 한국 조선산업이 상선시장에서 중국 대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우수한 선박 연비효율이다. 이 부분이 유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희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호재를 보는 업종이라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예컨대 유틸리티업종 가운데서도 자원개발 관련주는 국제유가 하락의 피해주다. 주익찬 애널리스트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유가하락으로 자원가치가 감소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목표가를 10만원에서 7만5000원으로 하향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수혜주 위주로만 보면 되는 것일까. 배성진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유가의 하향 안정화에 대한 컨센서스가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항공, 해운 및 여행주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또한 만일 유가하락이 다시 진행돼 국내증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면 상대적 안정성이 높은 방어주(화장품·음식료·의류·제약·전력 등) 및 고배당주들의 상대적 강세 흐름이 여전히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쪽에도 관심을 가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배 애널리스트는 "아울러 최근 증권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중소형주 대비 대형주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안정됐다"며 "대형주 중심의 대응전략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