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에서 탈락한 인사라도 금융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면 CEO 자리를 꿰차고 특정인사를 등용하려다 비난여론이 거세지면 다른 자리에 앉히는 사례도 눈에 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금융권 임직원들의 줄타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때에 따라선 상대후보에 대한 투서와 비방이 난무하기도 한다. 자신의 라인이 '썩은 동아줄'인지, '튼튼한 동아줄'인지에 따라 초고속 승진 열차를 타거나 명예퇴직 명단에 오를 수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업무보다 동아줄 라인을 잡는 데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게 요즘 금융인의 실태"라며 "대한민국 금융이 80~90년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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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가 지난달 24일 은행연합회 이사회에 들어가 신 금융 관치 인사 반대를 촉구했다. 그러나 하영구 회장은 예정대로 취임했다. /사진=뉴스1 송원영 기자 |
◆후보에도 없었는데 행장으로… '서금회'의 힘
최근 금융권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대표적인 곳으로 우리은행과 은행연합회가 꼽힌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로 이순우 행장과 이동건 수석부행장, 정화영 중국법인장을 청와대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광구 당시 부행장과 김승규 부행장을 추가로 추천할 것을 금융위에 요구했다.
이후 이광구 현 차기 행장은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꾸려지기도 전에 이미 내정설이 돌았고 때마침 연임이 유력시 됐던 이순우 행장은 돌연 연임포기 의사를 밝혔다. 이순우 행장은 "연임을 포기하지 않으면 조직이 흔들리게 된다"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정부 입김이 작용한 것에 대해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서강대를 졸업한 이 차기 행장은 서금회(서강대금융인모임) 출신이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서강대 출신 금융권 동문들이 만든 모임이다. 20~30명 수준이었던 서금회는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300여명 규모로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일 취임식을 가진 하영구 은행연합회장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케이스다. 그 역시 새 회장을 뽑는 이사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이미 내정설이 돌았다. 당시 씨티은행장이었던 하 회장은 사퇴하기 전부터 차기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낙하산 등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윤종규 현 KB금융 회장으로 바통터치 됐고 곧바로 은행연합회장에 내정됐다. 정부가 처음엔 그를 KB금융 회장으로 밀어붙이려다 비난여론이 확산되자 은행연합회장으로 바꿨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도 서금회 입김에 힘입어 현직에 오른 인물로 꼽힌다. 차기 사장으로 박동영 전 대우증권 부사장, 이영창 전 WM사업부문 부사장, 황준호 상품마케팅 부사장 등 3파전이 예상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홍 사장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후부터 움직임이 수상쩍었다. 신임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유력후보가 낙마하고 주주총회 일정을 연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 그러다 뒤늦게 다크호스로 떠오른 홍 사장의 내정설이 돌더니 지난 11월26일 이사회에서 그가 최종 사장으로 확정됐다. 1963년생인 홍 사장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서금회 출신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서금회가 내년에도 자신들의 파워를 과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초 금융투자협회장과 예금보험공사 사장, 신한은행장 인선작업이 본격화된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이 차기 수장으로 어떤 인물을 점 찍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된다.
◆투서와 비방까지… 라인을 잡아라
이처럼 정부가 밀어주는 인물이 대거 CEO에 낙점되면서 금융권 임직원들 간 줄타기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차기 수장 선임이 예고된 곳은 벌써부터 주요 임원들이 서금회 출신의 인물을 찾아 줄을 대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특히 최근엔 90년대 기승을 부렸던 투서와 비방이 잇따라 나왔다. 이순우 행장의 경우 연임 가능성이 유력해지자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우리은행 직원이 그의 비리를 들춰내는 투서를 청와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투서내용은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결론나거나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 투서를 빌미로 이 행장의 자진사퇴를 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증권 사장 인선과정도 우리은행과 판박이다. 내부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유력후보자를 비방하는 투서를 청와대에 보냈다. 이 때문에 신임 사장 선임절차가 뒤로 미뤄졌고 결국 해당 인사는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서 내용 역시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혐의가 없거나 근거 없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은 부적절한 외압을 걸려주는 당국의 기능이 없어진 느낌"이라며 "은행 내부직원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은행업부보단 특정 라인잡기에 혈안이 된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서금회의 입김이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하자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최근 비상대책회의에서 "(금융권에) 신관치금융시대가 열렸다"며 "대통령은 비선실세에 흔들리고 금융권은 대통령 동문에 좌우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신관치금융으로 우리 금융경쟁력이 급격히 하락했다"며 "세계경제포럼이 우리 금융시장 성숙도를 세계 80위로 평가했는데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7년 동안 53단계 추락한 것이다. 권력·자본·의회의 3대 독점과 3대 독식을 고치지 않고서는 안된다고 분석했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