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공헌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단발적이고 이벤트성이 주류던 사회공헌은 기업 내 관련조직이 신설되면서 체계화되더니 이제는 수익을 창출하는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이른바 '사회적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로 옮겨가는 것. 공유가치창출경영은 지역사회의 경제·사회적조건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올해 사회공헌 트렌드를 이끌 전망이다.


CJ그룹이 KOICA와 함께 진행 중인 ‘베트남 닌투언성 새마을 CSV사업’. /사진제공=CJ그룹
CJ그룹이 KOICA와 함께 진행 중인 ‘베트남 닌투언성 새마을 CSV사업’. /사진제공=CJ그룹

◆사회공헌 트렌드, CSR → CSV
공유가치창출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사회적문제를 해결하면서 경제적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의 경영전략이다. 기업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개념은 지난 2011년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하면서 국내에 전해졌다.

사회공헌 방향을 공유가치창출로 바꾼 기업 중에는 CJ그룹이 눈에 띈다. CJ그룹은 지난해 전담부서인 CSV경영실을 설치하고 지주사 임원 및 각 계열사 대표들로 구성된 '그룹 CSV 경영위원회'를 정기적으로 열며 공유가치창출경영을 펼치고 있다.


CJ그룹은 중소기업의 해외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판로개척과 인프라구축에 적극적이다. 지역특색 제품 및 특산물을 발굴해 유통을 책임지고 중소협력업체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한다. 이 같은 노력은 기업활동과 연관된 구성원 및 사회적 취약계층과의 지속가능한 동반성장을 도모하고 건전한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의지로 해석된다.

지난 2013년 '행복동행'을 선언한 SK텔레콤도 공유가치창출경영을 회사의 성장 및 추진방법론으로 삼았다. 특히 서울 중곡시장과 인천 신기시장에서 진행 중인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는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은 자사가 보유한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을 전통시장에 도입했다. 스마트전단, 할인정보, 쿠폰 발송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상인회와 손잡고 젊은 고객의 전통시장 유입을 지원한다.

또 유한킴벌리는 시니어사업을 내세우며 공유가치창출 노선으로 갈아탔다. 이 회사는 지난 2012년부터 고령화문제 해결과 시니어비즈니스 성장을 연계한 공유가치창출경영을 전개했다. 현재까지 130여개의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했고 19곳의 시니어 유관 소기업을 육성했다. 이러한 CSV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주관 '2014 한국의 경영대상'에서 CSV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기업들의 사회공헌은 사회적문제 해결과 동시에 경제적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추세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공유가치창출이 수익에 치우친 나머지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포용을 강조하는 사회적책임과 다소 거리가 벌어질 수 있다. 자신의 주머니 채우는 데만 급급한 변질된 공유가치창출경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사회공헌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반드시 사회적책임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한킴벌리의 ‘시니어가 자원이다’ 기업 광고 이미지. /사진제공=유한킴벌리
유한킴벌리의 ‘시니어가 자원이다’ 기업 광고 이미지. /사진제공=유한킴벌리

◆공유가치창출, 사회적책임 반드시 품어야
최근 사회적책임을 사회공헌활동으로 치부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활동으로 폄하하면서 공유가치창출을 추진하는 인식이 늘었다. 이 같은 추세로 인해 기업의 사회적책임이 후퇴하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공유가치창출경영은 기업이 좀 더 '착하게' 수익을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일 뿐이다. 수익창출과 연결시켜 사회적책임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 공유가치창출경영은 결국 기업의 수익 중심으로 재설정되고 만다. 사회공헌이 갖춰야할 사회적책임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공유가치창출은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경영원칙으로 삼은 뒤 경영전략차원에서 실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조직을 개편하거나 사회공헌 측면에서의 아이템을 찾는 것이 아닌 경영활동 전반에 대한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최근 공유가치창출로 바뀌는 사회공헌 트렌드와 달리 사회적책임만 앞세운 경영전략을 펼친다면 어떨까. 사회적책임은 기업의 책임 회피수단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일부 기업들이 분식회계, 횡령, 배임, 환경오염 등 법적인 책임에 불성실했던 부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중에는 순간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사회공헌활동이나 기부 등 사회적책임으로 무마시키려해 비난을 산 기업도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책임과 공유가치창출 중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은 승부를 가릴 수 없는 소모전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공유가치창출에 사회적책임이 반드시 내재돼야 가장 이상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벤트성 아닌 효율적 투자로 '상생'

기업이 사회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업이 사회적책임을 무시한 채 재무적 성과에만 집중하면 해당 지역사회 및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하지만 기업들의 사회공헌은 과거 이벤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SR전략연구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한국기업의 CSR 현황 및 이슈'에 따르면 기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사업목표는 '지역사회공헌'(77%), '기부 및 자선활동'(75%), '동반성장 노력'(55%)인 것으로 집계됐다. 성과지표로 관리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기증된 컴퓨터 수 등과 같은 '산출물'이 41%로 가장 많았다. 환경문제 감소 등 '성과'는 25%, 사회양극화 해소 등 '영향'적인 측면은 18%에 불과했다. 일부 기업이 사회적책임을 모델로 제시하지만 기업 내부의 원칙이라기보다는 이벤트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은 조직명칭을 기존의 CSR에서 CSV팀으로 바꾸는 등 공유가치창출을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임민영 산업정책연구원 CSV본부장은 "공유가치창출이 새로운 미래 경영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며 "기존 사회공헌이나 사회적책임을 다했을 때 얼마를 투자했느냐가 더 중요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투자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임 본부장은 "많은 재원이 소요되는 사회적문제 해결에 기업들이 나서면서 경쟁력이나 성장과도 연결된다"며 "정부도 기업들이 공유가치창출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한다는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