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문의 신전, 붉은여왕의 신전, 해골의 신전(왼쪽부터). |
멕시코 팔렝케(Palenque) 국립공원은 마야 유적이다. 그들은 마야 달력을 썼고, 옥수수신을 믿었고, 인신공양 제사를 지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 그 중에서도 밀림에 숨겨졌던 마야인의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 낯선 시간, 처음 듣는 이야기
“씽코페소! 씽코페소!”
“벌스데이? 유 벌스데이?”
차에서 내려 유적지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아이들이 몰려온다. 다짜고짜 작은 목판을 내밀며 “5페소! 5페소(가격)!” 한다. 수완이 좋은 아이들은 “생일이 언제야? 너 생일?” 하며 여행자와 눈을 마주친다.
목판 위에 조르르 놓여 있는 것은 아이들이 직접 만든 목걸이다. 펜던트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마야 달력에 있는 각 달(月)의 상징물이다. 생일을 물어 보는 이유는 그 달에 해당하는 마야 그림을 권하기 위해서다. 이곳은 마야의 시간이 지배하는 곳, 석기 시대의 달력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곳 팔렝케는 과테말라의 티칼(Tikal), 온두라스의 코판(Copan)과 함께 3대 마야 유적이다. 기원전 300년 전부터 세워졌고, 6~8세기에 전성기를 이뤘다. 역사가 그렇듯, 성장과 쇠락을 겪으며 사라진 이 도시는 10세기 말 이후 방치됐고, 1784년에 발견되기 전까지 숲 속에 잠들어 있었다.
이곳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파칼왕이다. 그는 마야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로 유적과 문자, 자신의 무덤과 유골을 남김으로써 상상 속의 마야를 실존하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비문의 신전(temple of the Inscriptions)이 바로 파칼왕의 작품이다. 올려 보기에도 아찔한 경사를 가진 이 신전은 30m 높이의 거대한 피라미드 신전으로, 팔렝케 유적 중 가장 보존이 잘 돼 있고 규모가 크다. 675년 파칼이 착공했지만 683년 찬 발룸이 완공했는데, 이는 파칼 자신이 이 신전에 안치됐기 때문이다.
80세까지 장수한 파칼은 신전으로부터 27m 내려간 지하에 잠들었고, 수 세기가 지나 1952년 발견됐다. 여기에 마야 문자가 새겨진 묘비도 함께 발견됐는데 이는 팔렝카왕가의 역사를 담은 비문으로 마야를 연구하는 주요 자료다. ‘비문의 신전’이라는 이름 또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또 석관 안에서는 경옥으로 장식된 화려한 유골이 발견됐다.
파칼왕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지금도 ‘마야 우주인’설과 우주종말론까지 회자되고 있지만 가장 확실한 이야기는 ‘옥수수신’이다. 고대 마야인들은 태양신과 옥수수신을 믿었다. 창조신이 사람을 만들 때, 흙이나 나무로 만든 것은 실패했지만 옥수수 반죽으로 빚은 인간은 성공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옥수수는 그들의 주식이며 풍요의 상징이다. 삶의 기원이 된 옥수수는 신앙의 대상이었고, 고대 왕들은 전통적으로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다. 그들은 옥수수처럼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왕족이 태어나면 머리를 앞뒤로 눌러 옥수수 모양의 머리를 만들고, 심한 경우 뇌수술을 강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죽어서 옥수수신으로 부활할 것으로 믿었다. 파칼의 유골을 장식한 옥구슬 역시 옥수수 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거 참 재미있다. 우리에게 ‘옥수수’는 그저 여름 간식일 뿐인데, 마야 사람들에겐 삶의 모든 것이요, 신앙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죽음의 의미도 ‘생명의 교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신공양 제사를 지냈다. 즉, 사람의 생명과 다른 모든 것들의 생명을 같은 무게로 보았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생명 중시 사상이다.
![]() |
팔렝케 유적. |
![]() |
태양의신전 지붕. |
◆ 숨겨진 것들의 도시
팔렝케 여행은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 덥고 습한 정글, 그곳에 위치한 거대한 피라미드와 궁전을 일일이 오르고 내리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이미 파칼왕의 무덤에서 힘을 다 썼는데, 이어서 보이는 유적들이 17.7㎢의 넓은 밀림에 흩어져 있다. 이곳에 있었던 건축물이 5백개 이상이라고 한다. 아직 5% 밖에 발굴하지 못한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엘 팔라시오(el palacio)는 이름처럼 궁전이다. 궁전은 가로 100m, 세로 80m, 높이 10m의 기단 위에 서 있다. 상당 부분 훼손됐지만 그 규모와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궁전은 650년경부터 770년까지 몇 단계를 거쳐 건설됐고, 마야의 건축 양식과 벽화 등을 남겼다. 특히 중앙에 있는 15m짜리 4층 석탑은 상당히 독특하다. 아즈텍이나 마야 문명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탑으로 천체를 관측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발굴된 34개의 유적 중 이름을 가진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대부분 그곳에서 나온 벽화의 내용으로 이름을 지었다. 지붕 장식이 화려한 태양의 신전(templo del Sol)은 그림에 태양신이 그려져 있었고, 십자가의 신전(Templo de la Cruz) 역시 내부 판넬의 중심에 십자가 그림이 있다. 특별히 십자가의 신전은 높이가 높고 동쪽 유적과 궁전, 비문의 신전 등 많은 부분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면 반드시 올라가 봐야 할 유적이기도 하다.
잠시 쉴 겸 그늘에 앉아본다. ‘마야의 후예’들이 마야 달력 목걸이를 가지고 다시 모여든다. 그림은 비슷비슷하지만 색칠해 놓은 솜씨는 아이들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아이들은 물건 팔러왔는데 여행자는 이들과의 잡담이 즐겁기만 하다. 시간을 내 준 대가로 목걸이 하나를 선택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꼬마 상인들은 ‘니 엄마, 니 아빠, 니 동생……’을 끝도 없이 호명하며 추가 주문을 요구한다. 여행자는 기울어질 해를 걱정하며 더 봐야 할 유적과 즐거운 실랑이 사이에서 작은 갈등에 빠진다.
![]() |
미솔하 가는 길. |
![]() |
미솔하 폭포. |
◆ 미솔하와 아구아 아술
미솔하(misol-ha)는 높이가 35m로 멕시코에서 가장 큰 폭포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기에 불편했는데, 팔렝케 유적과 미솔하, 아구아 아술을 일일투어로 엮은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됐다. 사람들은 이 아름답고 거대한 천연의 수영장에서 아이들처럼 자맥질하고 웃고, 떠든다. 물보라가 만드는 무지개를 수시로 볼 수 있고, 폭포 바로 아래쪽은 깊게 파여져 있어서 사람이 지나갈 정도가 된다. 이 틈에 들어가 떨어지는 물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는데, 급하게 수직낙하 하는 물줄기가 튀어 올라 수영을 하지 않아도 금새 옷이 젖어 버린다.
아구아 아술(Agua azul) 역시 물놀이 하기 좋은 계곡이다. 500여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힘차게 흐르는 이곳은 말 그대로 푸른 물(blue water)을 자랑한다. 신비한 옥색 물빛이 넓게 퍼지며 4개의 수영할 공간까지 제공한다. 사실 팔렝케 유적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하루에 미솔하와 아구아 아술까지 둘러 본다는 것은 다시 올 날이 막연한 여행자의 조급함일 지 모른다. 이곳에선 이틀 이상 머물면서 하루는 마야로 여행을 떠나고, 다른 날엔 물놀이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는 게 좋겠다.
● 여행 정보
☞ 한국에서 멕시코 팔렝케 가는 법
1. 한국에서 멕시코 가기: 한국에서 멕시코로 가는 직항 비행기는 없으며 주로 LA나 캐나다를 거쳐 멕시코로 입국한다. 멕시코는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2. 팔렝케 가기: 멕시코 여행자들은 멕시코 시티에서 오악사카나 베라크루즈 등을 거쳐 팔렝케로 간다. 또는 칸쿤에서 버스를 타고 팔렝케로 들어간다.
3. 과테말라에서 팔렝케 가기: 팔렝케는 멕시코시티보다 과테말라와 더 가깝다. 그런 이유로 과테말라 여행자들이 팔렝케로 들어오거나 멕시코 여행자들이 이곳으로 거쳐 과테말라로 나가기도 한다.
☞ 멕시코 시외버스
멕시코 시외버스는 몇 가지 등급이 있는데,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는 상당히 깔끔하고 시설이 좋다. 시외버스터미널이나 버스 사무실, 인터넷에서 직접 예약하고 자리를 정할 수 있다. ADO: http://www.ado.com.mx/ado
☞ 팔렝케와 미솔하, 아구아 아술 여행
팔렝케 주변 숙소에서 팔렝케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미솔하는 시외버스터미널 옆에서 미니버스(콜렉티보)를 이용해 계곡 근처까지 가서 택시나 도보로 이동한다. 여기서 아구아 아술은 미솔하로부터 1시간 가량 차로 이동해야 한다.
이들을 한꺼번에 돌아보고자 한다면, 차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런 이유로 많은 여행자들이 세 곳을 묶어 일일투어로 이용한다. 일일투어는 숙소나 현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1일 투어비: 150페소 ~ 350페소
<여행지 주요 정보>
☞ 팔렝케 유적 입장료: 57페소
☞ 미솔하 입장료: 27페소
☞ 아구아 아술 입장료: 25페소
< 숙소 >
Hotel Maya Tulipanes: 테라코타 빛깔의 벽, 의자와 침대 등 이름처럼 마야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호텔이다. 객실이 깔끔하고 수영장, 와이파이, 바, 가라오케 등 시설을 갖췄다. http://www.mayatulipanes.com.mx
El Panchan: 정글에 자리잡은 유원지 같은 곳이다. 여러 채의 롯지가 있어 숙박을 할 수 있고, 레스토랑과 바에서는 라이브공연이 열린다. 작은 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투어 예약도 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정글 분위기를 만끽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금새 친해질 수 있는 즐거운 분위기이다. 팔렝케 유적지와 가깝다. http://www.elpanchan.com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