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제목과 같은 부산 국제시장이다. 쇠퇴하던 부산 전통시장을 영화가 되살린 것이다. <머니위크>는 과연 영화가 국제시장을 어떻게 바꿨는지, 또 어떤 이유로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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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
◆<국제시장> 덕에 살맛나는 ‘국제시장’
지난 1일 오후 6시. 서울에서 직접 차를 몰고 출발해 도착한 시간이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린 저녁. 영화의 인기를 반영하듯 국제시장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기자는 우선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배우 황정민) 가족의 터전이자 영화 촬영장소인 ‘꽃분이네’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하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헤매기를 10여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꽃분이네 가게 위치를 물었다. 서울에서만 살아온 기자의 귀에 들리는 음성. “오빠야~ 우측으로 쭉 가삐면” 등등. 다소 낯선 억양과 말투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친절히 가르쳐준 아주머니가 민망해 할까봐 ‘잘 알아들었다’는 제스처와 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찾아 나섰다.
아주머니가 손짓으로 가리킨 길을 따라 걷다보니 바닥에 ‘꽃분이네 가는 길’이라는 종이로 된 이정표가 보였다. 이정표를 따라 걷기를 3분쯤. 저 멀리 수십명의 인파가 몰린 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인파에 빙 둘러싸인 꽃분이네 가게 앞쪽에는 ‘사진촬영은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양쪽 측면에서 해주십시오’라는 협조 안내문구가 붙어 있어 얼마나 많은 인파에 몸살을 앓았는지 짐작케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영화 속 꽃분이네는 수입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시장 속 꽃분이네는 감독 윤제균과 배우 오달수의 사인이 담긴 머그컵과 ‘꽃분이네’ 글귀가 새겨진 손수건·스카프 등을 판매 중이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신미란씨(37)는 “원래 양말이랑 벨트·지갑, 시계 등을 판매하는 잡화점이었는데 영화 <국제시장>의 윤 감독과 오달수씨가 사인을 제공하고 기념품에 새겨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바쁜 그를 대신해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가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영화 <국제시장>이 인기를 끌면서 이곳 시장과 꽃분이네를 방문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실제로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 더구나 자꾸만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통행에 방해가 돼 주변상인들과의 마찰이 잦았고 가게 주인마저 최근 권리금 인상을 요구해 꽃분이네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귀띔했다. 이를 영화감독과 배우가 도와줘 지금은 매출도 늘고 주변 상가도 장사가 잘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일까. 국제시장 상인들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물론 지치고 힘든 기색도 보였지만 영화가 나오기 이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지자체를 비롯한 많은 기업체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시장에 활기가 생겼다.
국제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미영씨(가명)는 “요즘 같으면 장사할 맛이 난다”며 “영화 하나가 우리 시장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인근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한 사장도 “매출이 2배 가까이 늘었다”며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듯 신바람 나는 국제시장을 둘러보다 보니 배가 고팠다. 먹을 것을 찾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국제시장에서 유명하다는 씨앗호떡과 팥죽을 먹기 위해 또 다시 국제시장 일대를 헤맸다. 이내 씨앗호떡을 파는 노점을 찾았다. 종이컵에 담아준 호떡을 입에 물고 이번엔 팥죽을 찾아 나섰다. 뜨거운 호떡 속에 바삭한 씨앗이 씹히는 맛을 음미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이윽고 팥죽을 파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주변 시장도 ‘신바람’
“팥죽 한그릇 주세요”라는 기자의 외침에 할머니가 콩고물 떡이 얹혀진 팥죽을 그릇에 담아 줬다. 3000원이라는 말에 계산을 하고 좌판에 앉아 뜨거운 팥죽을 한입 머금었다. 이때 옆에서 팥죽을 먹던 아저씨가 “어디에서 왔냐”며 짧막한 부산 사투리로 말을 건넸다. “서울에서 왔다”고 답하자 이내 아저씨는 “총각도 영화보고 왔냐”고 되물었다. 취재차 왔다고 이야기하자 아저씨가 씨익 웃으며 재밌는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는 국제시장이 아닌데….”
깜짝 놀라 “예?”라고 묻자 이곳은 부평동시장이라고 말했다. 국제시장과 길 하나로 나뉘는데 부산 사람들은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보탰다. 그는 한가지 더 모르는 사실을 알려줬다. 국제시장이 영화 흥행으로 살아나면서 덩달아 부평동시장도 살아났다는 것. 또한 큰 대로변 건너편에 있는 자갈치시장까지 관광객이 들어서면서 “요즘 부산이 살맛 난다”고 했다.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자갈치시장 입구에 늘어선 꼼장어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금 전 아저씨의 설명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상가를 끼고 거닐다가 자갈치시장 직판장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부산으로 놀러 온 많은 이들이 집으로 가져갈 횟감이나 꼼장어, 조개 등을 구입하며 판매자와 흥정하고 있었다.
한편의 영화가 보여준 힘이 얼마나 큰지 이번 부산 국제시장을 돌아보며 느낀 하루였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시장으로 몰리면서 시장은 단순한 상거래 장소를 넘어 사회와 문화의 용광로가 됐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이 그렇듯 산업 발전과 함께 이곳 국제시장도 활기가 가라앉았는데 영화 흥행으로 재조명받게 된 것이다.
사실 영화 <국제시장>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전 연령층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세대 간 벽을 허무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국제시장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런 현상이 여기에 멈추지 않고 우리 전통시장이 활기를 찾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 합본호(제370·3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