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월급을 CMA통장으로 관리하는 것 외에는 증권사의 상품에 가입해본 적 없는 직장인 유모씨(32). 그는 최근 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ELS)에 관심이 생겼다. 주식이나 펀드는 원금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적금만 불입했던 유씨는 ELS가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기초자산이 절반 가까이 하락해도 평균 7%가량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위험을 싫어하는 자신에게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LS에 가입하기 위해 증권사를 방문한 유씨는 상담 전 투자자 성향 파악서를 작성했다. 결과는 ‘위험중립형’. 유씨는 중위험 상품인 ELS에 가입하는 데 무리가 없겠거니 생각했지만 PB의 말은 달랐다. 원금손실이 가능한 ELS의 경우 고위험군에 속하는 투자자만 가입할 수 있다는 것. PB는 유씨가 ELS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부적합 금융투자상품 거래확인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실상 ELS는 일부 종목형을 제외하고 손실을 본 경우가 드물다며 체감 위험도는 저위험에 가깝다고 설득했다. 중위험 상품이라는 말만 믿고 증권사를 찾은 유씨는 가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표적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알려진 ELS. 요즘 같이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마땅한 투자대안처가 없을 때 은행예금의 3배가량의 수익을 보장하는 ELS는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지난해 ELS 발행액이 사상 최초로 70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ELS의 인기를 방증한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다르게 ELS상품은 원금손실이 가능한 만큼 대부분의 증권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유씨와 같이 중위험 상품이라는 말만 믿고 증권사를 찾는다면 가입이 망설여질 수 있다.

◆ 증권사마다 다른 투자성향분석

증권사는 상품에 대해 상담하기 전 투자자의 성향을 분석한다.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이 무엇인지 파악해 권유하기 위함이다. 투자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설문은 금융투자협회에서 제공한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준칙에는 투자자의 위험 수용 정도와 권유상품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돼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준칙이 강제성이 있는 법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영규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기획부 과장은 “표준투자권유준칙이란 자본시장법에 따라 협회에서 증권사에 기준이 되는 양식을 제시한 것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준칙에 명시된 대로 원금손실 가능성 여부에 따라 상품을 고위험군과 중위험군으로 분류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각 증권사마다 투자자를 구별하는 기준과 투자 권유상품을 나누는 기준이 다르다.

NH투자증권의 원금비보장 지수형ELS를 예로 들면 녹인배리어 70%를 기준으로 미만인 경우 중위험으로, 그 이상인 경우 고위험으로 분류한다. 유안타증권은 원금의 손실률이 20% 이상일 경우 고위험으로, 미만일 경우 중위험 상품으로 구별한다.


 

[재테크 이야기] '위험' 권하는 증권사 ELS

다시 말해 ELS는 지수가 하락하면 최대 100%의 원금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위험’ 투자자에게 적격인 상품이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현대차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일부 종목형 ELS의 경우 손실을 봤다.

지수형 ELS도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녹인 구간에 진입한 적이 있다. 만약 투자자가 지난 2008년 1월 초 HSCEI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에 가입했다면 같은해 10월 말 주가가 70%가량 빠지며 녹인 구간에 진입했을 것이다.

최근 ELS의 기초자산으로 많이 사용되는 S&P500지수, 유로스톡스50지수 등도 같은 기간 50~60% 하락했으니 원금손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당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질 것을 예상한 투자자가 몇명이나 됐을까. 이를 생각하면 ELS는 항상 위험에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 기준 안 지켜도 처벌 없어

이와 같은 상황임에도 ELS가 중위험·중수익의 대표상품이 된 이유는 뭘까. 기본적으로 증권사는 ELS 광고에 중위험·중수익이라는 문구를 넣지 못한다. 이와 같은 문구가 삽입될 경우 금융투자협회에서 심사필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증권사 직원의 칼럼이나 연구보고서에는 ELS를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있다.

금투협 광고심사실 관계자는 “광고심사과정에서 중위험·중수익이라는 문구가 ELS를 소개하는 카탈로그 등에 들어간다면 수정의견을 내고 심사필을 주지 않는다”며 “하지만 광고가 아닌 다른 채널로 홍보하는 부분까지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의 직접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투자자 성향을 파악할 때 증권사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점도 문제다. 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상품의 위험도를 내리려는 동기가 생길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증권사의 자의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원칙적으로 회사가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투자자 성향파악 기준을 마련하게 돼 있다”며 “다만 증권사의 성향분류 기준에 과도한 오류가 있을 경우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 제46조에 따르면 적합성의 원칙이란 금융투자업자가 일반투자자에게 투자권유를 하기 전 투자자의 제반 상황을 파악해 부적합한 투자권유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할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투자자가 이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면 증권사와 민사소송을 벌여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LS는 기초자산의 가격이 떨어질수록 위험이 커지는 구조라는 것을 투자자들이 제대로 인지해야 하지만 이를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투자성향 분석기준을 강제한다면 증권사가 자체적인 투자자 분석에 소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개별 ELS의 위험은 발행사의 신용도와 연계된다”며 “증권사 입장에서는 회사의 신용도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신용평가를 도입하는 데 이해상충 요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