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3개 중 실제 우리 방은 1개뿐이고 나머지는 은행 임대 룸이죠.” 회사원 김성진씨(40·가명)는 최근 전용면적 84㎡의 아파트를 4억8000만원에 구입하면서 3억원이 넘는 빚을 졌다. 김씨는 “빚이 과도하다는 걸 알지만 전셋집도 비슷한 가격이라 저금리를 이용해 구매키로 했다”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완화돼 대출한도가 늘어났기 때문에 이 같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의 고삐가 풀렸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정책에 착한 가계들이 화답하는 모양새다. 그 결과 가계 빚이 ‘고점’을 경신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발표한 ‘2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가계에 대한 예금은행의 가계대출(모기지론 양도분 포함) 잔액은 한달 전보다 3조7000억원 증가했다. 증가폭이 역대 최대치다. 그것도 예년(2008~ 2014년 2월 중 은행 주택담보대출 평균 증가규모는 1조3000억원)의 무려 3배 규모다. 통상 이사비수기인 연초에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주춤하지만 올해는 기형적으로 확대된 셈이다.
 
가계부채 급증의 ‘일등공신’으로 지목되는 LTV·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규제 완화 및 금리인하를 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경고음이 울리는 가운데 당국은 진화는커녕 되레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커버스토리] '가계부채 뇌관'에 불 붙이다

◆규제가 최후의 보루라더니…
 
“부동산 규제는 부실·파탄 막는 최후의 보루”(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2011년) → “LTV·DTI 규제 완화가 아니라 합리화”(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2014년 7월) → “규제 완화는 서민경제의 어려움 해소 위한 것”(임종룡 금융위원장, 2015년 3월 인사청문회)
 
점입가경이다. 가계부채는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가는데 금융당국은 계속 ‘말’을 바꾼다. 지난해 8월 규제 완화가 전격 시행되며 가계부채의 방파제가 무너졌다. 시행 8개월째로 접어든 부동산규제 완화를 두고 회의론이 확대됐지만 정부는 ‘관리 가능 수준’을 외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LTV·DTI 규제 완화는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옹호했다. 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이후 늘어난 가계부채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로 주택경기를 되살리는 효과가 있어 당분간 모니터링하겠다”며 “부동산규제를 강화하면 디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가계부채 관리에 앞장서야 할 금융당국이 ‘빚 독려’에 나서며 시장이 일대 반전을 맞고 있다. 그동안 숱한 대책에도 꿈쩍 않던 부동산시장이 ‘주택담보대출’을 등에 업고 꿈틀대기 시작한 것.
 
KDI(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06년 이후의 분기 평균(22만4557건)을 30% 이상 상회하는 수치다. 실제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도 폭증했다. 지난해 1~7월 19조8000억원 증가하는 데 머물렀던 반면 규제 완화 직후인 8~12월에는 39조6000억원이나 늘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 완화에 편승한 ‘내 집 마련’ 붐이 경기악화 시 하우스푸어의 대거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경기를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악수를 둔 것이 아니겠느냐”고 귀뜸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역시 지난해 12월 경제전망을 통해 “LTV·DTI 규제 완화 및 금리인하의 동시 진행으로 가계부채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증가해 장기적으로 부실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대출 늘지만 웃지 못하는 은행
 
금융당국은 최근 늘어나는 가계대출 규모에 브레이크를 거는 대신 위험 가계대출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의 양(量) 보다 질(質)을 개선하겠다"는 논리다.
 
히든카드는 이달 선보이는 ‘안심전환대출’이다. 경기변동에 취약한 변동금리대출을 ‘꾸준히 장기적으로 갚을 수 있는 고정금리대출로 갈아타라’는 주문이다. 주목할 것은 2%대의 초저금리 상품이라는 것. 출시 전부터 은행의 팔을 비틀어 만들어낸 ‘관치 금융상품’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 11일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안심전환대출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은행들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며 입장을 전했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될 경우 은행들의 수익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신증권은 “안심전환대출에 따른 은행권 손실은 1400억∼1600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고 하이투자증권은 “안심전환대출 출시에 따라 은행들의 연간 순이자마진(NIM)이 1bp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 혜택이 대출 고객에게 충분히 돌아갈지도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취급 은행들이 안심전환대출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금융권 안팎에선 보다 실효성 있는 가계부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미국발 금리인상 등으로 경제상황이 변화하면 ‘취약가구’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 이면엔 은행권의 가계대출심사가 다소 느슨해진 측면도 있다”며 “상환능력이 없어 부실화되는 가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소득과 신용 등에 따라 대출상환능력을 제대로 심사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