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시즌이다. 12월 결산법인들의 정기 주총이 열리면서 기업마다 연말결산을 반영한 현금배당 계획을 공시하고 나섰다. 으레 주총시기면 단골이슈가 되는 것이 바로 주주 배당금. 하지만 올 주총에선 배당금 규모와 성격을 놓고 여느 해보다 더 갑론을박하는 분위기다.


 

배당금, '내수 활성화 vs 재벌·외국인 특혜'

◆ 정부 독려에 대폭 증가한 배당금

우선 10대 재벌그룹 총수들의 배당금이 3000억원대를 넘어서는 등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최근 재벌닷컴 조사에 따르면 10대 그룹 총수 10명이 계열 상장사로부터 받을 2014년 결산에 따른 배당금은 총 3299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년 배당액 2439억원보다 35.3%(860억원)나 늘어난 액수다.

10대 그룹 총수 중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배당금 규모가 1758억원으로 10명 중 유일하게 1000억원을 넘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1년 전보다 50% 가까이 늘어난 배당금 742억원을 받는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역시 329억7000원과 94억1000만원으로 각각 전년대비 15.4%, 32.8% 증가했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5% 늘어난 84억9000만원, 두산 박용만 회장도 14.2% 증가한 35억6000만원의 배당금을 각각 받는다.

재벌총수들의 배당금이 증가한 데는 그만큼 대기업들이 전반적으로 배당금 확대를 꾀했다는 점을 내포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4년 현금배당 공시 기업은 253개사로 2013년(140개사)에 비해 무려 80.7% 늘어났다. 배당총액도 지난 2013년 6조3726억원에서 2014년 10조2751억원으로 61.2% 증가했다.

이 같은 재계의 배당금 확대 분위기는 정부발 배당확대 정책이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정부는 내수 회복을 통한 경기활성화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들에 배당금을 늘릴 것을 촉구했다.

사내유보금과 관련한 정책도 그 중 하나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남겨두는 자금으로, 정부는 올해부터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기업소득환류세’라는 이름을 붙여 과세하기로 했다. 기업소득 가운데 투자와 배당, 임금인상 등으로 80%를 사용하지 않으면 법인세와 별도로 기업소득환류세로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기업들의 배당금 확대 발표에는 기업소득환류세를 내느니 주주들에게 이익금을 배당하는 게 낫다는 기업들의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기업의 배당률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고 시가배당률도 2%가 안되는 상황에서 주주 이익을 위해 배당을 확대하는 분위기가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지난해 한국 증시의 예상 배당성향(기업의 배당금 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13.7%로 중국(29.6%), 미국(29.4%), 일본(26.2%)보다 낮다. 영국(46.2%), 호주(70%), 뉴질랜드(84%) 등과도 큰 격차가 난다.


/일러스트레이터=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임종철

◆ '부 대물림' 배당부자들… 10명중 4명 재벌 3·4세

기업의 배당금 확대 분위기와 별개로 ‘배당부자’들의 대물림 현상이 짙어지고 있는 점도 최근 배당금 논란의 한 축을 이룬다. 특히 대기업그룹 대주주 일가의 배당액 상위 100명 중 40명이 3·4세 경영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49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40개 그룹 220개 상장사의 2014 회계연도 배당현황을 분석한 최근 조사에서 22개 그룹 96개 상장사가 대주주 일가 279명에게 7268억원의 배당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1인당 평균 26억5000만원씩 받는 셈이다.

배당금 상위 100명 중 경영권 후계권에 있는 2,3,4세가 40명이나 됐고, 이중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314억원으로 가장 많은 배당을 받게 됐다. 뒤를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6억원의 배당이 확정됐고 정몽진 KCC 회장(168억원),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147억원), 구광모 LG 상무(105억원) 등의 순이다.

전년 대비 배당금 증가율 역시 3·4세 경영인들의 수치가 두드러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79.5%로 이들 중 가장 높았는데, 이는 이 부회장이 0.57% 지분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주당배당금을 1만4300원에서 2만원으로 늘린 덕분이다.

이어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과 장녀 김주원씨의 배당금이 전년 대비 각각 53.3%와 45%씩 늘었다. 이 역시 동부화재가 배당금을 주당 1000원에서 1450원으로 늘린 데 힘입은 결과다. 정의선 부회장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장녀 서민정 씨도 지분을 보유한 그룹내 계열사들이 배당금을 늘려 각각 35.4%와 29.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편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재벌들의 배당금이 역대최대 수준으로 늘어나고 오너가 3~4세 경영인들이 ‘배당부자’로 굳어지는 현 상황에 대해 최근 논평을 내고 “재벌대기업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로 규정했다. 

이 의원은 "재벌들이 근로자들의 임금정책과 관련해선 디플레이션 우려 등을 내세워 엄살을 떨더니 본인들이 배당받을 때는 과감하다”며 “지금은 경제성장률 대비 현저히 낮은 실질임금상승률로 성장의 과실이 가계가 아닌 재벌대기업 곳간에만 쌓이고 있어 분배구조에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배당금 확대와 국부유출

배당금 확대 얘기가 나오면 곧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주체 중 하나가 바로 외국인 투자자다. 한국에서 창출된 기업들의 수익금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의미에서 '국부유출'의 오명을 입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올 주총시즌에서도 외국인투자자들은 재벌총수와 더불어 대기업 배당금 확대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받았다. 

최근 재벌닷컴이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 소속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2014 회계연도 배당금(중간배당 포함)을 집계한 결과 배당금 총액은 7조7301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가 받는 배당금은 모두 3조8128억원으로 지난해 2조8297억원보다 34.7% 증가했다. 또 전체 배당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46.9%에서 올해 49.3%로 2.4%포인트 상승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고배당 움직임은 정부가 생각한 내수 활성화 효과보다는 자칫 외국인 주주를 위한 '배당잔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는 과거 론스타가 대주주였던 외환은행이나 한국씨티·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배당 때마다 국부유출 논란을 일으킨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