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만에 풍경이 바뀌었다. 지난 2008년 이후 침체된 국내 주택시장의 현실을 보여주던 미분양 아파트가 점차 사라지고 텅텅 비었던 분양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어느새 수만명씩 몰려들어 길게 늘어선 줄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청약경쟁률을 숨기기 위해 깜깜이 분양을 하던 건설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백대 1, 수십대 1이라며 저마다 아파트 분양 대박을 홍보하느라 정신없다. 기존 주택 매매거래량 역시 반등했다. 매매거래량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국내 부동산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거품에 휩싸였던 지난 2007년 부동산시장 과열양상과 흡사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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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풍 부는 주택시장… 2007년과 흡사
한껏 달아오른 부동산시장. 투자자·실수요자 너 나 할 것 없이 집을 사고 있다. 과열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 2007년 정부는 2006년 불었던 부동산 광풍을 잠재우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키로 했다. 그 해부터 약 2년 간 이를 피하기 위한 민간건설사의 분양물량이 쏟아져 나왔고 시장은 열기가 뜨거웠다. 분양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고분양가에 나온 수많은 아파트들이 소화가 안 되면서 미분양이 급증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3월 전국 미분양 물량은 16만5641가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더구나 2~3년 후 입주아파트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집값이 떨어지자 입주를 포기하고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늘어 건설·부동산시장 침체를 불러왔다. 여기에 2008년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집이 유일한 재산이었던 이들을 하우스푸어로 내모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지금은 어떨까.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전체 매매신고량은 1만2119건을 기록했다.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6월 1만1232건보다 많은 주택거래가 신고됐다. 역대 7월 매매거래 신고량 3100건과 비교해 4배 가까이 많은 물량이다. 7월 매매거래량이 1만건을 넘긴 것은 지난 2006년 집계 이래 처음이다.


매매거래량 증가에 매매가도 동반 상승세를 보였다. 부동산114 집계를 보면 7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64% 상승해 올 들어 가장 높았다. 여기에 전세시장은 이사철 전셋집을 선점하기 위한 수요와 재건축 이주수요까지 가세하며 물건품귀현상이 심화됐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37% 올라 이사철인 4월 0.90%, 5월 1.12%보다도 많이 올랐다.

◆ "기회는 지금"… 쏟아지는 아파트

이처럼 매매시장 회복과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이 분양시장으로 몰리는 것을 확인한 건설사들은 기회를 잡은 듯 분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시장에 나오는 아파트 분양 물량이 24만2700여가구에 달한다. 이달만 해도 총 6만9561가구로 지난 2010년 이후 가장 많다. 최근 3년 평균 9월 분양 물량인 2만2696가구의 세배 수준이다.

물량이 쏟아지면 투자 열기도 주춤해야 할 텐데 청약시장은 아랑곳없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대구 수성구 황금동 240 일대에 분양한 '힐스테이트 황금동'은 1순위 청약접수 결과 197가구 모집에 총 12만2563명이 몰리면서 평균 경쟁률 622.1대 1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시장의 호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서는 시장이 좋을 때 하루라도 빨리 상품을 내놔야 한다"며 "올해 분양시장이 뜨거워져 과거처럼 방문객이 줄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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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에서 분양권 상담. /사진=머니투데이 DB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에서 분양권 상담. /사진=머니투데이 DB

◆ 중단됐던 재건축시장도 ‘활기’
그런가 하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를 중심으로 그동안 중단됐던 재건축사업 추진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3년 유예 등 규제완화와 부동산 경기 회복으로 지난 2008년 이후 침체를
겪었던 재건축사업이 활기를 되찾았다. 더욱이 재건축 연한 단축으로 다른 지역 사업까지 열기에 휩싸여 강남3구 재건축은 한층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실제로 강남권에서는 개포주공2단지, 일원 현대와 개포주공3단지, 개포시영까지 총 3595가구가 올 하반기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개포주공1단지와 4단지도 강남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접수,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둔촌 주공(5390가구)과 잠실 5단지(3930가구) 등 인근 초대형 단지 재건축도 대기 중이다.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는 재건축사업의 첫 관문인 예비·정밀 안전진단을 받느라 분주하다. 도곡동 개포우성4차는 정밀안전진단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이달 중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서초에서는 잠원동 신반포19·25차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서초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장 분위기가 좋을 때 사업을 밀어붙이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며 "현수막을 걸고 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발송하는 조합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 이상과열, 거품 재현 우려

이처럼 최근 부동산시장이 살아나 분양물량이 쏟아지고 일부 중단됐던 사업이 다시 추진되면서 일각에서는 시장에 거품이 다시 일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중견건설사 임원은 "시장이 좋으니까 건설사들은 너도나도 택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수요는 한정적인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식의 사업추진은 지난 2008년의 악몽을 우리 스스로 재현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전셋값 상승, 저금리, 부동산 규제완화 등으로 부동산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부침이 있게 마련이고 거품에 대비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기대만큼 전반적인 경기가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시장만 호황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3.1%에서 지난달 2.8%로 0.3%포인트 하향조정했고,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모두 2%대를 예상했다. 서민의 지갑이 얇아지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면 부동산시장도 침체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부동산시장이 살아난 것 같아 보여도 이제 시작”이라며 “건설사들은 분양가 인상이나 무리한 밀어내기 분양을 자제해야 하고 수요자는 부동산 투자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