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투자증권의 임직원이 불법거래를 돕고 금품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한 상장사 대표의 지분을 조용히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뒷돈을 받은 혐의다. KB투자증권은 이 사건이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내부직원 통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KB투자증권의 모회사인 KB금융지주가 KDB대우증권 인수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더욱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KB투자증권 측은 이번 사건이 대우증권 인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만약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해 규모가 커진 후 이 같은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면 증권업 전반의 신뢰가 추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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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 문제”… 회사 책임은 없나
지난 3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단장 김형준 부장검사)은 코스닥상장사 I사의 전 대표 문모씨(55)의 보유지분을 불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돕고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KB투자증권의 김모 투자전략팀장(43)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I사 대표 문씨는 대주주인 자신이 주식을 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가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김 팀장에게 자신의 주식을 처분해줄 것을 부탁했다. 김 팀장은 이 대가로 문씨에게 6억9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팀장은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기 위해 같은 회사의 박모 이사(47)에게 소개를 부탁했고 박 이사는 KDB대우증권의 김모 팀장(42)을 연결해주며 소개료 명목으로 1억원을 챙겼다.
소개받은 대우증권의 김 팀장은 제안을 수락했고 45만주 중 35만주를 약 100억원에 기관투자자들에게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대우증권 김 팀장도 1억3000만원을 받았다. KB투자증권 박 이사와 대우증권 김 팀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수재 혐의로 지난 11일 역시 구속됐다.
이들이 벌인 범죄행각의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블록딜 매각이 있었던 지난해 7월22일 I사의 주가가 하한가로 직행한 것.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5거래일 뒤 I사는 문 대표가 보유하고 있던 45만주를 장내 매도로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이미 주가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 블록딜 이전일인 21일 종가를 기준으로 공시가 있던 날까지 주가는 23% 넘게 하락했다. 그 후 I사의 주가는 1년여가 지나서야 겨우 당시 주가를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KB투자증권 관계자는 “직원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로 발생한 사건”이라며 “재발방지를 위해 윤리의식 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임직원 개인의 문제로 마무리할 게 아니라 회사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의 금융사보다 미흡한 내부통제규정으로 인해 임직원의 비리문제가 더 빈번하게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거래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것인지, 블록딜이 적정수준의 가격에서 이뤄졌는지 등을 증권사가 사전에 검토했더라면 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며 “회사에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KB투자증권의 경우 지난 2013년 소속 애널리스트가 CJ E&M의 미공개정보를 담당 매니저에게 유출해 손실을 피한 혐의로 행정처분인 ‘기관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이후 불과 2년 만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두고 회사 내부통제의 허점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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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효원 기자 |
◆ 대우증권 인수 지장 없을까
검찰이 KB투자증권과 대우증권을 압수수색한 지난 8일은 공교롭게도 KDB대우증권의 매각공고가 나온 날이다. 매각하는 주식은 대우증권 지분 43%와 산은자산운용 지분 100%다. 이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2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할 전망이다. 엄청난 규모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인수전을 초대형투자은행(IB)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KB투자증권의 모회사인 KB금융지주는 가장 적극적으로 대우증권 인수의사를 피력한 그룹이다. 대우증권 인수로 비은행부문의 사업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은행·보험·증권·카드 모두 업계 순위 상위권에 올린다는 방침이다. 실제 KB금융지주가 4조3049억원 규모의 자본금을 지닌 대우증권을 인수해 KB투자증권과 합병할 경우 자본금 4조9000억원 규모의 업계 1위 증권사가 탄생한다.
이 같은 중요한 시점에 KB투자증권의 임직원이 검찰에 구속된 사건은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KB투자증권 측은 “회사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이 아닌 만큼 입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KB금융그룹이 내부통제규정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할 경우 직원이 더 늘어나는 만큼 비리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 말 기준 KB투자증권의 임직원 수는 530여명이다. 여기에 대우증권과 합병하면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임직원 수는 약 3500명으로 늘어난다. 별다른 대책 없이 관리해야 할 대상자만 7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특히 업계 1위 증권사가 된 후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면 증권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자칫하다 전체 증권업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논의해 재발방지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일반투자자들이 증권업계를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