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의 판도를 바꿀 KDB대우증권의 인수전이 시작됐다.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이 매각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가격이라고 밝힌 상황이어서 자금여력이 있는 KB금융지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의 3파전이 예상된다.

어느 곳이 인수하더라도 합병 후 최대 난제는 원활한 화학적 결합 여부다. 임금수준의 차이, 직급체계, 조직문화 등이 다를수록 화합은 어려워진다. 또한 대우증권의 주력사업부와 공통된 부분이 많은 증권사가 인수할 경우 통합 후 일정수준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같은 이유로 대우증권 노조는 매각 자체를 반대한다. 설령 매각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KB금융지주 쪽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정책방향을 고려하면 은행계열인 KB금융보다 증권사 쪽에 명분이 있어 인수전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 금융당국 정책방향은 ‘증권사’

지난 2일 대우증권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매각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이 매각 예비입찰을 마감한 결과 KB금융지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우증권 우리사주조합 등 4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산업은행이 매각하는 대우증권의 지분 43%는 시장가치만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과 단숨에 업계 1위로 직행할 수 있는 이점을 더하면 2조원 중반에서 3조원 안팎까지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증권 우리사주조합이 예비입찰에 참여했지만 자금을 지원할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직원 개인당 1억~2억원 수준의 자금모집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사실상 3파전 구도로 진행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포커스] 대우증권 인수전 '동상이몽'

우선 산업은행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가격이다. 지난 8월 산업은행이 금융자회사 매각을 발표할 당시 제시했던 방향도 ‘매각가치 극대화’였다. 다만 이와 동시에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표한 점은 가격 외에도 금융당국의 정책방향 내에서 매각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되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인수가격이 매각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다”며 “어떤 인수자가 자본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지를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가격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고려해볼 요소”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정책방향을 봤을 때 금융당국은 증권사의 전문화와 대형화를 통해 업계를 재편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실제 지난달 14일 발표된 ‘금융투자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의 기업 신용공여업무 한도가 개인고객의 신용공여와 따로 떨어져 자기자본의 100%까지 확대됐다. 대형사들의 업무영역을 넓혀준 셈이다.

한편으로는 중소형증권사를 위해 ‘중소기업 특화증권사’ 지정계획도 밝혀 시장 구분을 명확히 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당국의 의지를 고려할 때 대우증권이 증권사에 인수돼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한국형IB의 길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온다.

미래에셋과 한국투자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할 경우 자본금 8조원 규모의 독보적인 대형증권사가 탄생해 당국으로서는 국내 증권업계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다는 명분도 생기는 셈이다.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 대우증권 직원이 바라는 ‘KB금융’
하지만 이들 증권사의 직원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인수합병 후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합병할 때도 600명가량의 인원이 퇴직한 바 있다.

이에 대우증권 노조는 우리사주조합으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가운데 지난달 27일 한국투자증권 노조와 긴급회동을 갖고 대우증권 매각입찰에 반대하는 연대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이자용 대우증권 노조위원장은 “한국투자증권이나 미래에셋증권이 매각에 입찰함으로써 대우증권 노조원뿐만 아니라 입찰에 참여한 증권사의 노조원도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는 심각한 생존권 위기에 처했다”며 “강력히 반대투쟁을 펼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말 기준 대우증권의 직원 수는 3053명이다. 미래에셋증권 또는 한국투자증권과 합병하면 각각 4826명, 5469명으로 늘어난다. 자산운용에 강점이 있는 미래에셋증권과 위탁매매·자산관리·IB 등 각 사업부가 고른 수익을 내는 한국투자증권은 대우증권의 자본력과 인프라가 더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인력이 수익의 근원인 증권업의 특성상 규모가 클수록 구조조정할 여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직원 수가 531명인 KB투자증권은 대우증권과 합쳐도 3584명 수준이어서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부담이 적은 편이다. 또한 고객과의 접점인 지점 수도 KB투자증권은 14개로 미래에셋증권(75개), 한국투자증권(98개)보다 훨씬 적다. 103개의 점포를 지닌 대우증권을 인수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채권과 구조화 금융에 강한 KB투자증권은 대우증권과 업무가 중복되는 부분도 적다.

연봉수준도 비슷하다. 통상 회사가 합병하면 각 사마다 연봉체계가 달라 혼란을 겪는다. 실제 NH투자증권도 이 같은 차이를 좁히지 못해 1년여간 다른 연봉체계를 유지하다가 지난 9월 말 양대 노조가 합의하며 사측과 임금협상에 나섰다. 지난해 기준 대우증권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7600만원이다. KB·미래·한국의 연봉은 각각 7825만원, 6068만원, 6896만원으로 KB투자증권만 대우증권보다 높은 수준이다.

증권업계의 관계자는 “보통 합병하면 두 회사의 기존 임금수준 사이에서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연봉수준 차이는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