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올 3분기 당기순이익은 1조4000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00억원 줄어든 규모다. 이자이익은 8조4000억원으로 순이자마진이 1.81% 수준이던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00억원(5.1%) 감소했다. 비이자이익도 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00억원(27.9%) 줄었다.
4분기 실적은 더욱 암울하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4분기 은행들이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은 2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수익은 쪼그라드는데 대손충당금은 늘어난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저금리 기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분석과 은행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탄의 목소리가 엇갈린다. 신사업을 모색하지 않고 이자장사에만 치중한 결과라는 얘기다. 은행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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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
◆“관치금융 철폐” 한목소리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할 사안은 관치금융 철폐다.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제외한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 민간은행은 지분구조로 볼 때 사기업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은행 내부를 들여다보면 ‘관료 놀이터’로 불릴 만큼 정부의 입김이 거세다.
은행을 직접 지배하는 KB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KB금융·NH농협금융 회장은 금융전문가나 내부 출신이 아닌 당시 정부와 가까운 인사로 대부분 채워졌다. 인사권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이다. 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 BNK금융지주도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고객의 돈을 대신 운용하는 특수성 때문에 은행은 민간기업에 비해 도덕성을 더 요구받는다. 따라서 정부가 일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치다. 하지만 정부가 금융권 CEO 인사 등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은행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은행을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CEO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은행직원들은 은행업무보다는 줄타기에 더 급급해 한다”고 아쉬워했다.
◆금융환경 개선·규제 풀어야
시장논리를 저해하는 금융환경도 개선할 점으로 꼽힌다. 일각에선 민간기업의 영역인 (대출)이자와 수수료까지 당국이 개입해 결정하는 것은 시장논리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한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금융권의 가격과 수수료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혀 우회적으로 시장개입 여부를 인정하기도 했다.
예대마진과 수수료 의존도가 높은 은행의 경우 정부가 개입하면 수익저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일례로 제로금리정책을 유지하는 미국의 상업은행들은 국내은행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내은행의 9월말 현재 총자산순이익률(ROA)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각각 0.37%, 4.73%를 기록하는 데 그친 반면 글로벌은행은 우리나라의 두배가 넘는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3회계연도 기준 글로벌 100대 은행의 ROA는 0.8%, ROE는 9.4%에 달한다. 이중 미국 상업은행의 올해 상반기 ROA는 1.05%, ROE는 9.39%를 기록했다.
이는 수수료 수익이 한몫 한다. 사실 수익성 지표를 나타내는 순이자마진(NIM)을 놓고 보면 미국과 국내은행 간 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다. 다만 수수료 등 비이자부문 비중은 미국 상업은행이 55.1%로 국내은행(16.7%)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물론 이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미국 씨티은행과 영국 바클레이즈의 창구에서 타은행으로 송금할 때 수수료가 무려 1만9000~4만3000원이다. 일본의 경우 송금수수료가 2500~4100원이다. 500~3000원 수준인 국내은행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만약 국내은행이 이처럼 금융거래 수수료를 올린다면 은행은 물론 금융당국까지 비난 여론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수료 책정은 은행산업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민간은행이 자유롭게 수수료를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두우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은행들이 금융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정당한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은행이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고 방카슈랑스 판매범위를 자동차보험 등으로 넓히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즉, 은행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은행창구에서 판매할 수 있는 방안이 수년 전부터 논의됐지만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유종권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자동차보험의 판매채널을 다양화하고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선 은행창구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은행과 고객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또 “현재 은행들이 주식에 직접투자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은행이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길을 (금융당국이) 열어준다면 주식시장에도 도움되고 은행들도 새로운 수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