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과열 양상을 보이던 부동산 분양시장의 열기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미분양 단지가 다시 나오고 주택시장도 거래량과 매매가 오름세가 주춤해졌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전국 미분양주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전국 미분양주택은 전월 대비 2.6% 증가한 총 3만2524호로 집계됐다. 지난달 1순위 청약경쟁률도 평균 8.6대 1로 지난 9월(16.1대 1)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부동산시장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뜨겁다. 주말이나 연휴에 나들이보다 새 집 구경에 나설 정도로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 이달 4일 분양에 나선 래미안 센터피스의 경우 280가구(특별공급 제외) 공급에 5600여명 이상이 청약을 넣으며 1순위에서 마감됐다. 평균 경쟁률은 20.1대 1을 기록했으며 전용 84㎡ E타입의 경우 가장 높은 청약경쟁률인 54.3대 1을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청약접수를 받은 동대문구 '래미안 답십리 미드카운티'의 경우도 512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3000명 이상이 청약했다. 이 역시 1순위에서 청약을 마쳤다. 지난 9월 분양한 성동구 ‘힐스테이트 금호’ 역시 68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1000명 이상이 접수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높은 청약률에 허수와 꼼수가 섞였고 투기바람이 거세게 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일단 넣고 보자"… 시장에 부는 투기바람
실제 올해 분양된 수도권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을 살펴보면 201대 1을 기록하는 등 분양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실제 계약에선 열기가 식었다. 지난달 서울에서 분양한 ‘반포 푸르지오 써밋’의 경우 3.3㎡ 당 4040만원의 고분양가에도 불구하고 평균 2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실제 계약률은 90%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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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센트럴 푸르지오 써밋 투시도. /사진제공=대우건설 |
또한 GS건설이 서울 종로구 교남동 돈의문 뉴타운 1구역을 재개발해 짓는 ‘경희궁 자이’에도 미분양이 남아있다. 지난해 11월 분양 당시 청약 최고경쟁률 49대 1, 평균경쟁률 3.5대1을 기록하며 순위권 내 마감됐지만 당첨자 중 계약을 포기한 청약자가 다수 나왔다.
대우건설이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 뉴타운 1-2구역을 재개발해 공급하는 ‘아현역 푸르지오’는 전체 315가구 중 21%인 65가구가 미분양 상태다. 이 단지는 지난 4월 분양을 시작해 청약 최고경쟁률 52.1대 1, 평균경쟁률 6.6대 1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으나 청약 당첨자의 상당수가 계약을 포기했다.
지방 분양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부산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8월 부산 동래구에서 분양한 '동일 스위트' 아파트의 경우 일반분양 577가구 모집에 부산 1순위에서만 2만6454명이 몰려 평균 45.8대 1의 높은 경쟁률로 1순위에서 청약을 마감했지만 실제 계약은 예상보다 저조해 30%에 가까운 173가구가 미분양 주택으로 등록됐다.
이처럼 청약경쟁률에 못 미치는 계약률이 발생한 데는 저층이나 조망권이 좋지 않은 가구의 당첨자들이 계약을 대거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투기성 수요들이 대거 청약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을 살펴보면 2순위 마감 사업장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투기 세력에 의한 부동산시장의 기형적 활황이 우려된다. 순위 내 마감에 '성공'한 단지라고는 하지만 허수가 많아 실제 정상적인 계약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11월 청약을 진행한 경기·인천 지역 아파트(10일 기준) 14곳 가운데 2순위에서 마감된 단지는 총 12곳으로 전체의 85.7%에 달했다. 앞선 10월 청약에서도 2순위 마감 단지는 14곳으로 전체의 56%를 차지했다.
문제는 신규 분양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순위 마감 사업장의 청약성적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프리미엄 동·호수를 노린 투자수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다 청약경쟁률을 높이기 위해 들어간 '작업'일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에는 분양권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다보니 거의 모든 분양단지에 2순위 청약을 넣는 '묻지마 투자' 수요도 상당하다"며 "1순위와 달리 2순위 접수에는 허수가 많다"고 말했다.
◆ 투기 부추기는 불법거래 ‘횡행’
이처럼 최근 분양시장은 실거주 목적보다는 투기를 목적으로 한 묻지마식 청약열풍이 불면서 시장을 어지럽히는 불법 거래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부 떴다방 업자가 청약통장 거래중개인이 돼 개인이 보유한 청약저축, 청약예금, 청약종합통장 등을 사들이는 등 투기목적의 불법행위가 횡행하고 있는 것.
이들은 개인에게 사들인 청약통장으로 청약해 당첨될 경우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전매해 차익을 남긴다. 또한 직접 청약하지 않을 경우 청약통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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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청약통장거래 광고. /사진=머니투데이DB |
청약통장은 통상적으로 1건당 500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거래연차가 높은 청약통장은 수천만원선에서 매매 및 양도되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현장에서 청약해 청약통장의 본인 여부 등을 확인함에 따라 불법청약을 비교적 쉽게 잡아낼 수 있었지만 현재는 금융결제원 등 인터넷사이트에서 청약 신청이 진행돼 개인 간 합의가 이뤄진 청약통장 거래를 막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청약통장 거래는 엄연한 불법으로 처벌대상이다. 청약통장 매매 거래당사자, 알선한 자, 광고행위를 한 자는 모두 처벌대상이 되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불법거래 청약통장으로 주택을 청약해 당첨되더라도 발각 시엔 해당 주택공급 계약은 취소되며 10년 이하 범위에서 청약자격이 제한되는 등 처벌이 비교적 무겁다.
그러나 청약통장 불법거래로 얻는 수익이 더 크기에 청약통장 불법거래 현상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청약통장 중개업자들은 청약통장 보유자에게 대가를 먼저 지급하고 청약통장을 매수해 청약통장 가입자 명의로 위장전입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