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탈선’이 무섭다. 여기서 말하는 탈선은 기차나 전차 따위의 바퀴가 선로를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나 행동 등이 나쁜 방향으로 빗나감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 코레일은 외형적(?)으론 쾌속질주를 하고 있다. 혁신적인 부채감축과 조직혁신을 이뤄냈다며 국내외에서 경영혁신 관련 상을 휩쓸고 있는 것.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코레일의 불편한 속사정을 알아봤다.
지난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달성한 흑자 1034억원. 이를 두고 코레일은 혁신적인 부채감축과 조직혁신이 만들어낸 첫 흑자라고 자평하지만 한편에선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코레일의 또 다른 식구 코레일유통, 코레일로지스,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테크, KIB보험중개 등 자회사 6곳이다. 이들 자회사가 한숨을 내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부채감축 대책이 시달되면서 시작된 코레일의 압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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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DB |
코레일의 6개 자회사는 지난해부터 코레일의 강도 높은 매출압박과 수입금 본사 입금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코레일의 2013·2014·2015년 ‘공사 CEO와 계열사 대표이사 간 책임경영계약(안)’이라는 내부문건을 살펴보면 한가지 항목이 눈에 띈다. 2013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룹 기여수익’ 항목이 2014년 책임경영계약 항목에 포함된 것이다. 더욱이 그룹 기여수익란에는 10%, 목표 1366억2800만원이라는 금액이 명시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룹 기여수익이란 ‘코레일’과 ‘KTX’ 등에 대한 브랜드사용료와 구내영업료, 배당금, 기타수익 등의 항목으로 자회사들이 코레일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다. 즉, 자회사들이 벌어들이는 매출의 일정부분을 본사에 납부하라는 계약서인 셈이다.
이외에도 코레일의 자회사들은 매출액 목표달성에 대한 압박도 심하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매출액 목표달성도 20%, 목표 7098억9400만원(전년대비 3.3%↑)에서 2014년에는 매출액 목표달성도 40%, 목표 8138억400만원(전년대비 17.2%)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시점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지난 2013년 12월11일 기획재정부와 행자부(당시 안전행정부)가 ‘공공기관 부채 감축과 경영 효율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한지 5개월이 지난 후 새롭게 체결한 계약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 자회사의 한 관계자는 “코레일의 방만경영으로 생긴 문제임에도 코레일은 스스로 잘해볼 생각보다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회사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있다”며 “그 결과 나온 실적을 부채감축과 경영혁신의 결과인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강도 높아진 ‘자회사 쥐어짜기’
코레일의 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해는 더욱 심한 압박을 가해 왔다.
2015년 ‘공사 CEO와 계열사 대표이사 간 책임경영계약(안)’을 살펴보면 매출목표 달성도 20%, 목표 7042억3700만원(전년 실적 6425억1200만원 대비 9.6%↑)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룹기여수익 달성도가 20%로 전년보다 10% 더 증가했다.
세부 목표금액은 1298억2900만원(전년 실적 1207억9300만원 대비 7.5%↑)이다. 목표액만 놓고 보면 지난해보다 약 67억9900만원 줄었지만 당시 6개 자회사에 포함된 코레일공항철도가 매각됨에 따라 나머지 5개사가 이 금액을 분담해야 하는 실정이어서 자회사들이 느끼는 압박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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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책임 경영 계약(안). |
특히 이들 자회사 중 현재 제대로 수익을 내고 있는 코레일유통의 경우 그 압박이 더 심하다. 코레일유통은 지난 2013년 매출액의 11.5%를 구내영업료로 납부했으나, 그룹기여수익 달성도 항목이 신설되면서 매출액의 14.8%로 3.3%포인트 인상됐다.
그 결과 코레일에 납부한 구내영업료만 2013년 378억원에서 지난해 513억원으로 135억원 늘어났다. 이로 인해 코레일유통은 2013년 103억4448만5856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에는 42억5414만8274원으로 절반 이상 급감했다.
또 다른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의 사정도 비슷하다. 코레일유통을 제외하고 타 자회사 대비 그나마 수익을 내고 있는 코레일관광개발 역시 2013년 21억8569만633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에는 10억6998만7032원으로 절반 이상 급감한 것이다.
코레일이 거둬들이는 브랜드사용료 역시 지난 2007년 이철 코레일 전 사장이 맺었던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코레일이 자회사에 보낸 ‘2015년도 브랜드사용료 1차분 납부요청’ 공문을 보면 각 계열사별로 전년도 총 매출액의 최대 1%부터 최소 0.45%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올 한해 코레일이 자회사로부터 받은 브랜드사용료는 58억36만8299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 본지는 코레일 측에 지난해 책임경영계약에서 그룹기여수익 항목을 왜 추가했는지와 올해 이를 20%로 늘린 이유 등을 수차례 물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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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책임 경영 계약(안). |
◆ 수익성 개선 없이 자산만 매각
코레일은 당장의 부채감축을 위해 자회사를 압박하는 방법 외에도 돈 되는 것들을 모조리 팔아치워 ‘억지 흑자’를 냈다는 지적도 받는다.
코레일은 2015년 현재 부채 14조8266억원, 부채비율 344.6%로 강한 부채 감축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코레일은 자산매각, 수익창출, 경영효율화 등을 통해 부채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코레일은 강력한 부채감축 노력으로 2005년 공사 전환 이후 최초로 지난해 1034억원의 영업흑자를 달성했다. 하지만 코레일의 부채감축 노력이 자산매각이라는 방법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미래의 사업 밑천까지 팔아치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5년간 코레일의 자산매각 현황을 살펴보면 폐선부지, 역사 등을 1187억원에 매각했고 올 6월에는 인천공항철도를 4조5000억원에 팔아 6180억원의 수익이 발생했다.
또 ‘2015~2019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오는 2019년까지 용산 토지를 3조9000억원에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서울 성북역세권 부지와 용산병원 등의 유휴부지, 그리고 민자역사 지분도 매각할 계획이다.
박수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코레일이 자회사를 ‘마른 수건 쥐어짜는 식’으로 압박하고 사업밑천을 다 팔아가며 부채감축을 하고 있는데 과연 장기적인 관점에서 코레일과 국민 편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