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신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전통의 명가 대우증권을 품에 안는다. 박 회장이 미래에셋을 세운 지 18년 만이다. 한국 증권업계 사상 유례없는 자본금 8조원 규모의 초대형증권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평사원으로 증권업계에 입문해 금융그룹의 총수가 되기까지 박 회장의 행보는 역사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또다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시대를 열기 위해 도전했다. 다만 새로운 도전에는 시련이 따르는 법. 박 회장의 선택을 두고 가타부타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복잡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이라는 단순함이다.


◆ 미래에셋, 대우증권 품고 업계 1위로

지난해 12월24일 산업은행은 KDB대우증권 지분 43%와 산은자산운용 지분 100%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미래에셋컨소시엄(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선정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9월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3조4000억원이 됐고 대우증권의 자기자본은 4조4000억원이다. 단순 합산만으로도 박 회장은 7조8000억원 규모의 초대형증권사를 갖게 됐다.

알려진 매각가는 2조4000억원.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2000억~3000억원을 더 쓴 것이지만 박 회장의 포부는 남달랐다. “더 쓸 생각도 있었다”는 그의 말처럼 대우증권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박 회장은 “신년사에서 미래에셋그룹의 자기자본을 3년 내 10조원까지 만들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대우증권 인수합병(M&A)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며 “시너지가 1+1은 2가 안되는 집단도 있지만 대우증권과의 인수합병은 1+1이 3을 넘어 4나 5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현주 회장, 대우증권 인수 관련 기자간담회.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박현주 회장, 대우증권 인수 관련 기자간담회.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박 회장은 처음 증권업계에 들어왔을 때 대우증권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1991년 동원증권에서 불과 32세의 나이에 최연소 지점장 자리에 오른 그는 대한민국에 IMF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1997년 회사를 박차고 나와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했다.
다음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출시했다. 이 펀드는 출시 3시간 만에 500억원의 설정한도액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펀드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당시 상황에 비춰봤을 때 ‘박현주 1호’의 인기는 투자패러다임의 혁신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나아가 미래에셋그룹이 업계에서 입지를 굳힌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지난 2007년 출시한 ‘인사이트펀드’가 대표적이다. 인사이트펀드는 주식·채권 등 자산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벌 자산배분을 실현하겠다는 전략으로 출시됐다. 그러나 중국의 높은 성장성을 믿고 펀드자금의 70%가량을 중국에 투자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 결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발한 중국증시의 대폭락에 속절없이 당하며 수익률이 반토막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박 회장은 언론 등과의 접촉을 일체 단절한 채 은둔형 CEO로 지냈다.

◆ 초대형증권사 오너… ‘소통’ 필요할 때

박 회장은 이번 대우증권 인수를 계기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약 8년 만이다. 지난해 12월28일 그는 대우증권 인수 관련 간담회를 열고 기자들과 대화했다. 오랜만의 기자간담회였지만 그는 여유로웠다. 오히려 궁금했던 점을 속시원하게 풀어주겠다며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 100분가량을 질의응답에 할애했다. 초대형증권사 탄생으로 한국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의 DNA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박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찮다. 대우증권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우선 대우증권 노동조합과의 구조조정 및 고용승계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이자용 대우증권 노조위원장은 “고용안정과 관련해 원론적인 의미가 아닌 영업점과 본사 부서 통폐합 등 회사 조직편제 변경과 직군변경, 원격지 발령 등 세부적인 직원 인사이동 사항까지 전제돼야 한다”며 “합병 전후 이에 대한 노사합의는 단순한 선언적 의미가 아닌 실질적 구속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대우증권 직원 모두 내 후배들이고 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며 “지금까지 금융회사 합병 후 구조조정 사례는 참고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50~100명의 인원이 필요하지만 뽑지 않았다”며 “대우증권의 우수한 인력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조4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승자의 저주’에 빠질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매입하는 대우증권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인수하는 차입인수(LBO) 논란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이 같은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실제 박 회장의 기자간담회 이후 시장의 반응은 따뜻했다. 미래에셋증권의 주가는 간담회 당일 장중 15% 넘게 치솟았다. 지난해 9월 유상증자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다가 이날 반등에 성공한 것. 박 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와 미래에셋그룹의 청사진을 밝힌 것이 투자자들에게 확신을 줬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과감한 선택으로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박 회장. 이제 노조와 대화하고 투자자들과 의견을 공유하며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때다.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프로필
▲1958년 광주 출생 ▲1986년 동원증권 입사 ▲1991년 동원증권 중앙지점 지점장 ▲1995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고위경영자과정 수료 ▲1996년 동원증권 강남본부장 이사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 설립 ▲1999년 미래에셋증권 설립 ▲2001년~ 미래에셋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