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는 증시침체의 원인으로 지목된 ‘공매도’ 잡기에 한창이다. 호재가 있음에도 공매도 세력으로 인해 주가가 떨어진다는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자자해서다. 하지만 공매도를 법안으로 제한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공매도 자체를 규제하는 것보다 개인이 기관이나 외국인에 비해 불리한 환경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포커스] 혼란만 부추기는 '공매도 잡기'

◆ 공매도 물량 증가… 주가하락 노린 루머도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코스피, 코스닥시장의 대차잔고 규모가 55조789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 국내증시가 본격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때 기록했던 수준과 비슷한 규모다.


대차잔고는 투자자들이 빌려간 주식 중 아직 상환하지 않은 주식을 말한다. 대차거래는 주로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후 주가가 떨어지면 빌린 가격보다 싸게 주식을 매수해 갚는 공매도를 위해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식을 파는 무차입 공매도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차잔고의 증가는 공매도 물량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공매도의 증가는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가하락에 베팅한 투자자가 그만큼 많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투자자보다 정보습득이 빠른 기관이나 외국인들이 주로 공매도에 나서며 주가하락 가능성을 높인다. 또 일부 악의적인 세력이 주가를 떨어트리기 위해 악성루머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코스닥 대장주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허위사실이 자본시장에서 유포되고 반복 재생산돼 공매도 세력에게 악용됐다”며 “모든 지분을 외국계 제약사에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2012년 중국 임상시험 과정에서 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루머가 돌았다. 소문이 퍼진 후 3일간 10만주가 넘는 공매도 물량이 나오며 주가가 52주 최저가를 기록했다.


◆ 공매도에 집단반발… “내 주식 안빌려줘”

최근 셀트리온은 공매도 세력으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 유럽 등지로 진출하는 대형호재에도 공매도 규모가 커지며 주가가 상승 탄력을 받지 못했다. 이에 개인투자자들은 집단으로 주식대여를 하지 않는 증권사로 주식을 이관하는 운동을 벌였다. 자신들의 주식을 기관이나 외국인투자자에게 대여해 공매도하는 일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증권사를 옮긴 한 개인투자자는 “주식대여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아도 증권사가 임의로 주식을 대여할 우려가 있다”며 “내 주식이 공매도에 이용돼 주가하락으로 돌아오는 일을 막고자 주식을 이관했다”고 말했다. 투자자의 불신에서 시작된 셀트리온 주식 이관 운동은 다른 공매도가 많은 종목들로 전이됐다.

개인들이 집단행동을 보이자 정치권은 공매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18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통과시킨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공매도 물량이 일정기준을 넘을 경우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또한 공매도 잔고가 일정비율을 넘어서면 잔고내역과 인적사항 등을 공시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허위 공시할 경우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2012년부터 대통령령으로 시행된 공매도 잔고 보고제도를 강화하고 자본시장법상 명시적인 근거규정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증시가 폭락하는 위기상황에서는 공매도 금지가 효과를 발휘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덮쳤을 당시 금융위원회는 주식공매도 전면금지라는 시장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하기 위한 외국인의 숏커버링(환매수) 물량이 들어오며 증시의 추가하락을 방어했다.


[포커스] 혼란만 부추기는 '공매도 잡기'

◆ 상충된 정책노선… “개인 공매도 접근성 늘려야”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매도 공시법 도입이 정치권의 과잉대응이라고 지적한다. 아직 금융위기와 같은 징후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법안으로 공매도를 제한할 경우 자칫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매도 제한은 긴급상황에서 증시폭락을 막기 위한 최후의 카드가 돼야 한다”며 “다시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도래하면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공매도 공시법이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정부정책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정부는 사모펀드시장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사모펀드를 ‘전문투자형’(헤지펀드)과 ‘경영참여형’(PEF)으로 단순화하고 등록요건을 낮추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다수의 헤지펀드가 공매도를 이용하는 ‘롱숏전략’으로 운용된다는 점이다. 롱숏전략은 주식을 매수(롱)한 후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일정 부분을 공매도(숏)하는 전략이다. 공매도 공시법이 시행되면 헤지펀드가 어떤 종목을 얼마만큼 공매도하는지 노출된다. 이 경우 해당 회사가 주가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에 정보 공개를 꺼릴 우려가 있어 투자에 어려움이 생긴다. 결국 사모펀드를 살리겠다는 정부가 불과 4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장을 억압하는 꼴이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논란이 된 근본원인을 개인과 기관·외국인 간 어긋난 투자형평성에서 찾는다. 기관과 외국인투자자는 한국예탁결제원이나 연기금 등 대량의 주식을 보유한 곳과 대차시장을 통해 거래할 수 있는 반면 개인은 증권사와 한정된 기간 및 규모로만 대차거래를 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가 공매도에 불만을 품는 이유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기관과 외국인에 비해 개인이 대차거래를 할 수 있는 기간과 종목에 제약이 따르고 대차 수수료도 크게 차이난다”며 “신중한 검토를 통해 개인이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공매도의 접근성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