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들은 정씨도 바로 다음날 영업점을 찾았다. 하루 차이에도 발생하는 이자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때문에 서둘렀다. 그러나 정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대환대출을 받을 수 없으며 현재 대출건의 상환을 마친 이후에는 대부업 대출을 이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경계선이라 불리는 대부업에서조차 대출을 거부당한 정씨, 김씨와 정씨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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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고범준 기자 |
대출상품에 적용되는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됐다. 지난 3일 대부업법 개정안을 포함한 금융개혁법안 20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즉각적인 실효성을 갖게 됐다. 따라서 현재 법정 최고금리는 34.9%에서 27.9%로 낮아졌다.
그런데 금리인하를 놓고 대부업체 이용자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김씨처럼 인하된 금리를 적용받는 이용자는 환영하는 목소리를 내는 반면 엄격한 신용평가로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이용자는 “이제 어디서 대출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막막한 심정을 드러냈다.
◆수혜자 김씨, 연이자 35만원 줄어
500만원을 대출받은 김씨는 이번 금리인하로 연이자가 35만원 줄어든다. 그 전에는 한해 174만5000원의 이자를 납부했지만 이제는 139만5000원만 내면 된다. 7%포인트 인하된 이자율의 대표적인 수혜자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최대 약 330만명이 약 7000억원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다.
금리 인하혜택은 대부업체 이용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신용카드 연체이자율도 덩달아 인하됐다. 지금까지 신용카드의 할부서비스·카드론·현금서비스·리볼빙 등을 이용하면서 대금납입을 연체했을 때 적용되던 이자율이 약 29%였다. 이는 개정된 최고금리를 웃도는 수준으로 카드사들은 지난 3일 이후 서둘러 연체이자율을 연 27.9%로 소폭 인하했다.
법정 최고금리가 연 27.9%로 형성된 만큼 일부 저축은행도 대출금리의 하향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지금까지 저축은행은 7~9등급 저신용자의 경우 연 28~30%의 금리를 적용했지만 상한선을 27.9%로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대부업계와의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 금리인하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이번 금리인하는 분명 서민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도에 여유가 있다면 대환대출로 즉각 27.9%를 적용받을 수 있고 앞으로 대부업대출 이용에도 이자부담이 경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인하는 대부업계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의 전반적인 금리에도 영향을 미쳐 그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예상했다.
◆거절자 정씨,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금리가 인하되기 전 정씨는 김씨와 똑같이 500만원을 빌렸지만 금리인하 이후 대부업체는 정씨의 대환대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가로 500만원을 대출받아 기존대출건을 즉시 상환하고 인하된 금리로 새롭게 대출받으려 했으나 거부된 것.
정씨는 왜 대환대출을 거절당했을까. 대부업체 관계자는 “정씨의 신용도를 고려했을 때 연 27.9%의 금리가 낮은 수준이어서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부업계는 금리가 인하된 만큼 대출자의 신용평가를 더 엄격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연체경험이 빈번하고 이미 대출금이 많은 저신용자들은 대출이 배제되거나 한도가 축소될 예정이다.
문제는 정씨와 같은 대출거절자가 수십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7월 최고금리 연 29.9%를 가정했을 때 금융위원회는 대출거절자가 30만명, 금융연구원은 52만~152만명, 한국대부금융협회는 115만명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은 그보다 금리가 2%포인트 더 낮게 설정돼 대출거절자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금리를 인하할 때마다 저신용자의 대부업 이용률이 낮아졌다. 신용평가사 나이스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대부업 최고금리가 44%였을 당시 7등급 이하 저신용자의 대부업 이용률은 79.3%였다. 하지만 최고금리가 연 39%, 연 34.9%로 인하되자 그 비율은 70.8%, 68%로 점차 감소했다.
반면 신용등급 중위등급자(5~6등급)의 이용률은 20%, 26.8%, 30.8%로 매번 증가했다. 이수진 한국금융위원회 연구위원은 “이런 현상은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수익성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업체가 우량고객인 중위등급자로 고객군을 이동한다는 징후”라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사례를 제시하며 금리인하가 서민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고금리를 20%로 제한한 프랑스에서 여러 부작용이 관찰됐기 때문. 미상환을 우려한 프랑스 대부업계는 대출자에게 제3자 보증을 요구하거나 대출자 급여의 일정액을 바로 차압하는 조항을 계약사항에 넣었다. 그럼에도 개인파산율이 25%로 매우 높아 최고금리 설정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박덕배 금융의창 대표는 “서민 중에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단기적으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쓰고 수입이 생기면 대출을 상환하는 사람이 많다”며 “따라서 이들에게는 높고 낮은 금리보다 대출 가능 여부가 중요한데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져 대출거절자가 많아지는 것은 대부업 성격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취약한 서민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금융위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서민금융 지원강화방안’을 주요 골자로 한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를 주 대상자로 하며 일자리-재산형성 연계상품과 주택보증금 지원 등으로 서민금융의 건전성을 늘린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리인하로 대부업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은 물론 저소득자·저신용자 등으로 대상을 넓혀 금융지원을 할 것”이라며 “일시적인 지원보다 재기를 돕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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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