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와 광고에 단골로 등장하는 제주 대표여행지 성산일출봉. 도대체 어디서 봐야 저렇게 보이는지 궁금하다면 광치기해변으로 가보자. 바다에서 한번, 일출봉에서 한번, 멀리서 가까이서 성산일출봉을 즐겨보자.


광치기해변에서 본 성산일출봉
광치기해변에서 본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초록 해변

광치기해변 같은 바다를 이전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물이 빠지면 바다 쪽으로 초록색 이끼 바위가 드러난다. 보통의 해변이 하얀 모래사장에 이어 파란 바다로 이어진다면 광치기해변에는 그 사이에 초록이 끼어 있다. 만조 때는 모습을 감췄다가 썰물 때 나오는데 마치 바닷가에 초록 잔디가 깔려 있는 듯하다. 화산이 터질 때 분출물이 바다로 흐르다 굳어져 이런 독특한 지형이 새겨났고 그 위를 싱그러운 바다 이끼가 얇게 덮었다. 베이지색 모래사장, 초록 이끼 바위, 파란 바닷물, 그 위로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얀 파도가 아름답다.


이곳은 성산일출봉 포토존으로도 손꼽힌다. 광치기해변에서 왼쪽 바다를 보면 끝에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육지 쪽으로는 사면을 이루고 바다면은 직각으로 떨어지는 성산일출봉의 특징이 제대로 드러난다. 사진 작가들이 성산일출봉을 촬영할 때 으레 찾아오는 장소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광치기해변 뒤쪽이 온통 노란색으로 변한다. 봄을 알리는 유채꽃이 2월부터 피기 시작한다. 잔잔한 유채를 배경으로 보는 성산일출봉도 근사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봄의 가장 핫한 포토존이 된다. 바닷가에서 ‘초록 카펫’ 위의 성산일출봉을 찍는다면 유채밭에서는 ‘노란 카펫’ 위의 성산일출봉을 찍는다. 더 재미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벤치나 하트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놓은 곳은 유료존이다. 사람이 많을 때는 은근히 자리싸움도 치열하다. 반면 길가에 핀 ‘돌보지 않은’ 유채꽃밭도 매력있다. 제주의 검은 돌담과 자연스럽게 어울린 노란 유채가 야생의 제주를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한다.

그런데 ‘광치기’라는 이름의 어원은 결코 곱거나 예쁘지 않다. ‘관 치우는 곳’에서 왔다니 ‘제주 사람들은 뭐 이런 예쁜 데서 관을 치웠나’ 생각이 든다. 비밀은 이 지형에 있다. 해변의 너럭바위들이 매끄러운 한덩어리가 아니라 사이사이 좁고 넓은 골을 이루다 보니 중간중간 물이 고여 있다. 밀물 때 이 바위들을 덮어버릴 정도로 물이 찼다가 물이 싹 빠지면 파인 곳에 물이 고인다. 마찬가지로 풍랑을 만나 조난당한 어부들의 시신이 파도에 밀려 들어왔다가 바위 사이로 걸리곤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늘 시신을 수습하는 관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바다에 나간 가족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곳에 와봤을 것이다. 망자가 되어 돌아온 가족을 만나면 한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한편 시신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 여겼을 것이다. 누군가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그리며 이곳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이름의 뜻을 알고 보면 왠지 가슴이 쓸쓸해지는 해변이다.


성산일출봉에서 보이는 성산항
성산일출봉에서 보이는 성산항
광치기해변
광치기해변

‘이름값을 한다’ 했던가. 이곳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또다시 큰 슬픔을 맞는다.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54년까지 이어진 '4.3사건'의 유적지다. 광치기해변에서 성산일출봉 쪽으로 이어지는 모래사장을 ‘터진목’이라고 하는데 이 일대 즉 난산리·수산리·고성리 주민들이 이곳에서 무고하게 희생됐다. 당시 성산국민학교(초등학교)에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편성된 특별중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니 근처 주민들이 얼마나 시달렸을지 알 만하다. 그들은 끌려온 주민들에게 온갖 폭행과 고문을 가했고 결국 희생된 숫자가 4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근 구좌면, 세화리, 하도리, 종달리 등에서 잡혀온 주민들도 이곳에서 희생됐다고 한다.

◆제주의 태양이 떠오르는 곳


이제 해변에서 봤던 성산일출봉에 올라보자. 아마도 이곳은 제주의 여행지 중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일 것이다. 높은 한라산을 아래서만 보던 여행자도 해발 184m의 성산일출봉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한다.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낮고 평평한 바닷가 끝에 솟아 있어 바다와 육지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일대의 랜드마크다. 사실 성산일출봉은 ‘랜드마크’ 그 이상이다. 모든 것이 상식을 뒤집는다. 원통형으로 솟아 있어 오르는 길은 절벽이고 꼭대기에 올라가면 뾰족한 봉우리가 아닌 평평하고 오목한 분화구가 있다. 오르는 길은 계단이 놓여 험하지 않지만 수직으로 오르려니 생각보다 숨이 많이 찬다. 낮은 구릉 산이지만 산행길의 기암괴석은 큰 산에서나 보던 장대함을 가졌다.

타이틀도 다양하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천연기념물 제420호, 대한민국 자연생태관광 으뜸 명소, 한국관광기네스…. 이렇게 많은 감투가 그냥 생긴 것은 아닐 테고 "성산일출봉? 너무 뻔한 거 아냐?" 했던 여행자들도 "과연 그렇군!"하고 감탄을 쏟아낸다.


성산일출봉 곰바위
성산일출봉 곰바위

일찌감치 이 일대 사람들은 성산일출봉을 신성시하며 제를 지냈다. 제주 신화에 늘 등장하는 설문대할망도 이곳을 지나치지 않았다. 할망은 낮에 돌을 날라 섬을 만들고 밤에는 옷을 빨고 돌을 담느라 낡아 떨어진 부분을 꿰매 입었다고 한다. 이때 일출봉 분화구를 빨래바구니로 쓰고, 우도는 빨랫돌로, 바느질을 할 때는 불을 켜야 해서 성산일출봉의 등경돌을 촛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해서 고려 때는 삼별초가 토성을 쌓았고 조선시대까지 봉수대도 있었다. 일제도 이 지형의 가치를 알았는지 강점기 때 이곳을 요새화하기 위해 절벽에 24개의 굴을 뚫고 폭탄과 어뢰를 실은 쾌속정을 숨겨뒀다. 일제가 물러간 후 빈 동굴은 해녀들의 탈의장이나 어구 창고로 쓰였다.

성산일출봉의 하이라이트는 정상이다. 정상에 있는 오목한 분화구는 사발같이 생겼다. 그 사발의 끝에는 바다나 하늘이 걸려 있다. 초록이 들기 시작하면 초록과 파랑, 겨울에는 갈색과 파랑의 단순하고 둥근 라인이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감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마치 어안렌즈를 통해 아래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육지쪽을 보면 삐죽 튀어나온 성산항과 종달리, 하도리, 오조리, 고성리가 가깝고 멀리 보인다. 잠깐 숨이 찼지만 요만큼 오르고 이런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분명 여행의 축복이다.

시간을 잘 맞추면 ‘해녀물질공연’도 볼 수 있다. 성산어촌계 해녀들의 시연프로그램으로 10여분의 짧은 공연이다. 매일 두번씩 공연하는 것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텐데 이곳을 찾는 여행자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고맙다. 역시 여행은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감사를 배우는 '몽학선생'이다.


[여행 정보]

제주공항에서 광치기해변 가는 법

공항입구에서 ‘중문, 한림, 신제주’방면으로 우회전 - 공항로 - 신제주입구에서 ‘성산, 시청’ 방면으로 좌회전 - 서광로 - 국립박물관사거리에서 ‘표선, 봉개동’ 방면으로 우회전 - 번영로 - 대천동사거리에서 ‘평대’ 방면으로 좌회전 - 비자림로 - ‘수산2리’ 방면으로 우회전 - 금백조로 - 수산2리 입구에서 ‘성산’ 방면으로 좌측방향 - 서성일로 - 일출로

[대중교통]
제주공항에서 500번 버스 승차 - 광양정류장에서 하차 - 탐라장애인 종합복지관 정류장에서 710번 승차 - 광치기해변 정류장에서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광치기해변: 검색어 ‘광치기해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유채꽃밭: 검색어 ‘유채꽃재배단지’, ‘성산포JC 공원’
성산일출봉: 검색어 ‘성산일출봉’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로 284-12

광치기해변 유채꽃 유료 포토존
입장료: 1000원

성산일출봉
문의: 064-783-0959
관람시간: 오전 4시 30분 ~ 오후 8시 30분
관람요금: 어른 2000원 / 청소년·군인·어린이 1000원
해녀물질공연: 오후 1시 30분 / 오후 3시 / 관람료: 무료

● 음식
오조해녀의집
: 오조리 어촌계 해녀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대표 메뉴는 전복죽으로 내장을 넣고 끓여 초록빛을 보이고 매우 고소하고 전복살이 두툼하게 들어 있다.
전복죽 1만1000원 / 소라 1만원 / 문어 1만원
064-784-0893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한도로 141-13

● 숙박
디아일랜드마리나 호텔&리조트
: 고성리에 있어 광치기해변과 성산일출봉을 여행하기에 좋고 실내수영장, 아침뷔페식당, 커피숍 등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객실에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예약문의: 1877-6500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고성오조로 94
http://www.theislandmarina.com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