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스톡홀름 최고의 쇼핑지역으로 알려진 드로트닝가탄(Drottinggatan)거리. 소비의 중심지답게 많은 사람이 북적대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주머니에는 현금이 없다. 모든 가게에서 카드나 스마트폰으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금 걸어가면 노점상이 즐비한 회토리에트(Hotorget)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평일 꽃과 과일을 팔다가 일요일이 되면 액세서리, 그릇, 빈티지 의류, 공예품 등을 파는 벼룩시장으로 변한다. 이곳 역시 현금이 필요 없다. 가격이 저렴한 작은 물건을 사더라도 상인들은 카드단말기부터 들이민다. 거스름돈을 일일이 세어주는 것보다 카드로 긁는 것이 상인들도 편하다는 이유에서다.
1661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폐를 사용한 스웨덴은 이제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뒀다.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운 뚱뚱한 지갑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 소비자의 지갑에는 지폐나 동전 대신 얇은 카드 몇장이 존재할 뿐이다.
무현금시대는 스웨덴뿐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금 사용제한이 유럽의 마이너스금리를 장기화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비난도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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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 스웨덴, 현금만으로 살 수 없는 나라
스웨덴은 유럽국가 중에서도 현금거래 비중이 낮은 대표적인 국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웨덴 국내총생산(GDP) 중 현금이 유통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현금비중이 10%를 차지하는 전체 유로존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대신 신용카드나 전자결제를 사용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2013년 스웨덴의 카드거래 건수는 24억건으로 15년 전보다 10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스웨덴에서 현금거래가 줄어드는 이유는 어느 곳에서나 현금 없이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스톡홀름에 거주하는 제나 오메로비치(Dzena Omerovic)는 집 근처 헤드비그 엘레오노라 교회에 다닌다.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교회는 고풍스럽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교회에는 낡은 상자나 실크 주머니와 같은 예스러운 헌금함이 없다. 대신 ATM기기와 비슷한 신식 헌금납부기가 한켠에 마련됐다.
제나는 여기에 카드를 넣고 헌금할 금액을 선택해 납부한다. 물론 모바일뱅킹으로 입금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그는 “실제 스웨덴 교회에서는 대부분 헌금함을 보기 힘들다”며 “교회에 헌금하기 위해 현금을 인출하지 않아도 돼 편하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는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 곳도 생겼다. 길거리를 거닐면 현금결제가 불가능하다는 간판이 달린 카페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버스에서도 현금을 아예 받지 않아 사전에 교통카드를 준비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 심지어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는 사람도 카드단말기를 필수로 갖고 다닌다.
현금사용이 점차 줄면서 스웨덴에는 현금을 보유하지 않은 은행도 늘어나는 추세다. 스웨덴 대형은행 6곳 중 한델스방켄(Handelsbanken)을 제외한 5곳은 주요 지점 80%가량을 무현금점포로 운영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스웨덴의 은행이 보관하는 현금규모가 지난해 36억크로나(약 5160억원)로 2010년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이에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다가 아무것도 훔치지 못한 채 잡힌 황당한 사건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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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럽국가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로 발돋움했다. 덴마크는 현금을 소매점의 지급결제수단으로 의무화하지 않는 법안을 지난해 입안했다. 의류판매점, 음식점, 주유소 등 소매점에서 손님이 현금을 내밀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셈이다.
또 프랑스·벨기에 등은 3000유로(약 4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수십배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스페인·포르투갈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100만~500만원 이상 금액을 거래할 때 현금이 아닌 계좌이체 등의 수단을 이용하도록 법으로 규제했다.
네덜란드 결제수단협회는 핀카드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핀카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Hier Alleen Pinnen)라는 로고를 만들어 소매점에 배포했다. 이 로고를 붙인 상점에서는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다.
이스라엘도 적극적인 정부정책으로 현금 없는 사회로 도약한다. 이스라엘정부는 2014년 ‘세계 최초의 현금 없는 국가’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위원회는 ‘현금이 나쁜 것’이라는 인식 아래 이스라엘에서 현금거래를 금지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기업 간에는 7500쉐켈(약 260만원), 개인 간에는 1만5000쉐켈(약 520만원) 이상 현금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나아가 입법일로부터 1년 후 이 한도를 더 줄일 계획이다.
◆ 마이너스금리 정착 위한 ‘꼼수’?
전문가들은 2030년이면 유럽국가 대부분이 현금 없는 사회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고액권인 500유로(약 67만원) 지폐를 폐지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고액권이 탈세, 마약거래, 테러자금 등 범죄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인식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유럽국가들이 현금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장전문가들은 현재 마이너스금리체제로 돌입한 유로존이 이를 장기 고착화하기 위해 현금사용을 억제하는 것으로 분석해 논란이 일고 있다. 마이너스금리일 경우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닌 보관료를 내야 한다. 이 경우 은행에 예금하려는 사람이 줄고 급기야 대규모 인출(뱅크런)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금이 없다면 사람들은 은행에 돈을 맡길 수밖에 없다. 실제 현금 없는 사회에 가장 가까운 스웨덴과 덴마크는 이미 마이너스금리를 몇년째 이어오고 있다. 스웨덴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35%에서 -0.50%로 낮췄다. 덴마크는 2012년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이후 지난 1월까지 -0.65%의 금리를 유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금자들은 자신의 예금에 수수료가 부과될 것을 예상해 현금확보에 힘쓴다”며 “마이너스금리 통화정책이 현금 보유자 때문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