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노사갈등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공방전으로 번졌다. 임금협상과 관련해 조종사들이 항의문구를 담은 배너를 가방에 걸고 그 사진을 각자의 SNS에 올리는가 하면 회장은 직접 조종사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에 조종사노조는 명예훼손이라며 반발했고, 회사는 지난 16일 조종사 20여명을 징계심사 대상에 포함시켜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조종사들이 SNS를 적극 활용한 건 조종사와 SNS의 특성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운항 스케줄 탓에 SNS를 활용해 각자의 소식을 전하고 원하는 시간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회사처럼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기 어려운 점도 SNS로 극복 가능했다.
지난 11일에도 조종사노조는 페이스북을 통해 'KE621편 기장 파면에 대한 조종사노동조합의 입장'이라는 발표문을 게재하며 회사측이 규정을 지킨 기장을 오히려 처벌했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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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한항공 |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달 21일 KE624편을 조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모 기장을 징계위원회에 넘겼다.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단체협약엔 ‘연속된 24시간 이내 12시간 초과’ 근무를 할 수 없도록 규정됐고 박 기장이 해당 항공편을 운항하면 근무시간을 4분 초과하게 돼 운항을 거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 "개가 웃어요" 사회적 이슈로
지난 13일에는 김모 부기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종사들이 비행 전에 뭘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올렸다. 한 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한 해명성 게시물이다. 규정대로라면 1시간45분 전까지 출근이지만 미리 알아둬야 할 정보가 많아 전날부터 준비하고 비행 당일에도 2시간30분 전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나름의 고충이 많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같은 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김모 부기장 페이스북 게시글에 항공기 조종이 자동화된 점을 언급하며 김모 부기장을 나무라는 댓글을 직접 달았다.
조 회장은 “전문용어로 잔뜩 나열했지만 99%는 새로운 게 아니며 자동차 운전보다 쉬운 AUTO PILOT으로 가기 때문에 조종사는 아주 비상시에만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적은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라는 격한 표현이 인터넷 여론을 들끓게 했고, 이에 항의하듯 조종사들은 개가 웃는 사진에 조 회장의 발언을 적어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항공기에 대한 전문성이 적지 않을 조 회장의 댓글이 ‘조롱’에 가까워 논란에 불을 지폈다.
조종사노조는 또다시 SNS를 통해 “비행 안전을 위해 일해온 조종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CEO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또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SNS전문가들은 “조 회장이 공유와 소통이라는 SNS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 회장이 한 사람에게 글을 남겼을 뿐이지만 그 사람의 친구들도 함께 볼 수 있는 특성을 간과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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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선 조종사들. /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
이후 대한항공은 지난 16일 가방에 배너를 건 조종사 20명을 사내 운항상벌심의기구인 자격심의위원회에 회부했다.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공교롭게 이날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선 대한항공의 ‘조종사노조의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문이 진행됐다. 노사간 협상을 앞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 갈 데까지 간 노사갈등
이번 노사간 갈등의 근본원인은 임금이다. 최근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KPU)은 파업을 가결했다. 이후 조종사들은 준법투쟁을 선언하며 쟁의행위를 벌였다. 조종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으면서도 오너는 이익을 챙겼다고 항의한 것.
업계에 따르면 조종사 노조의 평균연봉은 1억4000만원이다. 지난해 임금협상에선 사측이 일반 노조와 동일 수준인 1.9% 인상안을 고수했지만 조종사노조는 37% 인상을 고집했다. 이들은 조 회장의 지난해 연봉 인상률이 37%였다며 조합원 한명당 평균 5100만원씩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회사는 조 회장이 여러 계열사로부터 받은 보수가 6.2% 올랐고, 그중 대한항공에서 받은 보수는 1.6% 인상에 그쳤다고 설명하며 37%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노조는 조종사 가방에 '회사는 적자! 회장만 흑자!', '일은 직원 몫, 돈은 회장 몫'이라는 배너를 걸고 시위를 시작했다. 대한항공 측은 노조 집행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배너를 붙인 조종사들을 주시하며 서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업계에선 조종사들의 이런 움직임에 ‘상대적 박탈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해외항공사에 취직하면 우리나라 항공사들보다 많게는 1억원 이상 보수를 더 받을 수 있으니 회사가 이런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회사도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긴 어렵다. 조종사들이 해외사례와 비교하며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지만 업무강도나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임금을 올려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항공사의 한 기장은 “해외항공사로 옮겨갈 경우 보수가 늘어나는 건 맞지만 가족도 함께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서 “소속 항공사와 원활히 합의하는 게 우선”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2014年 ‘땅콩회항’ 파문에 이어 조 회장의 '댓글 사건'이 벌어져 오너 일가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다시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는 특수 이동수단을 운영할 권리를 가졌지만 그만한 사회적 책임도 따른다”면서 “조종사 역시 그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사명감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책임론’을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