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장려 시대, 기업들이 '모성보호'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여성 인구가 남성을 추월했고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일찌감치 남성을 앞지른 만큼 기업 내 여성인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에 기업들도 '친워킹맘 정책'에 적극적이다. 임신·출산을 배려한 업무 경감은 물론이고 일과 가정을 두루 살피기 위한 대대적인 가족친화경영을 펼친다. 10년 전인 2006년만 해도 한국노동연구원이 5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족친화경영제도 도입 시 비용 증가가 부담스럽다"는 응답이 다수(64.3%)였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하이힐 신은 엄마'를 지원하는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분홍 표식'부터 '육아휴직 2년제'까지

# 삼성전자에 재직 중인 김모 과장(여·32)의 목에는 파란색이 아닌 분홍색 줄의 사원증이 걸려있다. 출근시간, 전직원이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나는 동안 김 과장은 별도의 입구를 통해 사무실로 들어온다. 김 과장의 자리에는 '모성보호'라고 적힌 분홍색 메모꽂이가 그녀와 뱃속의 아이를 반기듯 놓여 있다. 김 과장은 현재 임신 5주차다. 임신기간 중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에 그녀는 '회사의 배려'를 톡톡히 느낀다. 김 과장은 "오늘도 통근버스에서 임부 배려석에 앉아 편안하게 출근했다"며 "점심시간에 구내식당 '예비맘코너'를 이용하면 칼슘이 풍부한 우유와 두유까지 무료로 마실 수 있다"고 전했다.

 

카카오 어린이집 ‘늘예솔’ . /사진제공=카카오
카카오 어린이집 ‘늘예솔’ . /사진제공=카카오

삼성전자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기혼여성 인력비율이 10% 이상 증가했고 2014년 기준 모성보호 대상자는 12.7%에 달한다. 다른 기업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마다 모성보호 대상자들이 늘면서 이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사만의 차별화된 정책을 펼친다. 정부에서 정한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연장근로 금지 등은 기본이다.
삼성생명은 2011년 임신부를 위한 '모성보호센터'를 열었다. 전담인력을 배치해 임신한 직원들의 근무 여건을 수시로 확인하는가 하면 임신부 보호용 의자나 전자파 차단 앞치마 등 필요한 물품을 아낌없이 지원한다.


IT업계 최고 근무환경을 지향하는 네이버는 임신한 직원들을 위해 '임신부 발레 주차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상시 대기하는 주차요원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으며 실제 많은 여직원이 이를 애용한다. 출산 전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업무에 집중하는 여성 임직원들을 위한 시설도 마련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유축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침대, 발 마사지기기, 살균기 등을 설치해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한다.


자발적으로 휴직일수를 연장해 워킹맘을 지원하는 기업도 있다. KT는 유급 출산전후휴가를 법적으로 보장된 60일보다 10일 더 많은 70일을 부여한다. 지난해 출산휴가 대상자인 146명 모두 70일을 채웠고 이탈자 없이 모두 복귀했다. 출산전후휴가를 끝낸 만 6세 이하 유아가 있는 여성 직원에게 주어지는 육아휴직의 경우도 KT는 법정기간인 1년보다 많은 2년을 보장한다.

롯데백화점 역시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쓴다. 지난해 3월 '육아휴직 2년제' 프로그램 도입에 이어 8월 '법정기간 외 출산휴직제도'를 신설해 임신 시점부터 최대 3년까지 휴직할 수 있도록 했다. 


넥슨 어린이집 ‘도토리소풍’. /사진제공=넥슨
넥슨 어린이집 ‘도토리소풍’. /사진제공=넥슨

◆슈퍼우먼 맞춤 '직장어린이집'
# 출산·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워킹맘들의 이어지는 걱정은 역시 육아다. SK주식회사 C&C에 재직 중인 최모 과장(35)은 그런 걱정이 없다. 오전 9시 회사 건물 3층에 있는 사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사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그날 처리할 업무를 검토한다. 일과 가정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슈퍼우먼'을 꿈꾸는 최 과장은 "사내에 어린이집이 있다는 것이 워킹맘에게 큰 힘이 된다"며 "경제적인 부담과 개인의 커리어 걱정이 동시에 사라졌고 엄마가 일한다는 것에 아이가 자부심을 느껴 보람도 크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상당수의 워킹맘은 사내 복지 1순위로 직장어린이집을 꼽는다. 실제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IT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직장어린이집에 힘을 쏟아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넥슨의 직장어린이집 '도토리소풍’은 1176㎡ 의 대규모 시설을 자랑한다. 1층과 2층으로 구분된 공간은 '퐁퐁 도서관'과 '영아용 쑥쑥 놀이터'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알록달록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실내 체육시설도 확보해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며 체력단련을 할 수 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게임기업의 명성에 걸맞은 넥슨의 '아트빈'(ART bean) 프로그램에는 다채로운 교실활동, 미술관 관람 등의 교육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어린이를 양성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지구별어린이집'이라는 콘셉트로 꾸며진 카카오의 직장어린이집 '늘예솔'도 넥슨에 견줄 만하다. 판교에 위치한 늘예솔은 입구부터 눈에 띈다.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가 어린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어서다. 친환경을 모티브로 한 늘예솔의 각 공간은 조약돌, 물, 이끼, 수생식물을 형상화했다. 어린이들은 165㎡가 넘는 공간인 '푸른 언덕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논다. 이 실내 놀이터에는 이동식 조합 놀이기구, 빅블록 등 다양한 놀이기구가 비치된 데다 동작인식 빔프로젝터인 '모션 플로어'까지 설치돼 공간과 영상을 이용한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신은하 한솔교육희망재단 사무국장은 “최근 기업들은 워킹맘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좋은 보육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결국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여직원들의 둘째·셋째아이 출산으로 이어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