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독일 알리안츠그룹은 당시 국내 생명보험업계 4위 보험사인 제일생명을 4000억원대에 인수했다. 그로부터 17년. 지금까지 총 7차례에 걸쳐 8000억원이 넘는 증자로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겨우 35억원만 건지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한다.
사실 알리안츠생명은 지난해 87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년간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보험사의 가치평가기준인 내재가치가 순자산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과거 고금리확정형으로 팔았던 상품은 알리안츠생명의 발목을 잡았다. 받아야 할 보험료보다 야 할 보험금이 많은 상황. 저금리 기조가 계속된다면 손실은 더욱 커진다.
이에 독일 알리안츠그룹은 돈을 더 쏟아부을 바엔 차라리 싼 값에 팔고 나가자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헐값 매각 쇼크만을 남겨둔 채 한국에서 발을 빼는 셈이다. 한국 M&A 시장에서 중국 자본이 또 다른 외국계인 독일 자본을 인수한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국내 금융사들은 멀리서 관망만 했다. 국내 금융사 중에선 인수 실탄을 가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한화·교보생명이 주도하는 국내 생보시장은 저금리로 고전 중이다. 게다가 2020년까지 대규모 자본확충이 필요한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를 준비하느라 타 보험사 인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반면 안방보험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보험·은행·카드·증권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입질을 하고 있다. 동양생명에 이어 알리안츠생명을 손에 쥔 안방보험은 매물로 나온 ING생명까지 추가로 인수할 태세다. 보험사뿐만이 아니다. 삼성카드, 우리은행 등을 인수해 한국에서 금융지주사를 설립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온다.
물론 안방보험의 국내 진출을 편협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안방보험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안방보험은 지금까지 외부감사를 받은 재무제표를 공개한 적이 없다. 실질적인 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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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일수록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당국은 안방보험이 대주주로서의 자격을 갖췄는지 그 이면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국내 금융사를 헐값에 처분하지 않도록 매각시기나 방식을 조정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금융시장의 육성방안 없이 무차별적으로 외국계 자본을 유치한다면 부작용은 우리 몫이다. 지금처럼 멍하니 있다간 국내 금융산업의 주도권을 중국자본에 넘겨주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