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성과주의 제도 도입 여부를 두고 직원 간 갈등을 빚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 선 인물은 곽범국 사장. 곽 사장은 노조와의 합의에 앞서 내부 성과연봉제(성과주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곽 사장은 개인과 팀, 부서의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개인, 조직 평가제도 개선방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금융공기업(금융회사 포함) 가운데 자체적으로 만든 성과제도 개선방안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부자료에는 ▲개인역량평가 ▲업적평가(조직업적·개인업적) ▲경력 및 연수 등 세부항목을 통해 직원과 팀의 성과급과 기본급을 지급하고 승진, 이동배치를 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노사가 합의하기도 전에 사측이 먼저 지침을 만들었다는 것. 예보는 지난 2월 금융당국과 성과중심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후 한국능률협회에 성과주의 도입 관련 용역을 맡긴 상태다. 결과는 오는 5월 중하순에 나올 예정이다.


그럼에도 곽 사장은 간부회의에서 “공기업 성과주의 도입에 무조건 1등 해야 한다”며 이달까지 임금·성과체계 개편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금보험공사 성과제도 개선방안 문건.
예금보험공사 성과제도 개선방안 문건.

◆개인·조직성과 평가지표 구축
곽 사장이 제시해 마련한 성과주의 방안은 직원을 대상으로 한 업적평가와 역량평가(개인역량), 조직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직업적(BSC) 등 총 3가지로 나뉜다. 개인성과를 평가받는 대상은 일반직원(1~5급, 사무·서무직원)과 별정직원(전문직)이며 연간 2번에 걸쳐 평가가 이뤄진다. 기본급은 개인과 조직의 업적평가와 리더십, 직무성과 등 역량평가를 합산해 근무성적의 총 점수를 매겨 결정하고 승진여부는 근무성적 평가점수와 경력·연수 평가점수, 기타 점수를 종합해 산출한다.

내부평가 항목의 배점은 부서의 경우 ▲외부평가 50점 ▲계량목표 달성도 5점 ▲담당이사 비계량평가 5점 ▲지표별 평가위임부서평가 27점 ▲사장과 부사장의 전략실행평가 각각 5점·8점 등으로 총 100점 만점이다. 개인 성과등급은 A~E 등 5등급으로 나눠 관리한다. 이 중 A등급은 10%, B등급은 15%, C등급은 50%, D등급은 15%, E등급은 10% 순으로 나눴다. 직원 100명 중 A등급을 받는 사람은 총 10명, B등급은 15명, C등급은 50명, D등급은 15명, E등급은 10명 순으로 차등을 두겠다는 뜻이다.

현재 예보는 1~3급의 중간관리자급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나머지 4~5급 직원들은 일부 성과급을 더한 호봉제를 적용 중이다. 호봉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임금체계를 말한다. 팀·부장(조직) 내부평가는 ▲경영평가점수 50점 ▲계량목표달성도 5점 ▲담당이사비계량 평가 5점 ▲공통지표 27점 ▲전략실행평가(부사장평가·사장평가) 8점 등 총 100점으로 분류했다.


종합직(팀원)은 직급이 낮을수록 개인업적의 평가비중이 높아진다. 1급부터 3급의 직원은 개인업적이 40%, 조직업적의 경영평가는 60%가 반영된다. 4급은 개인업적과 조직업적이 각각 60%·40%, 5급은 80%·20%로 구성된다. 즉 예보가 제시한 성과주의 개선방안의 핵심은 개인의 업적과 역량에 따라 기본급 지급, 승진 여부가 결정되는 것.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일 잘하는 직원이 우대받는 문화’, 성과주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직원은 개인성과에 조직업적 비중이 생겨 팀과 부서의 성과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부담이 늘었다. 금융공기업은 일반 금융사처럼 상품개발, 판매 등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워 예보 직원들의 성과 확보에 난항이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예보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금융공기업이 민간금융사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판단해 성과주의 성공사례를 제시하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업무부터 천양지차를 보인다”며 “금융공기업의 환경을 고려한 성과주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사진제공=예금보험공사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사진제공=예금보험공사

◆다방면 평가… 당근책 실효성 ‘미지수’
이번 성과주의 가이드라인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는다. 예보가 일방적인 하향식 평가를 보완하기 위해 직급과 상관없이 상하좌우 평가가 가능한 다면평가제도를 부활키로 했으나 지난 2010년 신뢰도 문제로 중단했던 다면평가를 어떤 방향으로 보완할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특정 직급이 편중된 부서를 선정해 해당직급 평균점수를 1점 상향조정하겠다는 방안도 실효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앞으로 예보는 반기마다 전체직원 평균연차의 표준편차(1.3배)를 초과하는 부서 2~3개를 선정한다. 규정상 같은 직급이 3명 이상 몰린 부서의 1, 2차 평균점수는 87.5점이지만 1점 상향해 88.5점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예보의 팀 평가점수가 최소 85점에서 최대 92점인 것을 감안하면 1점 상향이 팀의 점수 상승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이다.

예보 관계자는 “다방면 평가는 공사에서 2003년부터 실시한 것으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공모델을 내놓지 못했다”며 “기존의 평가항목을 보완한 것들이 현실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보 관계자는 “현재 외부에 알려진 성과주의 가이드라인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며 “용역결과가 나오면 노조와 협의해 성과주의 도입을 추진한다는 게 공식입장”이라고 해명했다.

직원들의 반대에도 곽 사장이 성과주의 도입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최근 예보 사장 출신들이 국내 금융사의 요직에 자리하면서 꾸준히 활동하는 점을 들어 곽 사장의 거취에도 성과주의 도입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예보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금융개혁의 핵심으로 성과주의를 제기한 상황에서 성과주의를 1순위로 도입한 공기업 수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