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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금융감독원 |
특히 국내 보험사 건전성지표에 대한 불신도 커지는 상황이다. 국내엔 알리안츠생명과 지급여력비율(RBC)이 비슷한 보험사가 수두룩하기 때문. KDB생명을 비롯해 흥국생명, 현대라이프, 동부생명 등이 알리안츠생명보다 RBC비율이 낮거나 조금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PCA생명 등 외국계보험사들은 대체로 알리안츠생명보다 RBC비율이 훨씬 높은 편이지만 유럽 솔벤시II 기준을 적용하면 안전지대가 아니다.
◆한국서 양호한 보험사들, 유럽 솔벤시II 기준 적용하면?
최근 안방보험에 35억원에 매각된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의 RBC비율은 183.6%(지난해 12월 기준)다. RBC는 보험사가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만한 수준의 책임준비금 외에 추가로 자산을 쌓도록 한 제도다. 국내에선 대표적인 보험사의 건전성지표로 쓰인다. 우리나라 RBC제도 기준에서 알리안츠생명의 건전성은 양호한 편이다. 국내 보험업법상 보험사가 100% 이상의 RBC비율을 유지하면 양호한 상태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감독회계기준인 솔벤시II 기준에서 보면 알리안츠생명의 건전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독일 알리안츠그룹이 알리안츠 한국법인을 35억원에 팔아넘긴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고금리확정형 상품을 많이 판매한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계속 자회사로 두면 솔벤시Ⅱ의 부채 시가평가로 인해 그룹 전체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솔벤시Ⅱ는 보험사가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해도 보험금 지급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준비금을 쌓게 하는 자기자본규제제도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솔벤시Ⅱ를 보험사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미국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알리안츠생명을 비롯해 PCA생명,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등 유럽·미국계 보험사들은 솔벤시II 기준을 적용받는다. 영국 보험사의 경우 그동안 솔벤시II 규정에 맞추기 위해 수천만파운드를 쏟아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국내 다른 보험사의 경우 아직 '한국식' 제도를 적용받고 있어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12월 말 기준 보험사 RBC비율은 267.1%로 10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매물로 나온 KDB생명의 RBC비율은 178.5%로 가장 낮다. 역시 매물로 나온 영국계 보험사인 PCA생명의 RBC비율은 391.9%로 가장 높했다. PCA생명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영국 푸르덴셜그룹) 차원에서 유럽 솔벤시II 도입을 꾸준히 대비해왔다"며 "재무건전성을 한국 기준이 아닌 국제기준 수준으로 높여왔다"고 설명했다.
인수합병(M&A)시장에 나온 ING생명은 324.9%의 RBC비율을 기록했다. 다만 ING생명의 경우 네덜란드계 외국자본으로 설립됐지만 MBK파트너스로 인수되면서 국내 등록 사모펀드 대주주 체제를 갖게 돼 국내 생보사 신분이다. 따라서 유럽 솔벤시II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형 솔벤시II가 도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새 RBC 도입 로드맵 나온다… 자본확충 부담 추가
현재 국내 RBC비율은 자산과 부채를 원가로 평가한다. 하지만 보험부채를 평가할 때 보험상품을 판매할 당시의 금리를 적용하다 보니 요즘 같은 저금리 환경에서는 실질적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과거 고금리 확정형상품을 많이 판 보험사의 경우 부채가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업계 및 학계 일각에서는 현행 RBC 규제가 금리환경의 변화, 보험상품 다양화로 인한 리스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14일 보험사를 대상으로 솔벤시II를 기반으로 하는 '신 지급여력제도(RBC)' 도입 계획을 제시했다.
금감원은 보험자산과 부채를 100% 시가평가로 전환하는 새로운 RBC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유럽의 솔벤시II를 골자로 RBC비율을 산정하는 요소인 요구자본을 강화하겠다는 것. 예컨대 유럽계 보험사들은 보유주식에 대해 위험부담금을 최고 40%까지 쌓아야 하는데 1조원의 주식을 보유할 경우 4000억원의 요구자본이 필요하다. 이 구조의 RBC제도가 국내에 도입되면 한국판 솔벤시II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한국판 솔벤시II가 도입되면 추가로 쌓아야 할 준비금도 시가평가 기준 할인율에 따라 결정된다. 할인율은 20년 만기 국고채금리를 활용한 결과 2%대 중후반으로 정해질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보험부채 적정성평가(LAT) 당시 할인율이 3%대 후반~4%대 초반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할인율이 1%포인트 이상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국내에 솔벤시II 방식이 도입되면 보험사들이 쌓아야할 준비금은 예상보다 2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 한 관계자는 "솔벤시Ⅱ 도입이 현실화되면 요구자본 수준이 지금보다 2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며 "자본을 충분히 확충하지 못하면 보유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을텐데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인지 당국은 시장에 혼선만 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보험사들은 보험산업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솔벤시Ⅱ 도입시기를 늦춰줄 것을 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고금리의 보험계약을 많이 보유한 곳일수록 부채 부담이 늘어나 지급여력에 비상이 걸릴 것"이라며 "유럽의 경우 중소형 보험사들은 1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솔벤시Ⅱ를 도입했다는데 우리도 당장 도입하기보다는 업계에 미칠 재무적 충격을 고려해 시간을 두고 정착할 수 있도록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국은 이 같은 의견을 받아들여 RBC비율이 취약한 보험사의 재무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