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지난 11일부터 KB·신한·우리·기업 등 4개 은행에서 첫선을 보였다. 신탁형은 지난달 14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증권사의 경우 이날부터 신탁·일임형 판매를 동시에 시작했고, 은행의 경우 이달 11일부터 판매를 할 수 있게 됐다.

일임형 ISA는 ISA 계좌에 담을 투자상품의 종류와 운용을 금융사에 맡기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ISA에 한해서만 은행의 투자일임업을 허용하기로 결정, 4개 은행은 투자일임업 허가를 마치고 지난 11일부터 일임형 ISA 판매에 돌입했다.


이들 은행 관계자들은 영업지점의 분위기는 대체로 한산한 편이며 일임형ISA 출시로 고객의 문의나 가입이 눈에 띄게 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각 지점당 판매해야 할 'ISA 실적'에 대한 지침이 내려왔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A은행 직원은 "일임형 ISA 판매를 시작했다고 해서 고객 문의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며 "신탁형 ISA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 보니 (근무 지점의 경우) 행원 당 200개를 판매해오라고 지시가 내려왔는데, 가능할지 앞이 막막하다"라고 덧붙였다.

B은행 직원도 "다른 지점에 확인한 결과, 10여명이 가입한 지점도 있고 1명도 가입하지 않은 지점도 있는데 약간 편차가 있다"며 "일임형 ISA때문에 창구가 붐빈다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고 오히려 어떻게 고객한테 ISA 판매를 유도할까 머리가 아프다"고 전했다. 또 "각 지점 별 성과에 다를 수는 있지만, 'ISA' 판매 권유 압박에서 자유로운 은행원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4일부터 ISA의 판매실적을 집계한 결과, 총 가입자수는 139만4287명으로 이 중에서 은행이 전체의 91%인 126만6668명을 차지했다. 계좌수를 보면 은행의 압승으로 보이지만 금액별로 살펴보면 은행 가입금액은 5327억원(61%), 증권사는 3427억원(39%)으로 점유율에 비해 부진하다. 1인당 평균가입금액은 증권사가 270만원으로 은행(42만원)보다 6배 이상 많은 상황이다. 즉, 가입자만 많았지 실속이 없는 셈이다. 

C은행 직원은 "신탁형이 출시됐을 때 무리한 내부 할당으로 친인척과 지인을 총동원해 1만원짜리 깡통 ISA를 여러개 만들었다"며 "이제 일임형 ISA의 실적을 또 내야 하는데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D은행 관계자 역시 "지점마다 다르지만 큰 지점은 996개, 조금 규모가 작은 지점도 480개 정도 내부 할당 지시를 받아 (근무 지점의 경우) 행원 1인당 ISA 40개씩 판매하라고 '특명'이 내려진 상황이다"며 "동기들끼리도 ISA 실적 압박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종종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임형 ISA는 로봇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즉, 컴퓨터가 투자를 해서 일정부분 손해가 발생하면 컴퓨터가 '손해가 났다' '팔아야 한다'라고 신호를 보내고, 이에 따라 회사에서 매도를 판단하는 집단이 결정을 한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임형은 말 그대로 고객이 모든 것을 은행에 위임해 은행이 사고 파는 것을 알아서 결정하는 상품이라, 아직 불완전한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권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일임형 ISA의 경쟁력은 모델 포트폴리오(MP)에서 결정된다. 고객의 투자 성향과 상품 위험도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잘 꾸리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인데, 이 MP는 전문 운용역의 역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은행권의 일임형 ISA를 두고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불안요인이 턱없이 부족한 전문 인력이다. 이들 은행의 일임형 ISA 전담 운용역은 각각 두 명에 불과하다. 법에서 정한 최소 기준만 충족해 사실상 판매 인력도 초라한 상태다.

일임형 ISA는 '펀드 투자권유 자문인력' '파생상품 투자권유 자문인력'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만 팔 수 있다. 이는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서인데, 은행마다 이 자격증을 보유한 행원 숫자가 전체의 30% 안팎이다. 즉, 영업점 한 곳당 평균 1~3명 수준에 불과해 은행들이 부랴부랴 행원들에게 자격증을 따라고 독려하면서 1인당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게는 수백개를 판매하라고 내부 할당을 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편,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8일 서울 을지로 은행연합회에서 국내 9개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은행권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판매와 관련해 소액계좌 양산, 불완전판매 행위 등에 대한 우려를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자료사진=머니위크DB
금융감독원. /자료사진=머니위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