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큰 고통과 슬픔을 겪어 온 피해자 여러분과 가족 분들께 가슴 깊이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4월18일 급작스레 마련된 기자회견장. 취재진 앞에 선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가 고개를 떨궜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 첫 피해사례가 발생한 지 5년 만이다.
롯데마트는 그동안 자체브랜드(PB)제품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해당 제품을 사용한 일부 소비자가 치명적인 폐손상으로 사망하는 등 각종 잡음이 불거져 나왔고 롯데마트는 판매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입은 유·무형의 피해는 결국 김 대표가 떠안아야 할 짐이 됐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롯데마트가 이제라도 피해 보상을 수습해 나갈지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면피용 사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따가운 시선도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대표의 사과는 본격화된 검찰 수사와 관계자 소환 조사를 코앞에 두고 부랴부랴 이뤄졌다. 만일 김 대표가 현 상황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다면 롯데마트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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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롯데마트 대표. /사진=임한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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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롯데마트 대표. /사진=임한별 기자 |
◆ ‘사과’ 뒤에 가려진 1석3조 효과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논란은 2011년 4월 불거졌다. 서울시내의 한 병원에 출산 전후의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 등 8명이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입원하면서부터다. 폐 조직이 굳어버린 산모 4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것을 시작으로 수백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당시 보건당국이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이들이 공통으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롯데마트가 2006년 11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시판한 PB제품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있던 롯데마트는 초지일관 입을 다물었다. 다른 제조 판매업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들의 집단소송과 검찰 고발에도 ‘강 건너 불구경’ 하던 롯데마트가 ‘발등의 불’을 끄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롯데마트는 적잖은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적절한 보상을 통해 피해자 유가족들의 반발을 잠재우면서도 대내외적으로 비난을 덜 받을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다. 그렇게 총대를 멘 인물이 김 대표다.
그가 간담회에서 언급한 별도의 보상계획은 크게 3가지. 검찰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 ▲피해보상 전담 조직 설치 ▲피해보상 대상자 및 피해보상 기준 검토 ▲ 피해보상 재원 마련 등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소 모호한 계획이지만 업계에선 그 이면에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실제 롯데마트 입장에서는 대표를 앞세운 ‘사과와 보상계획’을 타 업체보다 먼저 발표하면 ‘선제적 대응’이라는 이미지를 챙길 수 있다.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보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수위를 낮추고, 여론에 쌓인 잡음을 줄일 수 있는 ‘1석3조’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이래저래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계획 발표’는 진정성 유무를 떠나 롯데마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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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한 봄… '이미지 회복' 과제
이제 김 대표에게 떨어진 당면 과제는 소비자로부터의 이미지 회복이다. 전형적인 소비자간거래(B2C) 기업인 롯데마트는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이 곧 매출로 직결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롯데마트 성장은 수년째 정체 상태다.
최근 대형마트 3사가 공개한 실적자료에 따르면 롯데마트 매출은 ▲2011년 6조3530억원 ▲2012년 6조4650억원 ▲2013년 6조4600억원 ▲2014년 5조9890억원 ▲2015년 5조9760억원으로, 2012년 이후 3년 연속 줄었다. 지난해 거제·광교·양덕점 등 신규 점포 3곳의 개점 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매출 감소폭은 더 큰 셈이다. 영업이익 역시 ▲2013년 3160억원 ▲2014년 2240억월 ▲2015년 870억원으로 해마다 급감했다.
올 1분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대형마트 규제와 온라인 쇼핑몰의 성장이라는 이중고 속에 롯데마트의 성장 전망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올 초 롯데마트는 협력업체 갑질 논란의 주인공으로 지목되면서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삼겹살데이 등 자체할인행사를 위해 물류비, 카드행사 판촉비 등을 협력업체에 떠넘겼다는 주장이 발단이다.
그 불똥은 곧장 김 대표에게 튀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모든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없애는 등 갑을 문화 개선을 위한 소통 행보에 주력했다. 그의 상생 노력과 전혀 다른 결과에 때 아닌 경영능력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김 대표가 취임 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시장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다만 그가 회사에 닥친 위기를 효과적으로 넘기고 그 과정에서 생길 리스크를 얼마나 적절히 컨트롤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 매출 하락, 갑질 논란에 이어 살균제 책임론까지 떠안게 된 김 대표의 앞날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상황 반전의 묘수를 펼칠 수 있을지 시장은 김 대표의 무거운 어깨를 주시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는 S-Oil 출신이다. 그는 1990년 S-Oil경영기획팀에 입사해 13년간 근무했다. 이후 2003년 롯데백화점 경영전략팀으로 이직했고 그해 롯데마트로 자리를 옮겨 기획부문장, 해외사업부문장, 전략본부장, 중국법인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맡았다. 지난해 1월 대표이사직에 오른 뒤 2년 째 롯데마트를 이끌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