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A씨는 자동차보험료 갱신통지서를 받을 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 지난해 68만7660원이었던 자동차보험료가 올해 80만원대로 15% 이상 인상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문콕’ 사고로 차량의 문짝이 훼손돼 보험처리하는 바람에 할증이 붙었지만 보험료 인상도 한몫했다. A씨는 “자동차보험료 자체가 비싸다 보니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타격이 크다”며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상품·가격경쟁을 촉진한다고 발표해 보험료가 떨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오른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부터 보험료 책정이 자율화되면서 각종 보험상품의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자동차보험료는 약 3%, 실손보험료는 약 20%, 종신보험·CI(치명적질병)보험·암보험·어린이보험 등 보장성보험료는 5∼10% 인상됐다. 금융당국의 ‘보험가격 규제완화’ 방침으로 보험료 인하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가입자의 부담만 늘어난 모습이다. 금융당국이 보험료 인상의 빌미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나아가 규제완화를 통해 독창적 상품개발을 독려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취지와 달리 올해도 ‘붕어빵 찍어내기’식 상품이 나와 실효성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보험업권 규제완화 이후 많은 상품이 쏟아졌지만 대부분 서로 비슷하거나 기존 상품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보험사 CEO들을 만난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뉴스1 DB
보험사 CEO들을 만난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뉴스1 DB

◆자동차·실손보험 등 줄줄이 인상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화재에 이어 동부화재도 자동차보험료 인상대열에 합류했다. 이로써 모든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료가 올랐다. 개인용 자동차보험 기준 회사별 인상률은 KB손보 3.5%, 동부화재 3.2%, 현대해상 2.8%, 삼성화재 2.5% 등이다. 중소형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2~8%씩 인상했다. 영업용 자동차보험료도 개인용과 비슷한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올 들어 실손의료보험료가 크게 올랐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KB손해보험 등 대형손보사들은 실손보험료를 18~27%씩 인상했다. 중소형손보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흥국화재는 금융감독원의 인가를 받고 실손보험료를 무려 44.8%나 인상했다.


생명보험사도 실손보험료 인상에 동참했다.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빅3’는 22~23%, 중소형생보사는 15~21% 올렸다. 올해 실손보험 평균 인상폭은 25.5%로 지난해 실손보험 인상률(평균 8.3%)보다 약 17.5%포인트나 높다.

종신보험, CI(치명적질병)보험, 암보험, 어린이보험 등 대다수의 보장성보험료도 올랐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이 예정이율(예상수익률)을 0.25%포인트씩 내리면서 신규 가입자의 보장성보험료가 5~10% 인상됐다.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금·환급금을 지급할 때 적용하는 이율로 보험료를 산정하는 기준이다. 예정이율이 낮아지면 보험료는 올라간다. 지난달 보험사들은 “4월부터 보험료가 오르니 서둘러 가입하라”는 식의 절판 마케팅으로 상당한 판매액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금융당국의 규제완화 이후 보험사들이 가격 인상으로 수익을 챙기는 데만 급급한 게 아니냐고 질책한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저금리, 높은 손해율 등으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각종 규제로 인해 높은 손해율에도 수년간 보험료를 올리지 못했다”며 “가격을 무작정 인상한 게 아니라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설명했다. 실제 자동차보험 부문 손해율은 2012년 75.2%에서 2013년 78.2%, 지난해 80.1%로 상승했다. 실손의료보험 손해율도 130%대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올해 대부분의 보험상품가격이 갑작스레 오른 이면에 금융당국의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에 앞서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며 “보험사가 보험료를 마음 놓고 올릴 수 있도록 여지를 준 곳은 금융당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가격 및 상품 자율화 정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당국은 자동차보험의 손해율 실태와 실손보험의 인상요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가격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어길 수는 없다”며 “다만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의 근거로 제시하는 요소들을 살펴보고 보험료를 30% 이상 인상한 보험사가 있다면 적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붕어빵’ 신상품 출시 여전


획기적인 상품 개발을 유도하겠다는 당국의 취지와 달리 여전히 같은 구조의 ‘붕어빵’ 보험만 나오는 것도 규제완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확산시킨다. 지난해 상품 출시상황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

보험업계에 신상품이 쏟아지는 4월에도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유병자 간편심사보험, 양·한방보험,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 등 특정상품을 연이어 출시했다. 이미 다른 보험사가 출시했던 상품을 이름만 바꿔 출시하는 경우가 빈번해 새로운 상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약 하나를 더한 뒤 ‘업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제3보험인 양·한방보험과 유병자 간편심사보험의 경우 생·손보업권을 초월한 벤치마킹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월 현대라이프생명이 양·한방보험을 업계 최초로 출시해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지만 손보사에는 해당되지 않는 점을 이용, 동부화재와 KB손보가 비슷한 형태의 상품을 시장에 내놨다. 삼성화재가 6월 출시를 검토 중인 상품도 양·한방보험과 비슷한 구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자보험도 지난해 현대해상이 출시한 후 시장의 반응을 얻자 손보사뿐 아니라 생보사까지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쏟아냈다. 삼성생명은 지난 4월15일 유병자보험을 개시하자마자 예상실적의 2배를 웃도는 2만건을 팔아 설계사채널 판매중지라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예상보다 특정상품을 많이 팔면 쏠림현상으로 인해 손해율이 악화될 수 있어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로서는 새로운 상품개발에 비용과 시간을 쓰는 것보다 다른 회사가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손해율관리·고객의 니즈 등 시장상황을 지켜본 후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며 “규제완화가 상품 베끼기 관행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시간을 두고 길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규제완화가 시행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획기적인 상품출시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며 “큰 변화는 아니지만 각종 신상품 개발로 유병자보험과 같은 신흥시장이 보험업계에 형성되고 보험다모아 출범으로 온라인보험 경쟁이 활성화되는 등 규제완화로 인한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머니 포커스] 신상품 개발? 보험료만 올랐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