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핑퐁’. 지난 4월19일 오후 1시47분 판교에 위치한 넥슨 컨소시엄을 지날 때 탁구 치는 소리가 들렸다. 3층에 위치한 실외공간인 듯했다. 어떤 회사길래 탁구 소리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릴까. 호기심에 3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노란색으로 가득한 사무실이 보인다. 그곳은 최근 카카오 게임계열사인 ‘엔진’과 합병한 ‘다음게임’의 사무실이었다. 노란색과 회색이 섞인 똑같은 후드에 슬리퍼를 신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직원들. 회사 한켠에 마련된 탁구대와 텐트. 이는 엔진만의 모습이 아니다. 판교에 위치한 게임회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10대 메이저 게임회사가 자리하고 150여개의 중소게임회사가 입주한 판교테크노밸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일대의 ‘게임특별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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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계열사 엔진의 직원이 회사에서 지급한 후드를 입은 모습. /사진=진현진 기자 |
◆자전거 타는 ‘후드족’
판교테크노밸리는 출근 풍경부터 다르다. 굴지의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와 보안회사 안랩이 위치한 사거리. 오전 8시50분쯤 신호등이 3번 바뀌는 동안 기자가 본 자전거의 수는 총 13대. 회사가 밀집한 광화문이나 강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자전거를 끌고 엔씨소프트 방향으로 걸어가는 한 남성을 따라가니 엔씨소프트 ‘자전거주차장’이 보인다. 일렬로 세워진 수많은 자전거에 한번 놀라고 자전거정비소에 한번 더 놀랐다. 엔씨소프트에 따르면 직원 복지 차원에서 마련된 자전거정비소에서 자전거의 수리, 부품교체 등 자전거와 관련된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는 일부일 뿐이다. 지하 1층에 ‘자전거족’을 위한 더 넒은 자전거주차장이 있다.
엔씨소프트뿐만이 아니다. ‘프렌즈팝’으로 유명한 NHN엔터테인먼트도 1층 로비에 자전거보관소와 정비소가 마련돼 있다. NHN엔터테인먼트 자전거족들은 별도로 만들어진 입구로 들어와 자전거를 주차하고 로비로 들어선다.
판교 게임회사에 자전거족이 많은 만큼 ‘칼정장족’은 보기 힘들다. 정장 자켓과 바지, 넥타이를 맨 사람은 각 회사의 보안요원이나 면접을 보러 온 사람뿐일 정도. 스포츠브랜드 져지나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면바지를 입은 사람이 가장 많다. 여기에 자신이 속한 팀이나 회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후드, 야구점퍼를 걸친다. 마지막으로 각 회사의 특성을 드러내는 사원증을 목에 걸면 개성 있으면서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게임특별시 판교의 트렌드패션이 완성된다. 이 패션을 그대로 장착한 다음게임의 품질관리 담당 박모씨(32)는 “회사에서 지급한 후드가 따뜻하고 편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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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엔터테인먼트 자전거보관소. /사진=진현진 기자 |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판교의 점심시간인 오전 11시30분쯤. 오른손에는 반짝이는 금반지 2개, 귀에는 헤드셋을 장착한 남성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출근 중이라는 엑스엘게임즈의 콘텐츠개발자 조민혁씨(30)다. 판교의 패션트렌드인 청바지와 검정색 져지를 입은 그는 자유로운 복장만큼이나 출근시간도 자유롭다. 그는 “회사에서 근태관리를 따로 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판교에서 일한 지 8개월째라는 조씨는 “전날 야근해서 늦게 출근했다”며 “맡은 업무만 잘해내면 된다.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실제 판교의 게임회사 중 일부는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을 보장한다. 업무의 특성상 밤을 새는 경우가 많기 때문. 완전한 자유가 아니더라도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다. 넥슨의 경우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선택해 출근할 수 있으며 출근시간에 따라 8시간 동안 근무하면 된다. 직원들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게임회사의 특성상 고정된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스마트워크’를 목표로 한다.
넥슨 사옥에는 캐주얼한 회의를 위한 공간이 곳곳에 마련됐다. 식당 한켠이나 오락기가 있는 휴게실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꽉 막힌 회의실, 고정된 좌석에서 탈피해 일하는 공간이 곧 자신의 사무실이고 자리가 되는 것. NHN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다. 오후 3시30분. 항구를 형상화한 지하 1층 식당은 회의장소였고 식곤증을 물리치기 위한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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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테크노밸리. /사진=진현진 기자 |
◆젊고 독특한 ‘교류의 장’
오후 5시20분쯤부터 시작된 판교의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 한 무리에 기자의 시선이 꽂혔다. 레이스 블라우스와 메이드복을 연상케 하는 치마, 니삭스와 통굽. 흔하지 않은 패션이었다. 한 중소게임사의 개발자라는 한모씨(31)는 동료들과 맥도날드에 간다며 발걸음을 뗐다. 그는 “개발자들이 특히 햄버거를 좋아한다”며 “판교 맥도날드는 유일하게 맥주를 판다”고 덧붙였다.
판교의 음식점들도 게임회사를 닮았다. 아시아 최초로 맥주를 파는 판교 맥도날드가 대표적인 예. 젊고 독특하다. 맥도날드는 최근 고객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20~30대를 타깃으로 판교직영점에 유일하게 버맥(버거·맥주)을 도입했다. 평균연령이 30대 초중반인 게임회사와 닮았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즐기는 점도 비슷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유난히 젊고 유난히 독특한 ‘덕후’가 많은 업계”라며 “밀리터리 덕후, 도라에몽 덕후 등 취향도 다양하다. 한 밀리터리 덕후는 수통을 차고 출근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카페가 많고 장사가 잘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수많은 미팅이 카페에서 진행되며 퇴근 후에도 이어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카페들이 투자정보와 신기술 교류의 장이듯 판교테크노밸리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아이디어가 샘솟고 협력이 논의된다. 판교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는 한 게임기획자는 “판교에 게임업체가 몰려있어 여러 단계를 생각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며 “협력이 용이해서 좋다”고 판교생활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판교시대. 판교테크노밸리 성공의 중심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판교의 등대’, 게임회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