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대형사는 인수합병(M&A) 등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고 중소형사는 ‘중기특화 증권사’로 진출하는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다. 업계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가운데 낀 중형사들은 갈림길에 섰다. 자기자본 크기순으로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대신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대부분은 대형사로 성장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전략에서 차이를 보인다. 유상증자로 자기자본을 늘리는 곳도 있고 증자 없이 꾸준히 이익을 높여 자본규모를 키우는 곳도 있다. 아니면 아예 대형화를 포기하고 현재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운 증권사도 있다.


(왼쪽부터)하나금융투자 본사, 신한금융투자 본사, 메리츠종금증권 본사. /사진제공=각사
(왼쪽부터)하나금융투자 본사, 신한금융투자 본사, 메리츠종금증권 본사. /사진제공=각사

◆ 대형-중소형, 재편되는 증권가
지난달 1일 KB금융지주가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현대증권을 품에 안았다. 기존 자회사 KB투자증권과 합병할 경우 단순합산으로 자본금이 3조9000억원을 넘어선다. 업계 3위의 대형증권사가 새로 등장하는 셈이다.


앞서 미래에셋증권은 자본규모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옛 KDB대우증권)를 인수했다. 기존 미래에셋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지난해 증자로 3조4500억원 수준이었고 옛 대우증권은 4조3800억원이었다. 단순 합산으로는 7조8000억원, 미래에셋증권이 사들인 옛 대우증권 지분 43%(2조3205억원)를 자사주로 포함하면 5조4000억원 규모의 초대형증권사가 탄생한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증권사들의 대형화 추세를 반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금융개혁 정례회의에서 “모험자본 공급, 전문적 기업금융, 해외진출 등 투자은행(IB)의 요소를 갖추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기자본을 확보하는 등 대형화가 우선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최근 NH-우리, 미래-대우, KB-현대 등 대형증권사 간 합병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자본규모 3조원이 넘는 증권사는 2013년부터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선정돼 각종 인센티브를 받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되면 기업신용공여(대출), 헤지펀드거래, 집행, 결제서비스 등 프라임브로커리지(전담중개)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 현재 인가를 받은 곳은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5곳이며 미래에셋증권도 금융당국에 인가를 신청했다. 앞으로 금융당국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제도변경과 1100%의 레버리지비율 제한 등 자본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여 증권사가 대형화되는 움직임은 지속될 전망이다.


반면 자기자본이 1조원 안팎인 중소형증권사들은 각자 특색을 살려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분투한다. 중기특화 증권사도 이들의 생존전략 중 하나다. 지난달 15일 금융위원회는 IBK투자증권, 유안타증권, 유진투자증권, KB투자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6개 증권사를 중기특화 증권사로 선정했다. 이 중 키움증권이 자기자본 1조1000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KB투자증권은 현대증권과 합병할 경우 자격이 상실되고 대신 KTB투자증권이 추가된다.

중기특화 증권사는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금융 업무를 특화하기 위해 올해 처음 도입한 제도다. 이번에 지정된 6개 증권사는 앞으로 정책금융기관, 한국성장금융, 한국증권금융 등의 기관으로부터 금리우대, 정보 우선제공 등 각종 지원을 받아 중소·벤처기업 투자은행(IB)업무에 주력할 예정이다.

◆ ‘각자도생’ 중형사, 행보 엇갈려

증권업계가 대형사와 중소형사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가운데 자기자본 1조원 후반대에서 3조원 미만의 규모를 갖춘 중형사들은 각자의 생존전략을 모색한다. 이들 대부분은 영업 저변확대를 위해 대형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방법에서는 각자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먼저 자본규모 2조5000억원대인 신한금융투자는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가 증자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000억원가량을 증자하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인가를 받을 수 있어서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예전부터 신한금융투자의 증자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다”며 “지금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데 정확한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해 9%대를 기록했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올해 1분기 3%대로 추락하면서 증자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에 신한금융투자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에서의 투자기회를 열어 자산관리(WM)에 집중하고 ROE를 끌어올릴 방침이다.

하나금융투자도 대형화를 위해 증자가 필요하다는 게 경영진의 입장이지만 아직 지주사가 검토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는 먼저 계열사 간 또는 내부적으로 융합을 통해 시너지를 강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하나은행과의 복합점포, IB-리테일 연계 등이 그중 하나다.

반면 메리츠종금증권은 외형을 키워 대형사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증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신 지금처럼 높은 ROE를 바탕으로 점차 자기자본을 높일 방침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20%가 넘는 ROE를 기록하고 올 1분기에도 ROE 12%로 업계 최상의 수익성을 이어갔다. 실제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증자한 4140억원을 제외하고도 이익잉여금이 2500억원가량 더 늘어나며 자기자본 1조7000억원대로 올라섰다. 업계 9위인 대신증권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셈이다.

한편 대신증권은 대형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까지 해왔듯 고객 자산관리에 집중하면서 수익모델을 다각화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계획이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저축은행, F&I 등의 인수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넓혔다”며 “금융주치의 MBA, 전문직 PB 채용 등으로 자산관리에 중점을 두고 ROE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머니 포커스] 중형 증권사의 '마이웨이'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