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곳곳을 누비며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서울시티투어버스가 텅 비었다. 2000년 서울시가 야심차게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했지만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시와 시티투어버스 운영업체 측은 홍보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무관심과 업체 간 소통 부재가 서울시티투어버스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지하철이 편해… ‘서울시티투어버스’ 외면


서울시티투어버스는 총 6개의 노선으로 운영된다. 이중 가장 인기가 많은 도심고궁코스가 전체 이용객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 노선은 광화문사거리에서 출발해 남대문, 서울역, 이태원, 남산, 동대문, 창덕궁, 경복궁 등을 2시간 동안 순환한다. 버스 배차간격은 25~30분으로 원하는 관광지에서 내렸다가 시간에 맞춰 버스에 다시 타면 된다. 첫차는 오전 9시, 막차는 오후 6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도심고궁코스를 이용한 승객은 하루 평균 239명이다.


하지만 평일 오후 시간대에 기자가 직접 버스를 타본 결과 노선을 한바퀴 도는 동안 탑승한 승객은 10명이 채 안됐다. 심지어 승객이 전혀 없는 구간도 있었다. 강남역과 봉은사, 코엑스 등을 도는 강남순환노선은 더 심각하다. 2013년 6월 첫선을 보인 강남노선은 애초 연간 6만명의 이용객을 목표로 운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이용객은 목표에 한참 못미친 2600명에 불과했다. 2014년보다 3분의1가량으로 줄어든 수준이다.


서울시티투어 트롤리버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서울시티투어 트롤리버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서울시와 업계에서는 서울시티투어버스의 홍보가 아직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내국인은 물론이고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투어버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중 서울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한 외국인은 4.9%에 그쳤다.
김재용 서울시 관광사업과장은 “뉴욕, 영국, 일본 등 시티투어버스가 유명한 도시에 비해 서울시티투어버스의 인지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적극 알리기 위해 최근 중국 관영방송인 CCTV에 서울시티투어버스 관련 방송을 내보내기로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또 수요가 부족한 강남노선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존 도심고궁코스, 파노라마코스, 야경코스 등 4개 노선을 운영하던 허니문여행사에 강남노선 영업권을 주고 환승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강북의 관광객을 강남으로 유입시키겠다는 취지다.

홍보가 부족한 점도 있지만 외국과는 다른 서울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사업을 추진한 것이 이용객 부진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서울시티투어버스보다 대중교통 이용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2014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다는 태국인 팸씨(27)는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려고 알아봤지만 대부분 정류소에 지하철역이 있어서 원하는 관광지만 지하철로 다녔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티투어버스 노선에 포함된 정류장은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손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예컨대 도심고궁코스에 있는 22개 정류장은 4~5개를 제외하면 모두 지하철역 부근에 위치해 있다. 남산 근처나 청와대 부근도 버스를 이용하면 한번에 갈 수 있다.

또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서울의 교통체증이 심해져 버스 도착시간이 지연되기 일쑤다. 시간이 돈인 여행객에게는 몇분의 기다림도 크게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도 지하철이 시티투어버스보다 유리하다.

외국의 경우 서울만큼 대중교통이 발달된 곳이 드물다. 관광지를 옮겨 다니기 힘든 만큼 시티투어버스가 유용하다. 우리나라의 잘 갖춰진 대중교통이 오히려 시티투어버스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한시라도 빨리 관광객을 끌 만한 서울만의 특색 있는 시티투어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진=장효원 기자
/사진=장효원 기자

◆서울시·사업자 소통 부재… 발전 저해
서울시티투어버스가 멈춰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노선확장에 나섰다. 애초 상암DMC-여의도노선과 동대문-잠실노선을 추가하려 했지만 상암노선은 유찰됐고 잠실노선은 기존 ‘전통문화코스’를 운영하던 서울투어버스여행이 지난달 30일 허가를 따냈다.

문제는 노선확충만으로 전체 이용객을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관련업계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선끼리의 환승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허니문여행사가 운영하는 강남노선과 강북을 운행하는 파노라마코스만 통합권으로 환승이 가능하다. 이외 다른 5개의 코스는 환승이 안된다. 노선별로 운영하는 업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환승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업체 간 상호협약이 필요한데 5개 노선을 쥐고 있는 허니문여행사 측이 이에 미온적이다. 허니문여행사 관계자는 “서로 다른 회사가 운영하기 때문에 영업권 문제도 있고 환승이 힘들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투어버스여행 측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환승시스템 도입에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체 간 의견조율에 나서야 할 서울시는 조용하다. 민간업체의 경쟁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는 2011년부터 이들 업체에 예산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사업초기에는 적자운영이 불가피해 자금을 지원했지만 이제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만큼 자율경영에 맡기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자율경영 방침이 무색하게도 시티투어버스 요금은 서울시가 결정한다. 현재 요금은 1만2000~1만5000원대로 형성됐다. 사업자가 요금인상안을 서울시에 신고하면 시는 이를 검토해 허가 여부를 정한다. 서울시티투어버스 요금은 2000년 처음 도입 이후 2013년 단 한차례 2000~3000원 인상한 것이 전부다. 서울시가 요금결정권을 쥐고 사업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면서도 중요한 상황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실제 서울시는 서울시티투어버스 도입 이후 담당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과거 자료도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의 무관심과 사업자의 불필요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서울시를 찾는 관광객 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 2013년에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에게 역사 깊은 서울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서울시티투어버스의 재정비가 필요한 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