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잠수교에 일렬로 늘어선 버스, 세빛섬 달빛광장 앞 출렁이는 주황색 물결. 한강 반포지구가 중국인관광객(유커) 4000명의 ‘한끼 식사공간’으로 변신했다.

세차게 오던 비가 그치고 선선한 바람이 불던 지난 10일 오후 서울 반포 한강시민공원에서 대규모 삼계탕파티가 열렸다. 파티의 주인공은 중국 건강기능식품회사인 중마이과기발전유한공사 임직원 4000명. 한강 삼계탕파티는 한국으로 포상관광 온 중마이그룹의 임직원을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이벤트로 이번이 두번째다. 앞서 지난 6일 중마이 임직원 4000명이 삼계탕파티를 즐긴 바 있다.


서울시 추산 495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는 초대형 스케일의 삼계탕파티. 유례없는 서울 한복판 닭파티에 한강에 놀러 나온 시민들의 발걸음도 멈췄다. 통제된 공간 안에서 유커만을 위한 ‘야외 시크릿 파티’를 연상케 했던 한강 반포지구 삼계탕 파티현장을 찾았다.


/사진=임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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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만을 위한 세빛섬
기자가 반포대교에서 내려다본 세빛섬의 행사장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유커들이 입장하기 전 삼계탕 만찬이 준비되는 공간은 수백개가 넘어 보이는 흰 테이블로 가득했고 중마이그룹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JM中脈’(중마이), ‘I·SEOUL·U’라는 대규모 글씨가 눈에 띄었다.

행사장에 점점 가까워지자 삼계탕파티를 준비하는 분주한 손길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육계협회’라고 적힌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스태프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행사를 위해 고용된 아르바이트인력만 400명이다. 서울시와 한국육계협회의 인력까지 합해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됐다. 두번의 행사 모두 스태프로 일했다는 이송현씨(25)는 “오후 12시30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며 “지난번에는 비가 와서 테이블 세팅하기가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수월하다”고 전했다.

삼계탕 만찬을 위한 테이블은 정성이 가득했다. 10인용 테이블 400개 위에 놓인 1인용 테이블 위생지. 그 위에 아리수(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물), 콜라, 홍삼드링크, 홍삼스틱, 캔맥주, 1인용 김치가 준비됐다. 이외에도 수저, 젓가락, 물티슈가 있었고 야광봉과 서울시 배지도 제공됐다. 준비된 그릇에 채워질 삼계탕만 있으면 완벽한 한상차림이었다. 1인용 테이블 위생지에는 삼계탕 이미지와 함께 ‘대표적인 한국의 전통 보양식 삼계탕,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삼계탕으로 영양을 보충해왔다’라는 문구를 새겨 음식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이밖에도 소금과 후추, 백세주 2병, 일회용 컵, 응원봉 등이 테이블 중간에 세팅됐다.


파티장이 유커를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주황색 단체복을 맞춰 입은 중마이 단체관광객들은 옆에 위치한 사전행사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기차기와 같은 전통놀이가 준비됐으며 핫도그, 추로스, 오코노미야끼 등을 파는 푸드트럭이 유커를 맞았다.

간편하고 맛있는 푸드트럭의 매력에 유커들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코노미야끼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의 마충렬 대표는 “1차 행사에서 3~4시간 동안 15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이번에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맛과 분위기가 ‘하오!’
오후 6시쯤 유커들이 메인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버스 호차 팻말을 치켜든 가이드를 따라 줄지어 입장하는 유커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날 유커들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에버랜드에 다녀온 뒤여서 에버랜드의 캐릭터가 그려진 우비와 앙증맞은 머리띠, 페이스페인팅을 한 유커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테이블에 자리 잡은 유커들은 본격적으로 행사를 즐겼다. 하이트맥주 모델 송중기의 등신대와 함께 하트를 그리며 사진을 찍고 함성을 지르며 단체사진을 찍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중국 노래를 부르며 10여명이 단체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삼계탕파티는 중마이그룹 VIP임직원들과 류경기 서울시 부시장,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 등 주요인사가 무대 위로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축포와 함께 시작된 행사에 유커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응원봉을 두드리며 호응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삼계탕파티는 지난 3월 인천에서 진행된 유커 치맥파티의 영향을 받아 기획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본격적인 삼계탕 수출을 앞두고 홍보 효과를 위해 서울시에 제안했으며 한국육계협회가 협찬했다.
무대 뒤에서 만난 류 부시장은 한국육계협회장에게 “이번 행사에 많은 도움을 주신 걸로 안다”며 “감사하다. 우리가 더 잘해야 될 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이번행사는 한국육계협회 소속 5개 업체가 삼계탕 총 8000인분을 협찬하며 성사됐다.

한국육계협회가 제공한 따끈따끈한 삼계탕은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유커 앞에 높여진 빈 그릇에 채워졌다. 400여명의 인력이 스티로폼에 삼계탕 제품을 담아 줄지어 입장하자 유커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이용해 영상통화를 하며 실시간 상황을 중계하는 유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4000그릇의 삼계탕이 모두 제공되자 세빛섬 일대에는 삼계탕 냄새가 진동했다. 한강에서는 좀처럼 맡기 힘든 낯선 향이었지만 유커들을 서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향이기도 했다. 중마이그룹 사장의 비서라는 니쨔씨(24)는 “중국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는 맛”이라며 “특히 대추가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분위기가 뜨겁고 좋아서 추위도 잊었다”고 들뜬 모습을 보였다.

음주를 즐기는 유커도 많았다. 테이블에 마련된 백세주는 삼계탕이 나오기도 전에 동이 날 정도. 김치를 안주로 삼은 유커들은 이미 흥이 가득했다. 연신 “하오츠!”(맛있다)를 외치던 쨔오핑씨(50)는 “삼계탕을 처음 먹는데 정말 맛있다”며 “백세주는 삼계탕이 나오기 전부터 마셨다. 음식도 맛있고 술도 맛있고 사람도 좋아서 기분이 좋다”고 눈빛을 빛냈다. 중마이그룹에서 판매업무를 한다는 그는 “서울에 처음 왔는데 도시가 굉장히 깨끗해서 신선한 느낌”이라며 “한국인들이 뜨겁게 환대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서울의 매력에 빠진 유커
서울시의 유커 환영이벤트는 입맛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귀까지 사로잡았다. 삼계탕 만찬 도중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 OST 콘서트를 연 것. 가수 케이윌과 거미가 무대에 등장해 OST를 부르며 4000명의 유커를 환영했다.

가수 케이윌의 등장에 삼계탕을 먹다 말고 무대 앞 펜스까지 달려가는 유커, 의자 위에 올라가 까치발을 들고 야광봉을 흔드는 유커가 늘어나며 세빛섬은 점차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들은 익숙한 노래에 환호했다. 젊은 유커들은 따라 부르며 가볍게 리듬을 탔고 장년층 유커는 태극권과 유사한 모양새의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중마이그룹의 판매원으로 재직 중인 따이화푸씨(40)는 “이렇게 대규모로 행사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흥분되고 기분이 좋다”며 “중국인에게 친절하고 우호적인 서울의 분위기가 좋고 도시가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에 편안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인이 유커에 우호적이고 친절한 만큼 유커도 친절로 화답했다. 콘서트를 즐기는 와중에도 그릇은 그릇대로, 일회용은 일회용대로 모아 테이블을 정리하는 스태프를 도왔으며 어두워진 탓에 테이블이 잘 보이지 않자 스마트폰의 플래시로 스태프의 동선을 비추는 친절함을 발휘했다.

서울시의 작은 배려도 우호적인 분위기를 돋보이게 했다. 처음 스태프로 참여했다는 최지민씨(26)는 “주최 측에서 간단한 중국어를 한국발음으로 읽을 수 있게 준비해줬다”며 표가 빼곡히 담긴 종이 한장을 건넸다. 그가 건넨 종이에는 ‘환영합니다’, ‘건강에 좋다’, ‘많이 드세요’, ‘삼계탕’ 등 22개의 한국어와 중국어, 그리고 중국발음까지 정리돼 있었다. 최씨는 “사소한 부분까지 돋보이는 새로운 행사”라며 “서울 한복판에서 한류의 영향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삼계탕 파티는 저녁 8시40분쯤 축포와 함께 마무리됐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유커 중 일부는 일렬로 늘어서 “이~얼~싼~쓰~”를 외치며 앞사람 어깨를 안마했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이기완 서울시 관광정책과장은 “유커들이 만족해하는 성공적인 행사였다”며 “앞으로 서울이 포상휴가로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있게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