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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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카드대란 이전 때 한 행원이 한 달만에 7000장이 넘는 신규카드를 유치했어요. 이 행원은 이 건으로 두 계단 특진을 하고 해외 여행도 포상으로 다녀왔죠.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되지 않아 그만뒀어요. 카드 유치 고객이 학생, 백수, 노숙자 등 수입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거든요." (A은행 임원)

"너무 잘해도 안되고 너무 못해도 안되는 게 금융입니다. 기준을 명확히 잡아주는 게 중요한 데, 갑자기 기준도 없이 성과만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드네요. 그리고 성과연봉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B은행 관계자)


성과연봉제 논란이 뜨겁다. 금융당국이 지정한 9개 금융공기업이 모두 성과연봉제 도입에 나서면서 이젠 민간은행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2일 광화문 중앙정부청사에서 '제4차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를 열고 "성과중심 문화를 금융 공공기관에 안정적으로 시행, 정착시키고 이를 전 금융권으로 확산해 금융개혁을 완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민간 은행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라는 의미다.

이를 두고 일선 행원들의 불만이 높다. 우선 과당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적에만 급급한다면 오히려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은 수익을 너무 많이 내도, 그렇다고 적자를 내도 안된다. 꾸준하게 안정적인 수치를 이어가야 한다. 고객으로부터 이자와 수수료를 기반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과도한 이익을 내면 폭리, 적자를 내면 부실은행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A은행 관계자는 "행원에게 무리한 성과를 요구하면 과당경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제2의 카드대란 사태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금융은 길게 보고 선택해야 하는 투자상품이 대부분"이라며 "눈 앞의 실적보다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지 등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데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리스크보다는 실적에 더 급급할 수 있다. 이러면 결국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성과연봉제는 정부가 아닌 회사 자체에서 제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은행권의 영업환경이 모두 다른데 금융당국이 정한 제도를 일괄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환경 발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B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성과연봉제 도입 취지는 이해하지만 방식에 대해선 의아스럽다"면서 "은행도 사기업이다. 당연히 행원에게 연봉에 걸맞은 성과를 요구하며 적절한 포상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 모든 은행에게 같은 규제를 적용해 반강제적으로 도입하라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영업환경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은행마다 차이가 있다. 각 은행에 맞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라고 한다면 이해하겠지만 일괄적으로 도입을 요구하는 것은 금융산업 발전을 낙후시키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은행원들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가장 큰 걱정은 구조조정이다. 금융권에선 성과연봉제 도입 자체가 보다 쉽게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은 저금리 기조와 조선·해운 등 대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반면 인건비 부담이 높아 인력을 줄여 나가야 하는 상태다. 또 로보어드바이저 등 첨단 시스템 등장으로 행원이 해야 하는 업무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성과자를 보다 용이하게 퇴출시키려는 것이 성과연봉제 도입의 목적 아니겠느냐"며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서 저성과자들을 위한 재교육과 함께 퇴출된 인력의 재취업을 돕는 복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