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이 수년째 ‘박스피’(박스권 코스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2007년 2000선을 넘어섰지만 현재까지 거의 10년째 1800~2100 사이에 갇힌 듯한 흐름을 보인다. 실제로 국내 주식시장의 규모나 가격이 해외 주요국보다 뒤처지다 보니 답답한 국내 주식시장에 실망한 개인투자자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주식 해외직구’에 나서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내국인이 해외주식에 투자하려면 국내 증권사를 통해야 한다. 해외주식투자의 방법적 번거로움에도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거래대금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1년에는 3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2014년 79억달러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2배에 육박하는 141억달러로 증가했다. 국내투자자에게 주식시장 해외직구시대가 성큼 다가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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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국민연금, 국내 ‘손실’ 해외 ‘수익’
지난해 해외직구 거래규모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4가지다. 첫째,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해외 유망기업을 적극적으로 알려줬다. 둘째, 증권사가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개인투자자를 위한 서비스를 확대했다. 셋째, 유가가 급락하면서 유가와 관련된 선물이나 ETF 투자가 급증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상하이A시장, 즉 후강퉁시대가 열린 것이다.
해외주식이라고 하면 주로 애플이나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대표종목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올해 거래된 해외주식을 살펴보면 글로벌 대표종목이 아닌 원유와 관련된 ETF 등이 대다수였다. 해외주식거래의 또 다른 특징은 아직까지는 투기적 거래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장기투자자는 해외주식에 관심이 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해외주식에 관심을 보이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났다. 증권사들도 해외주식투자 관련 리서치나 영업인력을 확충하는 추세다. 개인과 증권사가 해외주식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미국주식을 중심으로 한 해외주식에 큰 관심을 두고 수익을 꾸준히 내고 있어서다.
국내기관 중에는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개최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중기(2017~2021년) 자산배분안을 심의·의결했다. 자산배분안의 핵심은 국내주식투자비중을 줄이고 해외주식투자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국내보다 해외주식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뭘까. 국내주식투자의 수익률이 형편없는 반면 해외투자는 수익을 꾸준히 내고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2011~2015년 국내주식투자에서 연평균 0.46%씩 손실을 본 반면 해외투자에서는 연평균 7.55%의 수익을 냈다. 꽤 큰 차이다.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해외주식 중 비중이 큰 주식은 무엇일까. 지난해부터 국내투자가에게 큰 아픔을 준 후강퉁 주식이었을까. 절대 아니다.
지난 4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직접 투자한 해외주식은 108억달러 규모다. 애플,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엑슨모빌, GE, 아마존, 존슨앤존슨, 페이스북 등 대표 해외주식을 포함해 총 489개 종목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해외주식이 있었기에 국민연금은 해외투자를 늘리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었다. 국민연금은 현재 13.7%인 해외주식비중을 2021년까지 25%로 늘리고 상대적으로 국내주식투자비중을 줄일 계획이다.
◆해외주식투자, 불편함 해소 필요
국민연금도 비중을 늘리는 미국 주식투자의 매력은 무엇일까. 첫째, 기업들이 수십년째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온다는 점이다. 둘째, 주주친화정책이 확고하게 자리잡아 꾸준하게 배당을 주는 기업이 절대다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P&G는 60년 동안 한번도 빼놓지 않고 주주에게 배당했고 AT&T 등 연속 배당기업이 수두룩하다.
셋째, 미국주식은 주가 흐름을 설명하는 데 실적이 거의 절대적인 변수라는 것이다. 실적이 절대변수이니 상대적으로 차트분석, 수급분석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넷째, 공매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 애널리스트들이 소신을 갖고 최대한 성실하게 기업분석을 제공한다. 개인들의 공매도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며 애널리스트가 소신을 갖고 리포트를 쓰기 힘든 국내 현실과 크게 다르다.
물론 개인투자자가 해외주식투자를 하려면 불편한 점이 많다. 특히 미국주식투자의 경우 증권사의 투자관련 서비스가 아직 많이 미흡하다. 장 시작 전 혹은 장 마감 후 거래가 쉽지 않다. 또 투자 유망종목의 추천은 물론 대표적인 기업에 대한 단순한 정보도 잘 제공되지 않는다. 이런 어려움을 보완해보고자 최근 신한금융투자가 업계 처음으로 미국주식투자 가이드북을 발간, 고객에게 배포하고 있다.
최근 미국주식투자 커뮤니티인 ‘미국주식에 미치다’가 해외주식투자자들이 어떤 나라를 투자처로 선호하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250여명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5.9%가 해외주식투자의 최선호국으로 미국을 꼽았다. 수익만 나면 어느 나라나 상관없다는 대답이 30.3%였고 중국은 2.9%에 불과했다.
이 커뮤니티의 운영자인 장우석 키움증권 부장에 따르면 중국의 선전시장과 홍콩시장을 연결하는 선강퉁이 열리더라도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중국보다 미국주식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후강퉁 투자를 경험했던 투자자 중 절대다수가 오히려 큰 손실을 보면서 중국시장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
앞으로 미국주식에 투자할 의향이 있지만 지금은 미국주식에 투자를 꺼리는 이유도 흥미롭다. 미국주식투자를 권하는 증권사와 전문영업직이 없고, 한글로 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가 각각 56.3%로 공동 1위였다. 또 낯설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가 뒤를 이었다. 그럼에도 이 불편함이 해결되면 설문응답자 대부분이 미국주식투자에 나설 의지가 있음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연초에 본인의 투자원칙을 밝힌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수석 부회장의 인터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본인의 자산 중 투자자산의 비중을 국내 30%, 해외 70%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지역별 포트폴리오도 제시했다. 그는 해외자산 중 70%는 미국, 나머지 30%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적립식 투자를 하고 있다. 독자들도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