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원대 코코본드시장 규제가 풀린다. 7월 말부터 비상장은행도 주식전환형 코코본드를 발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은행권이 코코본드 발행을 확대할 전망이다. 저금리기조에 투자처를 잃은 고객이 고수익을 주는 코코본드에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코코본드는 주식 전환 또는 상각의 조건을 증권 발행 당시 미리 설정하는 채권이다. 발행회사가 자본 부족 등 어려움을 겪으면 투자자에게 이자 지급을 중단하거나 원금이 전액 상각된다. 따라서 채권자의 손실 부담이 예상되기 때문에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를 지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으로 불린다.
초기 연 6%에 달하던 코코본드 금리는 현재 연 2~4%대에서 거래된다. 금리가 다소 떨어졌지만 연 1%대에 불과한 예금이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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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DB |
금융전문가들도 은행의 코코본드를 손실이 낮은 안전자산으로 꼽는다. 은행은 자산운용이 보수적이고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충격을 흡수할 만큼 충분한 자본을 확충하고 있어서다.
이에 일부 은행은 벌써부터 코코본드 발행에 열을 올린다. 농협은행은 5월 말 3000억원 규모로 코코본드를 발행했고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도 각각 3000억원, 2000억원의 코코본드를 내놨다. 지난 4월 4000억원의 코코본드를 발행한 기업은행을 비롯한 나머지 은행들도 올 하반기 추가 발행을 검토 중이다.
은행은 자기자본으로 인정되는 코코본드를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발행한다. 바젤3 자본비율 규제에 따르면 은행들은 2019년까지 평균 BIS(국제결제은행) 총 자기자본비율을 11.5%까지 높여야 한다.
백경윤 S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국고채 금리가 연 1%대에 진입한 상황에서 코코본드는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라며 "자본규제 속에서 은행이 자본건전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코코본드의 리스크가 부각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국책은행 제동… 시중은행 흥할까
이처럼 매력적인 채권임에도 불구하고 코코본드 발행시장은 그동안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NH농협은행 등 국책은행과 특수은행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정부의 지분을 많이 보유한 국책은행의 채권이 시중은행에 비해 안정적이기 때문.
그러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선·해운업종의 위기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국책은행이 코코본드 발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당분간 신규 발행이 어려워졌다.
지난달말 수출입은행은 1조원 규모의 10년 만기 코코본드 발행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코코본드 발행 실무를 맡은 삼성·NH투자·KB투자증권과 사전 수요조사(태핑)까지 마쳤지만 기획재정부가 "발행 계획을 재검토하라"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한국은행과 정부로부터 11조원 규모의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달받기 때문에 추가 코코본드 발행이 필요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는 한국은행과 정부(기업은행)가 11조원 규모로 조성한 펀드를 통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에 출자하거나 이들 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를 사들여 자본을 확충해주는 것이 골자다. 수은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대출금 대손충당금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코코본드 발행을 계획했으나 채권발행일 이틀 전 기재부의 제동에 걸렸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정부와 한은이 재원을 조달하는 자본확충펀드로 공적자금을 투입받을 수 있어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지키는 데 문제가 없다”며 “브렉시트 여파 등 금융시장 상황을 살펴보고 감독기관인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추후 발행 시기를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를 모두 시중은행이 흡수하기는 어렵다. 코코본드를 자주 발행할 경우 은행 채권의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어 채권발행을 확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실제 코코본드 등급은 은행의 신용등급이 ‘AAA’여도 'AA'으로 내려간다. 원금 손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등급이 하향조정되는 것. 따라서 은행은 코코본드 발행 시 자본이 생기지만 건전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은행 관계자는 "코코본드는 고수익 상품으로 투자자들의 수요가 분명히 있지만 금융당국의 시중금리 하락 압박도 거세져 금융상품마다 안전성과 수익성을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며 “당장 BIS비율 조정이 급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을 보고 발행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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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순위채에 쏠림… ‘키코 재연’ 막아야
국내은행과 은행지주사의 코코본드 발행 잔액은 지난 4월 말 현재 국내 9조2000억원, 해외 3조2000억원으로 총 12조4000억원에 달한다. 코코본드는 편입되는 자본 성격에 따라 신종자본증권(Tier1)과 후순위채(Tier2)로 구분되는데 신종자본증권은 2조7000억원인 반면 후순위채가 9조7000억원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동안 금융회사는 PB(프라이빗뱅킹)센터를 통해 고액자산가들에게 코코본드를 대거 판매했다. 은행이 부실화되면 원금을 모두 날릴 수 있으나 후순위채에 연 2~4%대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코코본드는 복잡한 상품구조상 투자자의 원금 및 이자 손실 가능성을 알려야 한다. 또 금융시스템의 불확실성 증대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은행이 이자를 미지급할 경우 신인도가 하락하면서 은행권 전반의 불안요인으로 확산되고 나아가 금융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금융당국도 코코본드의 불완전판매를 가장 우려한다.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채권으로 코코본드 발행을 확대할 경우 2008년 중소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던 키코(KIKO·Knock-in Knock-out)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키코 사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원화 약세로 막대한 피해를 당해 일부가 도산했던 사건이다. 당시 738개 기업이 10조565억원 규모의 키코 계약을 맺었으며 총 3조2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코코본드의 잠재적 위험은 현재 국내은행의 자본적립 규모, 코코본드 발행규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크지 않다"며 "다만 코코본드 발행이 늘면서 리스크도 증대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