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의 귀재’, ‘미다스의 손’(Midas touch). 평범했던 회사를 10년 만에 국내 톱 기업으로 성장시킨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을 일컫는 말들이다. 차 부회장은 2005년 대표이사에 부임, 지난해 LG생건을 시가총액 10위권 회사로 키웠다. 

성공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차 부회장은 올 하반기 중국시장 점유율 상승과 함께 분유시장에도 진출, 내년에는 영업실적 '1조클럽' 등극을 노린다. 12년째 효력을 발휘하는 그의 마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

/사진제공=LG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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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생활용품·음료 3각 체제 구축

LG생건은 지난 6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첫 10위(18조546억원)에 진입하는 기쁨을 맛봤다. 이는 LG생건이 10위권 안에 포진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 SK하이닉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기업으로 성장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LG생건의 고공행진은 수익성 높은 고가 화장품의 면세점사업 호조와 중국시장 점유율 상승에 기반한 실적개선 기대감이 작용했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이 예측한 LG생건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5% 가까이 늘어난 2090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도 지난해보다 27%나 급증한 8680억원으로 전망됐다. 증권가에서는 LG생건이 현재의 실적상승세를 이어간다면 내년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단순한 화장품기업이던 LG생건을 차 부회장은 어떤 마법으로 변화시킨 것일까. 그의 첫번째 마법은 M&A다. 부임 후 15차례 M&A를 성사시켰다. 이 기간 인수합병한 기업들은 코카콜라, 다이아몬드샘물, 더페이스샵, 한국음료, 해태음료, CNP코스메틱스 등이다. 화장품기업이던 LG생건은 코카콜라 인수로 ‘음료’, 다이아몬드샘물 등의 기업 인수로 ‘생활용품’ 분야에 진출해 현재의 화장품·생활용품·음료 3각 체제를 구축했다.


차 부회장은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 지점에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된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사업이 갖는 장단점이 서로의 사업을 보완한다는 것. 음료와 생활용품, 화장품사업은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다양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놓자 자연스럽게 실적이 뛰었다. LG생건의 2004년 실적은 매출액 9526억원, 영업익 544억원에 그쳤다. 이후 차 부회장의 등장과 함께 2005년 매출액 9678억원, 영업익 704억원, 2010년에는 매출액 2조8265억원, 영업익 3468억원으로 늘어나더니 5년 뒤인 지난해에는 매출 5조3285억원, 영업익 6841억원의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공격적인 M&A의 배경에는 차 부회장의 평소 경영방침이 숨어있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성공의 반은 죽을지 모른다는 급박한 상황에서 비롯되고 실패의 반은 잘 나가던 때의 향수에서 비롯된다”고 언급했다. 성공에 안주하는 것은 차 부회장의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투자하는 차 부회장의 성향은 결국 LG생건의 체질을 바꾸는 토대가 됐다.


◆수렁에서 건져낸 마법 '꾸준한 투자'

차 부회장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36분기 연속 영업이익 증가 기록이 2014년 1분기에 깨졌다. LG생건은 상반기 영업이익이 2497억33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1%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2조2707억원으로 전년보다 5.7% 늘었지만, 당기순이익은 1734억300만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8.2% 감소한 성적표를 받았다. 부진한 성적표는 아니지만 그동안의 성공행보에 제동이 걸릴 만한 수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장품사업부 만회를 위해 추진한 글로벌 화장품회사 ‘엘리자베스 아덴’ 인수도 불발됐다. 업계에서는 차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에 한계가 온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했다. 차 부회장이 LG생건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하자 대표이사직 사퇴설까지 나돌았다.

차 부회장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실적으로 이겨냈다. 두번째 마법은 결국 ‘꾸준한 투자’였다. LG생건은 상반기 부진을 그동안 투자를 아끼지 않은 화장품사업에서 만회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후’, ‘오휘’, ‘숨’, ‘빌리프’ 등이 그 주인공. 주요 브랜드의 성장과 함께 면세점, 방판, 백화점 등 프레스티지 채널에서 호실적을 거두면서 차 부회장은 자신을 향한 평판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네번째 마법이 기대되는 이유

차 부회장의 세 번째 마법은 ‘열린 경영’이다. 1985년 미국 P&G에 입사해 1999년 한국P&G 사장, 2001년 해태제과 사장을 거친 후 2005년 LG생활건강 대표 자리에 오른 그는 글로벌기업에서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유연하고 열린 기업문화를 강조했다. 출·퇴근 시간 조절이 가능한 ‘유연근무제’는 열린 경영의 대표적 산물이다.

회사 내에서 여직원들을 중용하는 정책도 폈다. LG생건의 임원 중 여성의 비중은 13%로 30대 기업 평균 여성 임원 비율의 6배에 달한다. 2007년부터는 ‘CEO 메시지’를 분기마다 직접 작성해 게시하는 방식으로 경영목표를 직원들과 공유했다. 주로 ‘양심’, ‘원칙’, ‘정도경영’, ‘창의성’ 등의 키워드가 들어간 경영목표는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고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차 부회장의 새로운 도전은 ‘분유’다. 국내는 물론 중국시장까지 노리고 있다. 제 아무리 ‘미다스의 손’이라지만 신시장 개척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가 펼칠 네번째 마법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 프로필
▲1953년 6월9일 서울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회계학 졸업 ▲미국 코넬대학교 대학원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로스쿨 졸업 ▲미국 생활용품 회사 P&G 입사 ▲필리핀P&G 이사▲P&G 아시아본부 템폰사업본부 사장 ▲P&G 한국총괄사장 ▲해태제과 사장 ▲LG생활건강 사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